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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공 공임 인상 '절반의 승리'…'소사장제' 해결은 언제쯤?


생산하청 구조가 업체간 출혈경쟁 유발…제화공 임금수준 '뚝'

[아이뉴스24 윤지혜 기자] 탠디부터 시작된 수제화 공임 인상 행렬이 서울 성수동 코오롱FnC 슈콤마보니까지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 제화지부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현재 9월까지 5개월간 탠디·세라·고세·라팡·코오롱FnC까지 총 5개사가 공임을 올렸다.

지난 20년간 수제화 공임이 동결돼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짧은 시간 내 큰 변화가 인 셈이다. 그러나 제화공들은 '절반의 승리'라고 말한다. 수십 년간 공임 동결을 초래한 '소사장제'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의 일종인 소사장제 때문에 제화공들은 생산 하청업체에 속해 일하면서도 개인 사업자로 분류돼 왔다. 개인사업자 신분이다 보니 4대 보험, 퇴직금, 연차 휴가 등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임금 인상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할 단체교섭권이 없다. 오히려 3.3%의 소득세 부담만 늘었다.

제화공들이 처음부터 소사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영이 어려워진 제화업체들은 일감 증감에 따라 제화공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도급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2000년 탠디를 시작으로 거의 모든 제화업체가 제화공들을 개인사업자로 고용하면서 제화공들은 '노동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됐다.

성수동에서 40년간 수제화를 만든 최경진 씨는 "우리가 무슨 사장이냐"며 "한 사무실에 모여 브랜드 본사가 만든 디자인으로 일을 하는데 사장님이라니 말도 안 된다. 우리끼리는 (서로에게) '1번 라인', '2번 라인'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업무 지시도 생산업체가 내리는데, 그런 사장이 어딨나. 대기업과 협력사가 좋으려고 만든 편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화공들의 임금수준이 추락한 것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시 산하 서울연구원이 2015년 발표한 '광복 70년, 서울은 어떻게 변했을까?'에 따르면 1948년 제화공 임금은 한 달에 10.7원으로 대목(목수·12.1원) 다음으로 높았다. 이는 회사원(9.3원), 공무원(4.4원)보다도 높은 수치다.

그러나 70년 뒤인 2014년 섬유 및 가죽관련 기능 종사자 임금은 월 183만원으로, 회사원·공무원(301만원)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용접공(251만원), 프레스공(249만원), 대목·미장공(240만원)보다도 크게 뒤처졌다. 근로시간 대비 임금 수준을 비교하면 제화공의 생활수준은 훨씬 더 열악하다는 게 성수동의 목소리다.

최 씨는 "집사람과 아침 10시 30분부터 밤 11시 30분까지 13시간을 꼬박 일해서 한 달에 536켤레를 작업했다. 이렇게 해서 받는 돈이 400만원 남짓인데, 3.3% 소득세를 내면 한 사람당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번 셈"이라며 "하루 6시간만 자며 한 달을 죽어라 일했는데 200만원도 못 버니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면 놀란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소사장제 기저에는 '대기업-생산 하청-제화공'으로 이어지는 '노동 외주화'가 자리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성수동에는 2015년 기준 425개의 수제화 관련 사업체가 밀집해 있으며 평균 종사자 수가 5인 이하인 업체가 97.5%에 달한다. 239개사가 소공인에 해당하며 이 중 74.3%가 대기업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기업이다.

남기범·장원호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논문 '성수동 수제화산업의 지역산업생태계의 구조와 발전방향'에서 제화공의 낮은 공임과 장시간 노동은 하청 생산시스템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대형 브랜드 업체의 하청 구조에 편입돼 있다 보니, 업체 간 출혈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제화기술자를 '조립공'이라는 단순 노동자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이다.

남기범·장원호 교수는 "성수동 수제화공장은 대기업의 하청 구조에 편입돼 주로 여성화 생산을 담당했다"며 "저가의 홈쇼핑과 대기업 브랜드의 하청구조에 편입돼 원가절감의 압력과 이에 따른 출혈경쟁이 이어지는 현재 상황은 기술자들에겐 장시간 저임금 노동을 강제하며 산업 생태계 위기의 요소로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제화공을 고용한 하청업체도 영세하다보니 대기업이 공임 명목으로 납품가를 인상해도 제화공 임금 상승으로 직결되기 어렵다. 실제 아이뉴스24 취재 결과 코오롱FnC는 하청업체에 공임을 1천300원 인상하기로 했으나, 제화공들이 전달받은 인상률은 1천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청업체가 자사 인건비 등을 이유로 중간에서 300원을 제외한 것이다.

제화공들이 생산하청이 아니라 본사와의 단체협약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대기업의 책임감은 높이고 대기업과 하청업체 간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김종민 민주노총 제화지부 조직차장은 "우리는 단 한 번도 하청과 교섭을 맺은 적이 없다"며 "하청업체에 교섭을 요청해봤자 '우리도 어렵다'고만 한다. 본사에서 납품단가를 책임지고 인상해야 하청업체에서도 제화공의 공임을 올려줄 여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제화공이 쏘아 올린 작은 공…특고직 노동자성 인정 추세

긍정적인 점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변화의 징후들이 발견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제화공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법원 판결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2017년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김상환)는 탠디가 소사장제를 도입한 2000년 당시, 탠디 소속 제화공으로 일하다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퇴직노동자 9명에게 1인당 1천152만~4천598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소사장제 도입으로 인한 강제적 퇴직이었다는 제화공들의 주장을 인정한 셈이다.

서울고법 민사1부 역시 구두업체 소다와 도급계약을 맺고 일했던 제화공 15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을 뒤집고 제화공들의 손을 들어줬다. 소다 작업장으로 출근해 소다가 정한 작업지시서와 견본에 따라 소다 임직원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작업한 만큼 개인사업자라고 할 만한 독립적인 지위가 없었다는 판단이다.

또 정부는 올 하반기 법 개정을 목표로 특수고용직의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를 추진 중이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특수고용직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거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개정해 '근로자'에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포함되도록 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바 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해 한 제화공은 "코오롱FnC가 2주간 노숙농성을 벌이면서 성수동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특히 노조 가입자가 120~130명가량 느는 등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며 "물론 여전히 하청업체 사장의 눈을 의식해 노조가 건네는 전단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윤지혜기자 ji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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