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고향’ CERN을 가다

과학과 예술 공존…'우주기원 탐사' 꿈 도전


조금 과장하자면 인터넷은 이젠 공기 같은 존재다. 없으면 안 되는 기술. 그럼에도 워낙 가까이 있기 때문에 의식조차 못하는 존재. 하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인터넷 세상’은 이론 속에서나 가능했다. 그 불가능한 꿈이 현실로 바뀐 건 스위스 한 연구소 연구원이 만든 www 덕분이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줄여서 ‘썬’으로 불리는 이 연구소에 최근 또 한번 전 세계인의 시선이 집중됐다.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자 입자를 발견해낸 때문이다. 원하는 주제를 맘껏 탐구할 수 있어 과학자들의 로망으로 통하는 곳. 우주의 기원을 파헤치겠다는 ‘쉽지 않은 꿈’을 꾸는 곳.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 스위스 제네바에 자리잡고 있는 세계 최고 연구소 ‘썬’을 다녀왔다.

글-사진| 백나영 기자

스위스 제네바에서 프랑스 국경 방향으로 20분 가량 달리면 한적한 대학 캠퍼스처럼 생긴 건물이 눈에 띈다. 이 곳이 바로 세계 최고 연구소로 통하는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 이하 썬). 일반인들에겐 월드와이드웹(WWW)과 하이퍼텍스트의 개념을 창안한 곳으로 유명한 연구소다.

썬이 처음 탄생한 것은 2차 대전의 상처가 막 가실 무렵인 1954년. 당시 스위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20개국이 기초과학 연구란 공동 목표를 갖고 세운 연구소다. 탄생 이후 지금까지 썬은 세계 과학계에 굵직한 선물들은 선사해왔다. 인터넷의 근간이 된 웹과 하이퍼텍스트 연구는 오히려 부차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정도다.

기자가 썬을 찾던 날에도 방문자 센터엔 다양한 국적과 연령층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내의 과학관이나 관련 과학시설에는 부모님들의 손에 이끌려 온 초·중·고등학생들이 관람객의 대다수를 이루지만, 썬에는 학생부터 할아버지·할머니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연구소 투어를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연구소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외국의 대학 캠퍼스를 연상하게 한다. 넓은 잔디밭, 식당 곳곳에서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연구원들을 볼 수 있었고, 복도와 연구실 곳곳에서 공식을 기록한 듯한 낙서들과 물리자료들을 접할 수 있었다.

◆ 불가능한 꿈에 도전하는 멋진 연구소

2000년대 후반부터 썬은 또 다른 과제를 부여잡고 있다.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바로 그것. 이를 위해 2008년부터 거액을 들여 대형 강입자충돌기(LHC)를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했다. 그 결과가 올해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를 발견하면서 세계 과학계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진 않았다. LHC 구축 이후 곧바로 유로존 위기가 닥친 때문이다. 일상 생활과 관련도 없는 우주에 매년 1조원씩을 쏟아붓는다며 적잖은 비판이 쏟아졌다.

제 아무리 썬이라도 이런 비판을 흘려넘기긴 쉽지 않았다. 우주(과학)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거리감을 좁힐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거듭했다. 썬이 선택한 답은 예술이었다. 과학에 예술의 옷을 입히기로 한 것. 예술을 통해 우주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한다는 전략이었다. 썬이 과학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란 찬사를 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때문일까? 썬의 시설과 건물 곳곳엔 예술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단연 예술과의 조화가 돋보이는 시설은 CMS다. CMS는 입자물리 연구에 쓰이는 검출기로 '힉스 입자'를 확인한 썬의 대표적 연구시설이다.

CMS가 위치한 건물 벽면에는 색색의 페인트로 CMS의 이미지가 그려져 있다. 건물 내 1층에는 실제 CMS 크기의 사진이 붙어있다. CMS는 보다 안전한 연구를 위해 지하 100m에 구축돼있는데, 작동이 멈춰 있을 경우 방문객들이 직접 내려가 CMS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작동 중일 때에는 방사능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이 사진을 통해 대리만족을 얻어야 한다.

지하 100m로 내려가는 시간은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눈앞에서 직접 보는 CMS의 웅장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계에 다양한 색상을 입힌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다른 연구소의 대형시설은 주로 칙칙하고 어두운 색상의 본체와 셀 수 없는 선들이 얽혀있는 예쁘지 않은(?) 모습이었다.

◆“과학은 딱딱한 것이 아니라 재미 있는 것”

CMS는 성능은 물론이고 디자인도 포기하지 않았다. CMS는 중앙의 두꺼운 봉 주변을 10여 개의 파인애플모양으로 조립된 검출기가 둘러싸는 형태다. 검출기는 하나의 퍼즐처럼 각 부품과 선들이 완벽하게 조각을 맞추고 있다. 복잡한 선들도 하나의 디자인으로 승화시킨 느낌이다. 빨간색, 파란색, 회색, 노란색 등의 다채로운 색들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를 활용한 예술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CMS를 관리하고 있는 엔지니어 마이클 호크는 CMS 사진을 통해 예술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CMS 사진을 다양한 이미지와 합성하고 모자이크 기법으로 표현하는 등의 방법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고 전시회도 진행했다. 그는 자신을 "물리학자이자 엔지니어이자 예술가"라고 당당하게 소개한다.

또한 오스트리아의 아르스 엘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와 프랑스 퐁피두의 이르캄(IRCAM)과 공동으로 아트 레지던시 프로젝트 아츠 썬(Arts@CERN)을 진행하고 있다. 건축물 곳곳에 디지털 벽화를 남기고 연구소 곳곳에서 퍼포먼스를 진행하는 등 예술의 실험실로 활용하고 있다.

썬에 근무하고 있는 조미희 연구원은 "썬을 방문한 사람들은 과학이 딱딱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부분들(예술적 측면)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보다 친밀감을 느끼고 돌아간다"고 말했다. 썬은 힉스입자를 찾아낸 곳에서 힉스 입자를 즐기는 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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