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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박정희의 밀사 이후락, 김일성을 만나다


'역사저널 그날' [KBS 1TV]
'역사저널 그날' [KBS 1TV]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5월 평양에 다녀왔습니다.” 1972년 7월 4일, 중앙정보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이같은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같은 시간, 북한에서도 똑같은 내용의 성명이 발표된다.

남과 북이 분단 27년 만에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3대 통일 원칙 합의사항을 공동으로 발표한 것이다.

남북을 오간 밀사 그리고 남북의 두 지도자 박정희, 김일성의 구상 등 7·4 남북 공동 성명 탄생 뒤 숨겨진 이야기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소개한다.

◆ 비운의 실미도 부대, 급변한 세계 정세

1971년 8월 23일, 무장공비가 민간인의 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향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져 시민들이 공포에 휩싸인다. 하지만 그들은 무장공비가 아니라 실미도 부대원들이었다. 북한 특수부대에 대응해 조직한 실미도 부대. 하지만 작전 명령은 3년간 내려오지 않았다. 바로 180도로 달라진 남북관계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핑퐁외교로 시작된 세계적인 화해 무드, 데탕트. 세계 정세가 급변한 가운데 한반도에는 “남북대화”라는 새로운 과제가 주어졌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 숨가빴던 남북의 대응 전략은 무엇이었을까.

◆ 박정희의 밀사 이후락, 평양에 가다!

비밀 접촉에 나선 남과 북. 1972년 5월 이후락은 비밀리에 평양으로 떠난다. 이후락은 “일이 잘못되면 자결하겠다”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청산가리 캡슐까지 준비해갔다. 평양에서 한밤 중에 북한 관리에게 끌려가는 일이 벌어졌는데. 박정희 대통령의 밀사로 평양에 다녀온 이후락의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를 '역사저널 그날'에서 살펴본다.

◆ 7·4 남북 공동 성명, 한반도 통일을 꿈꾸다

남북이 평화통일 원칙을 협의한 7·4 공동 성명이 발표된 후, 한반도에 큰 변화가 찾아온다. '북괴'란 호칭이 '북한'으로 바뀌었고, 서울과 평양 사이에 직통전화가 개설된다. 금방이라도 통일이 올 것만 같았던 그때. 하지만 남북 지도부의 태도는 국민들과는 달랐다. 남북 지도자들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20일 밤 10시에 방송된다.

정상호 기자 uma8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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