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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과학] 과학이 인종차별에 대응하는 방법


美 과학계…관련 대규모 연례행사, 인종차별 도시에서는 안 열어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미국물리학회(American Physical Society, APS)가 회의 장소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면서 전 세계 과학계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있다. 인종차별이 있는 지역에서는 정례회의를 비롯해 대규모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규모가 큰 과학단체 등은 매년 정기적으로 큰 행사를 특정 도시에서 개최한다. 해당 도시는 주요 관계자는 물론 관광객이 찾고 투자유치가 이뤄지는 등 직간접적 혜택이 만만치 않다. APS는 앞으로 특정 도시에서 회의 개최 여부를 결정할 때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새로운 기준은 우선 경찰 구금에 따른 총격과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독립적으로 조사하는 기구가 있는지를 파악한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에 있어 도시가 공개된 자료를 제공하는지도 알아본다. 여기에 공권력 행사에 대한 인구통계학적 정보가 있는지를 사전에 살펴본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관련 항의 시위가 열렸다. [사진=AP/뉴시스]
지난해 6월 미국 뉴욕에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관련 항의 시위가 열렸다. [사진=AP/뉴시스]

과학전문 매체 네이처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미국 일리노이대 필립 필립스 물리학자는 “지난해 5월 흑인인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숨졌을 때 미국 사회 전체가 큰 분노에 휩싸였다”며 “이 분노는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과학계가 그동안 경찰 폭력에 의한 흑인 사망 등 인종차별에 충분한 항의성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는 반성이다.

이후 그는 주요 물리학 단체와 사회가 경찰의 폭력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를 고민했다. 필립스 박사는 동료와 함께 연구한 끝에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특정 도시에서 수천 명의 방문객과 현금이 유통되는 대규모 연례 회의를 열어서는 안 된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필립스는 “과학계가 대규모 회의를 개최할 때 해당 도시의 경찰 행태와 관행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흑인 등 유색인종 등이 위험에 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APS 결정, 다른 과학단체에 영향 미칠 듯

실제 연구 결과를 보면 미국 치안은 인종적으로 편향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발표된 한 논문에서 “미국 경찰은 백인 운전자보다 흑인, 히스패닉 운전자를 더 자주 정차하고 수색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찰이 백인과 흑인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에 대한 편견이 깊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9년 네이처는 인구 10만 명 당 약 96명의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백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2배 높은 수치이다.  [자료=네이처]
2019년 네이처는 인구 10만 명 당 약 96명의 흑인이 경찰에 의해 사망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백인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2배 높은 수치이다. [자료=네이처]

필립스 박사는 이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한 이후 APS 리더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이어 지난해 6월 온라인 APS 포럼에서 이 기준을 제안했다. 필립스 박사의 의견에 대해 몇몇 회원들은 “APS는 정치 조직이 아니다”며 반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소수의 반발보다는 필립스 박사의 의견에 동의하는 회원이 훨씬 많아 채택됐다.

이후 지난해 11월 APS는 앞으로 회의 장소를 선택할 때 경찰의 행동을 고려할 것이라고 트위터를 통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ASP는 5만5천명 이상의 회원을 가진 대규모 단체이다.

헌터 클레먼스 APS 회의 책임자는 “이번 기준은 아직 예정돼 있지 않은 회의 장소 등에 적용될 것”이라며 “이미 계획이 잡혀 있는 도시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준을 보냈고 이에 대한 응답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APS의 새로운 회의 장소 선정 기준이 과학계에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APS]
APS의 새로운 회의 장소 선정 기준이 과학계에 울림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진=APS]

과학자들은 APS 결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시드(Ximena Cid)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물리학과장은 “APS가 취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조치라고 생각한다”며 “BIPOC(흑인, 원주민, 유색인종, Black, Indigenous or People Of Colour) 과학자들은 백인 과학자들보다 레스토랑과 호텔은 물론 컨퍼런스 센터를 오가는 중에 주변 환경을 더 조심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과학계는 다른 분야와 달리 인종차별을 앞서 철폐한 측면이 강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역사를 바꾼 주인공 중엔 흑인 여성이 많다. '히든 피겨스'에는 NASA의 역사를 바꾼 천재 수학자 캐서린 존슨, NASA 컴퓨터 프로그래머의 선구자 도로시 본.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 메리 잭슨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인종차별이 엄혹하고 골이 깊었던 1960년대 NASA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아 우주 역사를 바꾸는 주인공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은 암암리에 사회에 침투해 있다. 최근 과학계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인종차별에 대한 과학계의 움직임이 구체화 되고 있어 앞으로 인종차별, 성 소수자 차별 등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대규모 회의가 취소되는 등 직간접적 불이익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러 다른 과학단체들도 APS의 이 같은 움직임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앞으로 추이가 주목된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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