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베르테르’ 카이 “배우 역량 중요한 작품…순간 감정 충실”


“관객과의 거리 좁히기 위해 음악 속에 감성 많이 집어넣으려 노력”

[아이뉴스24 박은희 기자] “예술은 표현하는 사람과 만든 사람의 순수함만 그르치지 않는다면 모든 게 허용된다고 봐요. 시대성과는 무관하죠.”

뮤지컬배우 카이는 삶의 핵심을 ‘클래식’에 둔다. 그는 “고전예술은 고증이 될수록 숭고하다”며 “원작이 가지고 있는 결정체를 온전히 유지해나가는 게 가장 중요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베르테르’ 카이 공연 사진. [CJ ENM]

카이의 소신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베르테르’ 20주년 기념공연 타이틀롤로서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에 그대로 투영됐다.

“단순히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 숨쉬어온 작품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제게 기쁨이지만 20주년이라고 해서 특별할 건 없어요. 매 순간 매 무대 최선의 감정으로 연기하는 건 다른 작품과 다르지 않거든요. 배우도 연출도 무대미술도 본질이 가장 잘 장착됐을 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순수성에 대한 표현이 배우의 역량인 거고요.”

조광화 연출은 카이의 베르테르에 대해 “품격과 절제가 공존하는데 그 안에 숨겨놓은 아픔이 더욱 상상된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카이는 편안하면서 깊이 있는 목소리를 통해 클래식의 정수를 선보이며 차분하고 세련된 감성으로 여운을 남긴다. 관객들은 “사랑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로맨티스트”라고 평한다.

숭고한 사랑을 주제로 하는 극이지만 자칫 잘못하면 베르테르의 순수함이 집착으로 비칠 수 있기에 베테랑 배우라도 결코 쉬운 연기가 아니다. 카이는 “20년 동안 검증이 돼온 작품이고 지금까지 훌륭한 배우들이 베르테르 역을 맡아주셨기 때문에 완성도를 채우는 건 무조건 배우의 힘”이라며 “책임감이 있었던 건 맞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대본의 빈공간이 많았어요. 마치 수묵화 같은 여백의 미가 큰 작품이거든요. 그 공간을 보이진 않더라도 감정의 공기로 관객들한테 흡입을 시켜줘야만 하는 배우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해요. 제게 그런 순수한 감정이 살아있는지 의심하기도 했어요.”

그는 “내가 현실에서 사랑에 빠졌다면 분명 좋은 느낌이 있겠지만 그게 20대의 감정과는 다를 것”이라며 “‘내가 지금 느끼는 사랑의 순수함이란 게 진짜 베르테르의 순수함과 동일한 건가’ 그런 의심이라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어 “머릿속에 저장이 돼 있어서 잊고 지냈던 사랑의 희로애락을 많이 꺼내봤다”며 “다락방의 한 상자 안에 묵혀뒀던 먼지 수북한 사진들을 보다보니 힘들어지더라”고 고백했다. “‘그때 왜 그랬을까’ 나쁘게 말하면 스트레스고 좋게 말하면 사랑의 여운·폭풍·소용돌이 이런 게 몰려왔어요. 사랑하면서 느끼고 경험했던 많은 감정들이 안개처럼 올라오면서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어요.”

뮤지컬 ‘베르테르’ 카이 공연 사진. [CJ ENM]

카이는 ‘팬텀’ ‘벤허’ ‘프랑켄슈타인’ ‘엑스칼리버’ ‘레베카’ 등 연달아 대형 작품에 출연하며 한동안 강렬하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여왔다. “강한 역할들을 몇 년 동안 해오면서 저도 거기에 익숙해진 거예요. 갑자기 ‘베르테르’에서 불이 탁 켜져버리니까 약간 발가벗겨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생경하기도 하고. 이 생소함을 조금 더 채워가고 싶었어요. 적절한 시기에 좋은 작품을 잘 만났다는, 배우로서 만족감이나 기쁨이 컸어요.”

카이가 베르테르를 연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가장 일반적인 강함”이다. “죽음의 결말을 빼면 짝사랑하고 빼앗기고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잖아요. 근데 베르테르 입장에서는 조용히 사라지는 게 롯데한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었던 거죠. 마지막에 부르는 넘버처럼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라고 생각해요. 죽음은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용기였다고 판단했기에 강하다고 보는 거고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도 주눅 들거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편안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카이는 “‘베르테르’는 공연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 제일 힘든 작품”이라며 “항상 뭔가가 머리에서 스윽 빠져나간 느낌으로 집에 간다”고 말했다. 무대에서 특히 힘든 장면을 묻는 질문에는 “다 힘들지만 결혼한 롯데를 만나러 갔을 때”라고 답했다.

“질풍노도의 마음이 막 불타오르는데 정말 힘들어요. 단순히 질투나 자격지심으로 인한 화가 아니라 내가 삶을 살면서 가장 숭고하게 여기는 가치를 흐트러트리는 어떤 것들을 봤을 때의 감정인 거예요. 그게 아쉽게도 남녀 간의 사랑인 거고. 그러다보니까 그 감정을 받아들이고 참아내고 표현해내는 게 쉽지 않아요.”

소설과 다른 뮤지컬만의 매력에 대해 카이는 “음악이 전해주는 힘이 크다”며 “편곡이 돼서 20년 전보다 많이 세련돼지긴 했지만 특유의 예스러움이 있다, 그게 베르테르의 감성과 맞아서 잘 묻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가다보니까 나 위주의 감정이 쭉 연결돼 독자와의 친밀감이 크잖아요. 뮤지컬은 무대에서 인물과 인물 사이의 관계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관객과의 친밀함은 좀 떨어지죠. 그렇기 때문에 음악 속에 감성을 많이 집어넣으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뮤지컬 ‘베르테르’ 카이 공연 사진 [CJ ENM]

카이는 같은 역할의 엄기준·유연석·규현·나현우에 대해 한마디로 “진짜 괜찮은 녀석들이 다 모였다”고 정리했다. “현우부터 얘기하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싸가지가 있어요. 저랑 띠동갑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세대차가 있는데 대화도 잘 되고 이질감이 없어요. 정말 열심히 하고 열정이 대단해요. 형으로서 뇌가 정리될 수 있게 이틀만 쉬라고 얘기했는데도 못 쉬더라고요. 옛날의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는 “규현이한테는 ‘아이돌이란 타이틀이 널 막는구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며 “그만큼 똑똑하고 지혜롭게 자기 걸 채가는 배우, 대단한 친구”라고 칭찬했다. 유연석에 대해서는 “일단 인간성이 참 좋다”며 “내가 봤을 때 업계 톱배우인데 무척 털털하고 인간미가 넘치고 잘 베푼다”고 말했다. 이어 “시선이나 마음가짐이 굉장히 넓은데 그게 연기에서도 드러나더라, 여유롭고 편안하고”라며 “너무 배우고 싶은 동생이자 연기자”라고 덧붙였다.

“엄기준 형은 베테랑이고 자기의 역할에 집중하는 사람이에요. 다름을 알고 인간이기에 자기 자신이 부족한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채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배우인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이 배워요. 저한테 참 귀감이 되는 선배예요.”

카이는 ‘롯데’ 역의 이지혜·김예원과의 호흡을 묻자 “둘이 많이 다르다”고 답했다. 그는 “지혜씨는 뮤지컬배우다보니까 연기의 패턴이 넓고 좀 더 스케일이 크다”며 “예원씨는 매체 연기를 많이 해서 그런지 섬세하고 집중력이 강하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상대가 주는 만큼 받아가고 흐름을 맞춰가는 시간들이 참 재밌어요. 예원씨랑 할 때는 저도 마치 앞에 드라마 카메라가 세팅됐다는 상상으로 무대를 꾸미는 편이에요. 지혜씨랑 알베르트 역의 이상현 형 이렇게 셋이 할 때는 성악트리오라고, 한편의 오페라를 한다는 마음으로 연기해요. 감정의 흐름과 집합점이 좀 더 작고 세밀한 저만의 재미를 찾고 있어요.”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무대에 오르고 있는 것에 대해 카이는 “첫 번째로 제작사에 너무 감사하다”며 “0순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보러 오는 관객들에 대한 감사”라고 강조했다. “완전 대혼란의 시기잖아요. 끝날 것 같지 않은 혼돈에 모두 불안하고 힘든데 그런 와중에 작품을 한다는 건 배우로서 감사한 일이죠.”

마지막으로 그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공연도 늘 해오던 대로 그 순간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할 것”이라며 “매일매일 쓸 수 있는 최고의 감정선을 쓰는 게 이 작품에 임하는 각오”라고 밝혔다.

박은희기자 ehpark@inews24.com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