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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CES 2020과 '우주의 원더키디'


[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본격적인 우주개발 시대를 맞이한 2020년. 생명체가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미지의 행성에 도달한 탐험대가 번번이 실종된다. 이들을 구조하기 위한 원정대의 비행선에 무단승선자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아이캔'. 애니메이션 '2020 우주의 원더키디' 주인공으로 실종된 아빠를 찾으려고 그 어떤 모험도 피하지 않는 용감한 13세 소년이다.

'2020 원더키디'는 특히 70·80년대생들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 애니메이션이 방영된 때는 1989년. 당시만 해도 SF는 헐리웃 블록버스터나 일본 애니메이션 소위 '메카닉(로봇 만화)'의 전유물이었다. 국내에선 SF는커녕 국산 애니메이션 자체가 흔치 않던 시절이다.

'2020 원더키디'에서 아이캔이 떠난 지구는 자원고갈과 환경변화로 황폐화되는 중이다. 아빠가 실종된 혹성에선 고도화된 인공지능(AI)의 반란으로 아빠는 물론 생존한 인간들이 기계와 로봇의 노예로 전락했다.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같은 SF 고전들의 현실적이면서도 심오한 디스토피아 묘사와 겹친다. 만화영화를 지켜본 아이캔 또래 아이들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미지=KBS 옛날티비]
[이미지=KBS 옛날티비]

'2020 원더키디'는 KBS가 해외진출을 목표로 야심차게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가뜩이나 희귀했던 국내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이 총동원됐다. 국산 만화영화는 물론 한국 영화마저 '방화'로 폄하되던 시절이다. '2020 원더키디'는 방영된 그 해 프랑스 칸 영화제 필름마켓에서 TV 시리즈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지금 아카데미에 도전 중인 '기생충'의 칸 수상 선배인 셈이다.

그런 놀라운 작품성에도 '2020 원더키디'는 실패했다. 사회학에선 이같은 현상을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으로 설명한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은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산다는 개념이다. '2020 원더키디'의 스토리라인과 캐릭터, 연출, 각본, 작화는 격동하는 90년대 세계시장 트렌드를 반영한 미래지향적 요소들을 품고 있었다. 정작 한국 사회가 그같은 요소들을 인정하지 못했다.

'2020 원더키디'를 대하는 반응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주인공 머리가 하필이면 빨간색이라 건전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있었는가 하면, 폭력으로 점철된 우주전쟁이 아이들 정서에 좋지 못하다는 연구논문의 주요 사례로 적시되기도 했다. 제목부터가 '원더키디' 즉 영어라서 우리말을 오염시킨다는 지적도 있었다. 군사정권 말 한국의 모습은 이처럼 촌스러웠다.

아이캔과 갤럭티카호 원정대가 출발한 2020년이다. 우주개발은 아직 소식이 없지만 '2020 원더키디'의 SF적 요소들은 점차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 당장 연초 글로벌 IT업계 최대 이벤트인 CES 2020에서도 조만간 시장에서 소비될 AI, 로봇, 자율주행 머신들은 물론 첨단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를 탑재한 모바일·IT기기들이 대거 등장했다.

'2020 원더키디' 방영 30년이 지났지만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은 정도만 다르지 지금도 존재한다. 한국은 세계적 IT강국이고 미래기술 대전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지만 놀랍게도 후진적 관행과 시각들은 여전하다.

AI, 빅데이터, 드론 등 신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80년대식 규제가 작용하는 한편 IT부터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 등 주력 산업 내 대·중소기업간 불공정거래도 많은 부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기업경영을 옭아매는 강성노조의 투쟁 반대 편에 갖가지 불법적 행위로 총수일가 스스로가 기업 이미지를 훼손하는 사례들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산업패권을 주도하기 위한 국가, 기업들의 혁신경쟁이 정초부터 뜨겁다. CES 참관기와 함께 신기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는 수많은 목소리들이 나온다. 기술혁신과 어울리지 않는 낡은 규제의 철폐는 물론 후진적 관행과 시각들을 과감히 버려야 하는 대명제를 충족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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