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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과학의 날, 과학자의 '정치참여 선언' 어떨까?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총선이 끝났다. 전염병 위험 속에서도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대 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진 선거였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선거가 진보와 보수 양 진영이 총집결해 세력 대결을 펼친 결과 투표율 상승과 군소정당 몰락 등의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과 함께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후진적인 정치문화에 대한 비판도 함께 내놓고 있다. 무엇보다 서로를 '심판'하겠다는 전면전을 치르면서 비례위성정당이라는 꼼수가 등장하고 지역과 정책이 사라진 선거 과정에 아쉬움이 크다.

선거 철만 되면 어김없이 반복돼 온 과학기술계의 볼멘소리 역시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과학기술 정책 공약이 없다, 과학기술계 출신이 없다, 정치권이 과학기술계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등의 푸념이 이어졌다.

거대 양당의 세 대결 속에서 정책이 실종된 것은 과학기술계 만의 이슈가 아니라 해도 과학기술계 출마자 수가 줄어든 것은 이번 선거에서 특히 두드러진 사실이다. 과실연 집계에 따르면 지난 국회에서 당선된 과학기술계 의원은 29명이었지만 이번에는 후보조차 20명 정도에 그쳤다. 거대여당의 비례대표 명단에서 과학기술인은 전멸했다. 당선자는 열 손가락을 꼽기 힘들다. 약사회나 의사회 대변인, 이공계 출신 기업가, 전직 과기부 관료, 거기에다 20대 국회 과방위 소속 의원들까지 합해야 겨우 열 명을 채우는 수준이다. 국회 뿐만 아니다. 과학적 판단과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은 두 달 가까이 공석이다. 과학기술계가 뿔이 날 만도 하다. 정치권의 과학기술계 무시가 도를 넘었다는 지탄이 넘쳐난다.

그런데 잠깐, 과학자의 국회 진출이 왜 필요할까? 과학기술인이 더 많이 정치권에 진출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항상 맞는 말일까? 맞다면, 과학자 출신 정치인을 배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기술계가 과학기술인이 더 많이 정치권에 진출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단지 '과학기술계를 대변할 목소리'가 필요해서는 아니다. 국회는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곳으로 사회 각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진출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말이다. 과학기술계 역시 '다양한 전문가'의 일원으로 전문적 정책 수립과 입법에 더 관여해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과학기술계는 이미 공공영역에서 의견을 전달할 창구를 (다른 민간 영역과 비교해) 충분히 갖고 있으므로 과학자의 정치에는 과학기술계를 벗어난 더 큰 그림이 필요하다.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국제기구의 사무차장을 지내고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시민당의 (과학자 출신으로는 가장 앞 순번인) 비례대표 18번으로 출마했다가 아쉽게 낙선한 물리학자 이경수 박사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다시 아이들이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였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던지기 전에 일단 그의 꿈에 공감을 표했던 것은 무엇보다 과학기술계 만의 이슈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미래 비전에 대한 과학자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나라를 과학자만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학자가 국회에 들어간다고 당장 실현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과학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 실험실과 강단에서 존경을 받아 온 사람, 답을 찾는 과정에서의 과학적 방법론을 정치에도 적용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동물국회'가 '이성을 가진 국회'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다.

과학기술계도 다양한 목소리의 집합소다. 정치권의 과학기술계 홀대론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오간다. 정치권에 대한 비판 못지않게 과학기술계 스스로에 대한 자조도 섞여 나온다. 과학기술계는 왜 스스로 정치세력화하지 못하고 늘 정치권의 비례대표 시혜만 쳐다보는 신세가 됐을까?

과학기술계가 정치세력화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흔히 ▲중립지향성 ▲폐쇄성 ▲친정부 성향 ▲권위적 문화 등을 꼽는다. '학문은 가치중립적'이라는 틀에 갇혀 연구실 밖의 사회활동을 경원시하고, 높은 지식 장벽 속에서 대중과의 소통을 외면하며, 산업화 시기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국가 R&D시스템에 종속돼 있다거나, 선후배와 사제지간으로 엮인 수직적·권위적 문화를 이르는 말이다.

4차산업혁명시대 따위를 운운하지 않더라도 이제 정책을 넘어 정치에서도 과학이 필요한 시대다. 과학기술계가, 과학기술 홀대론을 접고, '국가 사회의 과학화'를 주창하는 의미있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틀을 탈피하고 과학자의 정치참여를 격려하는 문화부터 조성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4월21일)은 제53회 '과학의 날'이다. 오후에는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정보통신의 날'과 함께 기념식도 열린다.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해 온라인 중계로 진행될 예정이지만 아마도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을 비롯해 한국 과학계를 이끌고 있는 리더들이 모두 모일 것이다.

이 자리에서 '한국 과학자의 정치참여 선언'을 하는 것은 어떨까?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이제 '한국의 과학화'를 위해 과학자들이 나서겠다고.

최상국 기자 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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