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수출규제 2년] ① 역풍 맞은 日의 '오만'…韓 소부장 체력 키웠다


불화수소·포토레지스트 등 日 의존도 크게 줄어…타격 입은 日 기업, 한국행 러시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각의(국무회의)를 열고 한국을 '백색국가' 명단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한 지난 2019년 7월 2일 오후 강남구 관계자들이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서울 테헤란로에 게양된 만국기 중 일장기를 철거하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코로나19 대응에 치이고 있는 일본 정부 내에서 한국 수출 규제가 뒷전이 돼 가는 사이, 한국은 일본 정부의 수출관리 조치를 계기로 첨단소재나 장치의 국산화를 착실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결국 타격은 일본 기업으로 돌아갔습니다."

올 초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됐다는 지적을 내놓으며 이 같이 분석했다. 한국을 상대로 반도체 핵심부품 수출을 규제한 후 한국 반도체 산업은 규제 품목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지만, 수입국을 잃은 일본 경제는 오히려 타격을 입었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있은 후 2년만의 성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액은 17년 만에 1천만 달러 아래로 떨어졌고, 대부분 일본에 의존했던 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의 경우엔 벨기에산 수입이 12배 늘어나면서 대일 의존도는 50% 이하까지 떨어졌다. 100대 핵심 품목의 대일 의존도 역시 2년 사이 31.4%에서 24.9%로 6.5%포인트 감소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2년 전 갑자기 단행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오히려 역풍을 맞은 것이다.

KRISS 가스분석표준그룹 산업용독성가스분석표준팀이 불화수소 품질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표준연]

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 시작됐던 정부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경쟁력 강화 대책이 시행된 지 2년만에 좋은 성과를 드러냈다. 100대 핵심품목의 일본 의존도 감소세는 3배 가속화 되고, 우리 소부장 기업의 매출은 약 20.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일본은 지난 2019년 7월 반도체 핵심 소재인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 등 3대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그 해 8월부터는 한국을 일반포괄허가대상(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 제 꾀에 넘어간 日…韓 소재 국산화 길 열어

일본이 이처럼 나선 것은 우리 경제를 볼모로 과거사 문제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한국은 수입 다변화와 국산화로 맞섰다. 그 결과 지난해 일본산 불화수소 수입액은 938만 달러로 일본 수출규제 직전인 2018년 6천686만 달러 대비 무려 86%나 줄었다. 1천만 달러를 밑돈 것은 2003년 738만 달러 이후 17년 만이다.

이 중심에는 삼성전자가 출자한 솔브레인과 SK머티리얼즈의 역할이 컸다. 솔브레인은 고순도 불산액 생산을 시작, 최근 12N(99.9999999999%)의 초고순도 제품 생산능력을 2배 확대했다. SK머티리얼즈는 고순도 불화수소가스 양산에 성공하며 국산화를 이끌었다. 이 외에도 일본산 대신 각 업체들은 미국, 중국, 대만 등에서 생산된 소재들의 비중을 늘렸다.

EUV 포토레지스트도 2년 만에 대일 의존도가 50% 이하로 감소했다. 벨기에산 수입이 12배 늘어난 덕분이다. 포토레지스트는 반도체 생산공정 중 노광 단계에 쓰이는 것으로, 일본이 전 세계 90%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수출 규제 이전까지 포토레지스트의 국산화율은 0%였다.

하지만 최근 듀폰, 도쿄오카(TOK) 등 글로벌 기업의 국내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삼성SDI 등 일부 국내 업체는 관련 설비를 구축, 시제품을 테스트하며 국산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EUV 노광장비는 당시 삼성전자만 사용 중이었다"며 "이에 일본이 사실상 삼성의 초미세공정 경쟁의 발목을 잡기 위해 수출 규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진행된 '일본 수출규제 대책 민·관·정 협의회' [사진=아이뉴스24 DB]

폴더블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인 불화폴리이미드는 코오롱인더스트리, SKC가 자체 기술 및 생산 기반을 확보하며 일본산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특히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스미토모화학 등과의 기술 격차를 대폭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부 기업은 휴대폰에 국내서 개발한 대체 소재인 울트라신글라스(UTG)를 탑재하기도 했다. 불화폴리이미드는 불소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 등을 강화한 PI 필름으로, 일본이 전 세계 생산량의 약 70%를 공급하고 있다.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도 국산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다. SK실트론의 경우 그동안 삼성전자에서 가장 많은 물량을 담당하던 일본 섬코를 지난해 처음으로 밀어내고 최대 웨이퍼 협력사 자리를 차지했다.

패키지 기판 핵심 소재인 '초극박'은 일진머터리얼즈와 솔루스첨단소재의 주도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두 업체는 일본 미쓰이가 주도하던 반도체용 초극박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핵심 물질 분야에서는 삼성SDI와 솔루스첨단소재, 덕산네오룩스 등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유진테크와 테스, 한미반도체, 제우스 등도 일본 독점 장비를 국산화하며 시장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 정부 지원에 韓 소·부·장 경쟁력 강화…日 기업 '울상'

이 같은 움직임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도 주효했다. 산업부는 경기(반도체), 충북(2차 전지), 충남(디스플레이), 전북(탄소 소재), 경남(정밀기계) 등에 '소부장 특화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소부장 기업 대상의 자금, 세제, 규제 완화와 같은 '패키지 지원 방안' 등으로 국내 기업을 뒷받침했다. 특히 올해 일몰될 예정이던 소재부품특별법은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소부장특별법)으로 업그레이드돼 기술독립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년 동안 소재·부품 기업 현장 방문,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생산공장 준공식 참석 등 6차례 국내 소부장 기업·기관 현장 방문을 통해 자립화를 독려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오전 한국 무역협회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 참석해 "수출규제 3대 품목의 공급망이 안정적으로 구축됐다"며 "국내 산업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일본 의존도를 25%까지 줄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중소·중견기업들의 활약은 소부장 산업의 가파른 성장을 이끌었다"며 "시가총액 1조원 이상의 소부장 중소·중견기업이 13개에서 31개로 늘었고, 소부장 상장기업 매출액도 다른 업종의 두 배 가까운 증가율을 기록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소재·부품·장비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더불어 문 대통령은 국산화 비중을 더 늘리기 위해 소부장 2.0 전략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를 통해 소부장 으뜸기업 100개 육성, 5개 첨단 특화단지 조성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가 갖게 된 교훈은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우리의 강점을 살려나가되 핵심 소부장에 대해서는 자립력을 갖추고 특정 국가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면서도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서도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국내 기업들의 '탈 일본' 움직임에 일본 기업들은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대형 고객사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붙잡지 못하자 줄줄이 경영난에 빠진 것이다. 특히 불화수소 생산기업인 스텔라케미파와 모리타케미칼은 연간 60억 엔(약 612억원) 수준의 매출 타격을 입었다.

이에 불안감을 느낀 일본 기업들은 오히려 '한국행'을 택했다. 일본 기업이 수출 관리 대상 화학품을 한국에 수출하려면 여전히 경제산업성의 특별 허가가 필요하지만 한국에서 생산할 경우에는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포토레지스트 생산업체인 도쿄오카공업은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인천 송도의 기존 공장에 수십억 엔을 추가 투자해 생산능력을 2018년의 2배로 늘렸다. 이곳은 전 세계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증설한 설비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인 EUV 포토레지스트도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화수소 생산 기업인 다이킨공업은 내년 10월 충남 당진에 3만4천㎡ 규모의 반도체 제조용 가스 공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공장 건설에는 앞으로 5년간 40억 엔이 투입된다. 다이킨공업은 그동안 불화수소를 중국에서 만들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해왔으나, 공장이 건설되면 이를 모두 한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쇼와덴코머티리얼즈(옛 히타치카세이)도 2023년까지 200억 엔을 들여 한국과 대만에서 실리콘웨이퍼 연마제와 배선기판 재료 생산설비를 증설하기로 했다. 일본 호리바그룹 역시 최근 질량유량 제어기기(MFC)를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했다. MFC는 반도체 증착 및 식각 공정에서 가스 공급의 정밀 제어 역할을 하는 제품으로, 호리바그룹의 시장점유율은 60% 내외다.

이 외에도 글로벌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과 고유전재료를 생산하는 아데카, 특수가스 황화카르보닐을 만드는 간토덴카공업, 도체 장치용 석용 유리 제조업체 토소 등이 국내 거점 강화에 나선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생산한 제품을 한국에 수출하는 기존 방식을 고수해서는 사업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어려워진 일본 업체들이 현지 생산으로 전략을 바꿔 한국 기업 붙잡기에 나선 것"이라며 "다만 일본이 2년 전처럼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것이 아닌 최근 대만 TSMC와 손잡고 은밀하게 국내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 등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재 부문에선 성과가 조금씩 보이지만 장비 부문은 여전히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며 "장비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업체들의 관심도 높여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