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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욱의 바이오 세상] 향수(香水)-인류 최초의 화장품


신들의 영역에서 인간의 욕망 속으로

유난히 무더웠던 올 여름이 지나고 가을의 정취가 느껴지면서 향수를 찾는 사람이 부쩍 늘고 있다고 한다. 이미 화장품으로서 우리의 생활 속 깊숙이 자리잡은 향수는 그 기원을 살펴보면 약 5천년 전 종교적인 의식, 즉 신과 인간과의 교감을 위한 매개체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영어에서 향수를 의미하는 단어인 perfume의 어원이 라틴어인 per fumum, 즉 ‘연기를 통하여’라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을 신성하게 숭배해온 고대 사람들은 향을 통해 신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제사를 지낼 때 향기가 나는 나뭇가지를 태우거나 향나무 잎으로 즙을 내어 몸에 발랐다고 한다.

이렇듯 종교의식에서 사용된 고대의 향료는 훈향 (薰香)으로 몸 또는 의복에 발라 몸의 청정감과 함께 정신 미화를 위하여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방향의 발상지는 파미르 고원의 힌두교국인 인도라는 것이 정설인데, 인도에는 후추를 비롯해서 침향, 백단, 그 밖의 열대성 향료식물이 많아서 힌두교의 분향의식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향수는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화장품인 셈이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향수는 신들의 영역을 벗어나 인간의 욕망을 장식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에 사용하던 유약을 들 수 있다. 3천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향을 간직하고 있을 만큼 강렬한 유약은 미이라가 부패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방부제의 기능을 했다.

클레오파트라, 향수로 '유혹'하다

향수가 ‘유혹’이라는 좀 더 세속적인 뉘앙스를 가지게 된 건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에 의해서였는데, 장미나 백합 등의 향이 강한 꽃으로부터 채취한 향유로 자신만의 독특한 향을 만들었다고 한다. 클레오파트라의 정치적 영향력과 권력의 확장과 함께 향수는 이집트 문명권을 거쳐 그리스와 로마 등지로 전파되면서 비로소 귀족계급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기호품이 되었다. 당시의 상인들은 부피가 작고 값이 비싼 향료를 화폐 대용으로 사용하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향수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소개되었는데 기록을 보면 372년에 고구려의 승려가, 382년에 백제의 승려가 각각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돌아오면서 향료도 함께 들여왔다고 한다. 신라시대의 많은 귀부인들이 향료주머니, 즉 향낭(香囊)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는 기록으로 보아 향료 사용의 대중화는 신라시대부터라고 여겨진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향수가 개발된 시기는 꽃의 원액을 희석시킬 유기용매인 알코올의 제조가 가능하게 되면서부터였는데 1천370년경 헝가리에서 지금의 ‘오 드 트왈렛 (eau de toilette)’ 원조격인 ‘헝가리 워터’가 효시라 하겠다. 이것은 당시 헝가리의 왕비인 엘리자베스 여왕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증류 향수이자 최초의 알코올성 향수였다. 이 향수 덕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7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국왕으로부터 청혼을 받기도 하였다.

그 뒤 1508년 이태리의 피렌체에 있는 성 마리베라의 도미니크회 수도사가 향료 조제만을 전문으로 하는 아틀리에를 개설, 향수를 제조하면서부터 그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1533년에는 피렌체의 명문 가문인 메디치가(家)의 딸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와 프랑스의 앙리 2세 국왕이 결혼하면서 그녀의 조향사(造香師)를 프랑스로 데려가 파리에서 향수 전문매장을 열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향수 전문점이라 하겠다.

향수가 산업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부터이다. 당시에는 피혁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무두질이라고 하는 가죽을 부드럽게 다루는 기술이 보급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가죽에서 나는 특유의 악취를 없애기 위한 향료와 향수가 필수품이었다.

오늘날 향기의 고향으로 알려진 남프랑스의 그라스 지방은 피혁제품의 생산지로 유명했던 곳으로 무두질한 가죽의 부가가치를 높일 목적으로 향료를 사용했다는 점을 통해 그 사실을 추정할 수 있다. 프랑스 궁정에서도 많은 향수가 애용되었는데, 주로 시트러스향을 지닌 오렌지꽃과 히아신스가 애용되었다고 한다. 특히 루이 14세는 그 어느 왕보다 향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향수는 일반적으로 향료 농도를 나타내는 부향률에 따라 크게 ‘퍼퓸 (perfume)’, ‘오 드 퍼퓸 (eau de perfume)’, ‘오 드 트왈렛 (eau de toilette)’, 오 드 콜로뉴 (eau de cologne)’로 나뉘어진다.

이 중 ‘퍼퓸’은 가장 진한 향으로 한번 뿌리면 보통 6시간 정도 향이 유지되고, ‘퍼퓸’보다 약한 ‘오 드 퍼퓸’은 부향률이 15% 정도로써 은근하게 깊은 향을 내며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오 드 트왈렛’은 5~10% 부향률로 3~4 시간 동안 향이 은은하게 지속된다. 이보다 약한 2~5% 부향률을 지닌 ‘오 드 콜로뉴’는 2~3시간 향이 지속되며 아주 연해서 처음 향수를 이용해보려는 사람에게 제격인 향수다. 쾰른의 물이라는 뜻의 ‘오 드 콜로뉴’는 18세기 초 독일의 쾰른 지방에서 제조된 향수인데 당시 이 제품은 유럽 전역에 걸쳐 크게 유행하였다.

향수의 대중화를 선도한 자크 겔랑

19세기 중엽에 들어서면서 산업화의 진전과 더불어 화학합성 향료가 개발되면서 향수의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천연향료만을 사용해왔던 탓으로 향료와 향수는 귀족계급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으나 합성원료의 등장으로 향료, 향수의 대중화가 비로소 이루어진 것이다. 특히, 프랑스의 디자이너 자크 겔랑에 의해 대중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졌으며 그 뒤에도 향수는 유명 디자이너들에 의해 패션 산업에 도입되었는데 이는 근대 향수산업의 발달을 크게 진전시키는 계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향수가 받아들여지는 후각 기관에 대한 연구도 최근 들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04년 노벨 의학상은 냄새를 관장하는 후각기관과 후각의 신비를 밝힌 미국의 엑셀과 벅 두 과학자가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여러 가지의 화학물질의 집합체인 냄새 또는 향이 코로 들어와 어떠한 경로로 뇌에서 인지되는지를 밝혀낸 공로가 인정되었다.

사람의 경우 냄새를 감지, 기억하고 관장하는 유전자는 약 1천여개로 인간이 가지는 전체 유전자의 3%에 해당한다. 즉 특정 기능을 담당하는 관련 유전자 집단으로는 가장 많은 수라 할 수 있는데 그만큼 후각과 냄새를 기억하는 메커니즘이 시각과 청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이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냄새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유전자는 400개가 되지 않는다. 절반 이상은 후각 기능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기능이 밝혀지지 않는 가짜 유전자인 셈이다. 인간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 코가 땅바닥에서 멀어진 이래 후각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면서 자연스레 퇴화했기 때문이라는데 앞으로도 인간은 진화가 거듭될수록 후각기관은 더욱 퇴화될 것이라고 한다.

아무튼 몇천 년 동안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온 향수는 앞으로도 우리의 후각기관을 신선하게 자극하는 하나의 패션으로 정착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성욱 인큐비아 대표(column_sungoo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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