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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여의도의 최고금리 내리기 조급증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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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서상혁 기자] 2010년 일본. 대금업법이 개정되면서 일본의 최고금리는 20%까지 내려갔다. 지정신용기관제도도 도입되는 등 일본은 대금업 관련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규제 강화 이후 10년. 일본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2009년 대비 등록된 대금업체는 73.3%, 대금업체의 소비자신용대출 잔액은 62.8% 가량 감소했다. 최고금리 인하와 평균약정금리 하락으로 업체들의 수익성이 크게 나빠지자 시장이 위축된 것이다.

대금업체가 사라진 자리는 미등록 업체들이 채우고 있었다. 일본 금융청 조사에 따르면 대금업 이용 경험자 중 원하는 액수의 대출을 받지 못한 비율은 2010년 30.3%에서 2020년 43.2%로 늘었고, 미등록 대금업 이용 경험자는 같은 기간 1.2%에서 8.8%로 늘어났다.

여신금융연구소가 발간한 '일본 대금업 규제 강화 이후 10년간의 시장 변화' 보고서를 요약해봤다. 일본은 최고금리 인하로 대금업 시장의 구조조정 효과는 거두긴 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은 실로 만만치 않았다. 성공보단 실패라고 평가할 만한 사례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최고금리 인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고금리 20%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 맞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관련 법안을 내놨는데, 최근 야당인 국민의힘도 비슷한 법안을 내면서 발을 맞추고 있다. 유력 대권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올 여름 최고금리를 10%까지 내리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내리자는 논리는 이렇다. 올해 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도 '제로금리' 국가가 됐으니, 대출 금리의 상한도 내려야한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경기가 급격히 위축돼 모두가 힘든 마당에, 금융권이 고금리 이자장사나 해야겠냐는 따끔한 지적도 나온다. 대부업체가 가진 부정적 인식도 한 몫 한다.

이 같은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면 좋으련만, 다수의 전문가들은 그럴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 최고금리를 더 내렸다간 일본의 사례에서처럼 다수의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 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라 우려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소비자금융컨퍼런스에 참석해 최고금리가 현행 24%에서 20%로 내려갈 경우 약 60만명이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또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 타 금융권과 금리 동조화도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 기준금리가 내려가도 대부업계 대출 금리가 꼭 내려가는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국은 이미 일본과 비슷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의 '2019년 하반기 대부업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대부업 대출 규모는 15조9천억원으로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낮아진 2018년말과 비교해 1조4천억원 줄었다. 차주는 43만6천여명 가량 감소했다.

불법사금융 신고는 되레 늘었다. 지난해 금감원 접수된 고금리·불법사금융 신고 현황을 보면 최고금리 위반에 대한 상담·신고 건수는 전년보다 9.8% 늘었다. 금감원은 법정이자율 상한의 점진적 인하를 배경으로 꼽았다.

학계 전문가들 분석과 감독당국의 통계는 선한 의도로 시행한 최고금리 인하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나타나진 않을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포용 금융으로 포장된 정책이 사실상 금융 소외를 야기하는 셈이다.

씬파일러 문제도 있다. 금융이력부족자들은 지금 상용화된 신용평가 모델로는 자신들의 상환 능력을 오롯이 평가받지 못한다. 이 때문에 제도권 금융회사 이용 시 높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만 한다. 최고금리를 인하하면 이들이 설 자리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 전체 성인의 4분의 1이 씬파일러라 무시하기도 어렵다. 금리를 내리더라도 비금융 신용평가가 자리잡은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정치권이 너무 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을 위한다는 취지는 좋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착륙하면 많은 이들이 다친다. 최고금리의 소프트랜딩을 기대해본다.

서상혁 기자 hyu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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