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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이승만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 그 끝은?


[아이뉴스24 정상호 기자] 1954년 11월 27일, 대한민국 개헌 사상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으로, 법에 명확히 명시돼 있는 ‘개헌 정족수’에 느닷없이 ‘4 이하는 버리고 5 이상은 올린다’는 수학 반올림 원리를 적용한 사건이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1차 중임으로 8년을 집권했지만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마침내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집권을 위해 헌법을 불법적으로 개정했던 대한민국 초기 대통령의 ‘개헌’은 우리나라 헌정사에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16일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1차 발췌개헌부터 2차 개헌인 사사오입 개헌까지 그의 개헌사(史)를 살펴본다.

‘역사저널 그날’은 아름다운 퇴장의 의미를 몰랐던,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집권 연장을 위해 행했던 두 번의 불법적 개헌을 ‘그 상황에 빗댄 상황극’으로 접근한다.

이날 패널들은 8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역사저널 그날’에도 알고 보니 장기 집권자가 숨어있다는 사실과 마주하기도 한다.

'역사저널 그날' [ KBS1TV ]
'역사저널 그날' [ KBS1TV ]

‘사사오입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두 번째 개헌이었다. 첫 번째 개헌은 그가 재선을 앞둔 1952년 이뤄졌다. 제2대 대통령 선거를 2년 앞두었던 1952년. 당시 우리나라 대통령 선출은 국회의원이 뽑는 간선제였다. 하지만 1950년 총선에서 그를 지지하는 국회의원들이 대거 낙선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재선 행보에도 빨간 불이 켜진다.

포기하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 선출제를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바꾸는 개헌을 통해 재선을 노린다. 대통령제가 아닌 ‘내각책임제’를 원하는 다수의 국회의원과의 힘겨루기 끝에 그는 결국 국회의원의 의견과 자신의 의견을 교묘히 섞은 ‘발췌개헌안’을 통과시키는데. 그의 핵심 사안인 ‘직선제 개헌’도 이뤄낸다. 1952년 제2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승만. 그가 전쟁 중, 임시수도 부산에서 벌였던 ‘정치파동’들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 종신집권의 시작…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2번의 임기가 끝난 후, 한 번 더 대통령에 도전하고 싶었던 이승만 대통령.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기회는 2번까지 만이었다. 당시 헌법 규정상 대통령은 1차 중임까지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 포기하지 않고, 기존의 헌법 조항에 ‘본인에 한해 중임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부칙을 다는 방식의 개헌안을 낸다. 당시 국회의원은 203명. 헌법에 따르면 203명의 2/3 이상, 즉 136표가 찬성하면 이 개헌안은 통과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필요한 의결 정족수에서 한 표 모자란 135표였다. 결국 개헌안은 부결 선포됐다.

하지만 다음날, 이승만 측은 203의 2/3가 자연수로 떨어지지 않고, 135. 3333...으로 끝나는 점을 이용해 ‘사사오입 원리를 적용하면 정족수는 135명’이라는 기이한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이미 부결됐던 개헌안이 ‘반올림 원리’에 따라 다시 통과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나고. 이 사건은 국민들을 크게 자극하게 된다.

◆ 한 사람을 위한 개헌…그 끝은?

국민이 아닌 단 한 사람만을 위해 고쳐진 헌법. 결국 ‘사사오입 개헌’은 이승만 대통령의 입지를 크게 흔드는 기폭제가 된다. 자유당에서 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의원도 나왔고, 각성한 야당 정치인은 이승만 입지를 위협할 정도로 크게 성장한다.

우여곡절 끝에 1956년 3대 대통령에 당선되긴 했지만, 그 끝은 우리가 다 아는 것처럼 1960년 3·15부정선거, 4·19혁명으로 인한 ‘하야(下野)’였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매주 화요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정상호 기자 uma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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