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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으로서의 미술 콜렉션] 미술품은 영혼이 있는 황금(국내 미술시장 현황)


“선진국들이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쓰면서 돈이 많이 풀렸다. 이 돈이 더 나은 수익률을 찾아 미술품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금융자본이 미술시장에 유입되면서 금융시장과 미술시장은 동조화 경향을 띠고 있다. 미술품 가격지수인 ‘메이-모제스 아트 인덱스(Mei-Moses Art Index)’를 만든 전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모제스 교수는 “미술시장은 주식시장을 6개월에서 18개월의 시차를 두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박혜경 에이트 아트인스티튜트 대표는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 선에 안착한 것은 미술시장에도 긍정적 신호”라며 “좋은 작품을 고르는 눈이 있다면 미술시장이 반등하는 지금이 살 때”라고 말했다. 부동산 등 다른 투자 수단이 여전히 기를 못 펴는 상황에서 그림은 매력적인 대안 투자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위 글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11년 5월8일자 중앙선데이에 실린 미술 시장 관련 기사 내용이다. 요즘 미술 시장을 그대로 표현한 듯 하다. 작년 말 부터 미술품 옥션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3월에 한국화랑협회가 주체하는 한국화랑미술제에도 48,000명이 다녀갔고 판매가도 전년 대비 2-3배 수준이라는 기사가 이어진다. 미술 옥션 회사 중 유일하게 코스닥 시장에 등록되어 있는 서울옥션 주가도 최근에 급등했다. 경매 낙찰률과 거래 금액이 계속 올라가니 당연한 결과다.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전방위적으로 미술품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만큼 상품 부문은 매출액 상방이 열려 있어 향후 미술 시장 성장세가 강해질수록 실적 기대감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는 리포트를 내기도 했다. 게다가 디지털 작품을 블록체인 기술로 등기해서 거래를 하는 NFT 시장이 전세계적으로 부각되다 보니 이 회사는 이래 저래 주식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옥션 현장 [사진=서울옥션 홈페이지]
옥션 현장 [사진=서울옥션 홈페이지]

금융 유동성 장세가 미술 시장 호황 견인

지난 4월, oo옥션 메이저 경매에 참여하면서 뜨거운 시장 분위기를 현장에서 체감했다. 수년간 주의 깊게 미술에 관심을 가져온 지인이 최근 콜렉션의 가치를 인식하고 조언을 구하길래 나름 공격적인 채비를 하고 참여를 했다. 시작부터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대부분의 작품이 유찰 없이 높은 추정가를 경신하며 낙찰됐다. 최근 작고한 대가의 100호 작품 경매가 시작되고 3억원 가까

이 따라 갔는데도 경쟁자의 의지가 워낙 세다 보니 막판에 포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다음날 열리는 다른 옥션 회사의 경매에서 2억원 초반 가격에 낙찰을 받으며 만족스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미술 시장 호황은 미술품 담보대출, 렌탈 등 판매 이외의 서비스 모델까지 활성화시킨다. 부동산 리츠 상품을 거래하듯이 고가의 작품을 지분으로 쪼개서 소유하고 거래하는 형태도 나타나고 있다. 모 금융연구소는 그림 등 전문 예술 분야를 유망한 렌탈 영역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금융위기가 있을 때 마다 저금리로 큰 돈이 풀리고 부동산 주식 원자재 등의 자산 가격이 폭등하면서 미술 시장에도 온기가 돌면서 예외 없이 호황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옥션 등장이 시장 하이어라키 흔들어

미술시장은 1차와 2차 시장으로 나뉜다. 1차 시장은 갤러리나 아트페어 등을 통해 콜렉터를 만나는 유통 형태다. 2차 시장은 옥션, 아트딜러, 프리빗 세일즈, 갤러리(위탁 판매) 등을 통해 기존에 거래된 작품이 재판매로 유통되는 것을 통칭한다. 그 동안의 한국 미술시장은 학연과 평론이 만들어 놓은 프레임 안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2천년대 초 부터 옥션이 본격화되면서 ‘계급장 떼고’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가 주목을 받는 패러다임이 생겼다. 2차 시장에서 크게 주목 받는 작가에게 수요가 몰리고 프리미엄이 높아지면서 보수적인 시장을 크게 휘저어 놓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후배 작가의 작품 가격이 선배의 작품 보다 높아지고 대가들의 작품가격도 뚜렷하게 양극화가 되는 일이 벌어졌다.

2차 시장 가격은 1차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갤러리 판매 가격이 옥션 실거래 가격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갤러리들이나 작가들이 작품 가격을 책정하는데 애를 먹게 되었고, 가격 조정을 하지 않으면 작품 거래가 힘들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공산품 같이 품질이 균일한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작가의 수작을 얻기 위해서는 1차 시장이 비싸더라도 구매를 하게 되지만 갤러리 입장에서는 옥션 낙찰 데이터를 들고 오는 콜렉터들에게 더 비싼 가격을 제안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갤러리가 표준 판매 가격을 낮추려고 하면 작가들은 시장 관점이 아닌 또래 작가의 작품 가격이나 자신의 기준 가격을 고수해서 판매가 잘 이뤄지지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물론 좋은 작가는 국내외 유력 미술관에서의 전시나 국내외 유력 갤러리들의 전속 마케팅 계약, 작고, 시장 유동성 확대 등의 요인이 작동하면서 어느 순간 1차 시장 가격이 정당화된다.

옥션 프리뷰 전시장 [사진=저자 제공]
옥션 프리뷰 전시장 [사진=저자 제공]

미술 작품은 수요와 공급만으로 가격을 결정할 상품이 아니다. 미래 가능성을 보고 스타트업이나 비상장 기업에 투자를 하듯이 마음에 드는 작품을 콜렉션 할 때는 재판매 가능성에 대해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다. 2차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작가의 작품에 매혹되어서 지갑을 여는 경우에도 기꺼이 불확실성에 베팅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갤러리를 1차 시장 유통상으로만 바라보거나 2차 시장 작품 가격을 비교해서 거래 가격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갤러리는 신생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사전에 비용을 감당하는 기업 인큐베이터 처럼 미술 생태계의 모판을 키워내는 소명을 가진 진정한 애호가들이다. 역량을 갖춘 작가에게는 더 많은 콜렉터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외연을 확장시키고 브랜딩을 돕는 헌신적인 조력자들이다. 1차 시장에서 이런 노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2차 시장에서의 가격 상승은 작가들로 하여금 명실상부한 위상을 갖게 하는 방아쇠와 촉매제 역할을 한다.

갤러리는 작가의 모판이자 완주를 돕는 러닝메이트

검증된 작가의 작품은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 강하다. 다른 자산과 달리 금융 유동성 축소가 꼭 가격의 하락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공급은 제한되고 수요는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장에 룰이 없어 보이는 듯 보이지만 그럴만한 작가를 프로모션 하는 것이고 그럴만하니까, 또 그럴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작품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다. 미술계 참여자들의 광범위한 컨센서스 없이 가격이 높아지는 작가들은 자금 유동성이 축소되는 시기가 오면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따라서 호황기를 맞은 지금 뛰어드는 콜렉터들은 작가와 작품을 선택할 때 좀 더 연구하고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최근 한 지인으로부터 소장 작품을 팔 수 있겠는가 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30년전에 국내 유명 갤러리에서 천만원 가까이 주고 구매한 작품이었다. 거래가 거의 없는 작가여서 옥션에 문의해보니 출품은 가능한데 경매 시작가를 200만원부터 하자는 답이 왔다. 실망한 소장자는 결국 그냥 집에 두기로 결정했다. 30년전이면 큰 돈이었으리라. 요즘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며 2차 시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단색화 계열 작품이나 미술사에 족적을 남길 마스터들의 작품을 구매했더라면 지금쯤 큰 보상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술 콜렉션은 영혼이 있는 황금을 수집하는 트러저 헌팅

살고 있는 집이 편하고 좋아서 만족할 수는 있지만 옆집 집값만 계속 오른다면 여전히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까. 일단 미술 콜렉션을 시작하면 그 매력에 빠져서 계속 아트페어와 미술관, 갤러리 전시장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작품을 사게 된다. 좋아하는 미술 콜렉션, ‘가난한 예술 활동’을 지속하려면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되어야 하는 숙제가 주어진다. 콜렉팅한 작품 가격이 올라서 좋은 가격에 다른 사람에게 양도를 하고 또 다른 즐거움을 찾아 나설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미술품은 ‘영혼이 있는 황금(spritual gold)’이라고도 불린다. 잘만 하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황금’이지만 그냥 황금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림을 구매한 자금이 작가에게 돌아가고, 다시 훌륭한 작품이 쏟아지면서 투자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가는 ‘윈-윈’ 시장이 만들어질 때 컬렉션의 즐거움에 투자 수익까지 따라온다는 것이다.” -중앙선데이 홍주희기자 기사 중-

작품 선구안을 기르는 것은 ‘미술 모판’에 비료를 주는 것이고 더 나아가면 국부를 늘리는 애국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

◇김종범 디인베스트랩㈜ 대표는 기업 투자, 문화컨텐츠 투자, M&A 자문 전문가이다. '미술 경계인'으로서 객관적 시각으로 20년간 경험한 미술 콜렉션 노하우를 공유 중이다. 인스타그램 @artinvestlab, 이메일 jb23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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