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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式' 인사카드 꺼낸 이재용…재계 확산되나


'성과주의' 기반 수평적 문화에 무임승차 사라질 듯…고참급 상무들 승진 '비상'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이재용 부회장의 '뉴삼성'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실시한 '미국 실리콘 밸리식(式)' 인사제도 개편안이 재계로 확산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 개편안은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에 대응함과 동시에 철저한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평가와 승진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만 노조의 결집력이 약화되고 직원간 무한 경쟁 체제를 부추길 가능성도 높아 재계에선 벤치마킹에 나서기 보다 일단 삼성전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캐나다 출장을 마치고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국·캐나다 출장을 마치고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귀국하며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승격제도'와 '양성제도', '평가제도'를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적용할 것이라고 29일 발표했다. 이는 5년 만의 개편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통해 '뉴 삼성'으로 도약하겠다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이번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인사 개편안의 가장 큰 특징은 실리콘밸리식의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지향한다는 점에 있다"며 "이를 위해 나이와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해 젊은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인재양성을 위한 다양한 경력개발 기회와 터전도 마련할 것"이라며 "상호 협력과 소통의 문화도 조성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가장 먼저 직급별 표준체류기간을 폐지하고 삼성형 '패스트트랙'을 새롭게 도입한다. 현재 삼성전자의 직급은 4단계(CL1~CL4)로, CL1은 고졸·전문대졸 사원 CL2는 대졸 사원, CL3은 과·차장급, CL4는 부장급으로 나뉜다. 직급 한 단계를 올라서기 위해선 통상 8~10년의 기간이 필요하지만, 승진 연한이 사라지게 되면 고성과자가 직급과 상관없이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움직임은 임원 체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전무 직급을 폐지하고 '부사장'으로 통합하면 좀 더 젊고 유능한 경영진을 조기에 육성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CEO(최고경영자)를 제외한 임원을 '바이스 프레지던트'로 동일 표기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부 내부 임원들은 이번 개편안을 두고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기존에는 상무 6~8년, 전무 5년 정도를 거치면 부사장 직급으로 승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으나, 이번 일로 성과 평가가 까다로워지면서 상무에서 부사장으로 올라가는 일이 예전보다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개편안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된 것은 부사장 직급을 곧바로 달게 될 기존 전무 직급 임원들"이라며 "이번주에 있을 내년 인사에서나 내후년께 전무 승진을 앞두고 있던 고참급 상무들은 당분간 승진의 기회가 사라지게 돼 울상"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일로 30대 임원, 40대 CEO가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면서 MZ세대와 1960년대생 사이에 낀 1970년대생의 설 자리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을 듯 하다"며 "다만 '586세대'로 불리는 1960년대생의 장기 집권은 당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승격제도'와 '양성제도', '평가제도'를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적용한다. [사진=아이뉴스24 DB]
삼성전자는 내년부터 '승격제도'와 '양성제도', '평가제도'를 중심으로 한 '미래지향 인사제도' 혁신안을 적용한다. [사진=아이뉴스24 DB]

또 삼성전자는 사내 인트라넷에 직급 및 사번 표기를 삭제하고 매년 3월 진행되던 공식 승격자 발표도 폐지했다. 여기에 상호 높임말 사용을 공식화 해 직원들이 서로의 직급을 전혀 알지 못하게 했다. 지금까지 호칭을 기본적으로 '님'으로 통일했지만, 팀장·그룹장·파트장·임원은 직책을 그대로 부르며 어정쩡한 상태로 운영돼 왔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더불어 다각도 평가를 토대로 하는 '승격세션'을 도입해 과감한 발탁 승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절대평가를 확대한 것이 대표적으로, 이번에 최상위 10% 직원에 부여하는 EX 등급은 유지하되 VG 등급의 비율 제한을 폐지시킨 것이 눈에 띈다. 이에 따라 나머지 90% 직원은 기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됐다. 삼성전자의 임직원 고과 평가는 그동안 'EX(Excellent)'와 'VG(Very good)', 'GD(Good)', 'NI(Need improvement)', 'UN(Unsatisfactory)' 등 5개 등급으로 구성돼 상위 10% 임직원은 가장 높은 등급인 EX를 받고, 이후 25% 임직원은 VG 등급을 받았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부서원들의 성과창출을 지원하고 업무를 통한 성장을 유도하기 위해 부서장과 업무 진행에 대해 상시 협의하는 '수시 피드백'을 도입키로 했다. 또 상급자가 하급자를 평가하는 현행 방식도 바꿔 상호 평가인 '동료평가제(피어리뷰)'를 시범 도입키로 했다. 다만 일반적인 동료평가가 갖는 부작용이 없도록 등급 부여 없이 협업 기여도를 서술형으로 작성하는 방식을 적용했다. 이는 올 초 IT 업계에서 동료평가를 도입했을 당시 의견 수렴 과정에서 무한경쟁을 부추길 수 있고 불공정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개편안에는 사내 FA(Free-Agent) 제도 등의 내용도 담겨 있어 차세대 글로벌 리더를 양성하고자 하는 이 부회장의 의지도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 제도는 같은 부서에서 5년 이상 근무한 임직원들에게 다른 직무·부서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으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업무역량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 국내·해외법인의 젊은 우수인력을 선발해 정기간 상호 교환근무를 실시하는 스텝(STEP, Samsung Talent Exchange Program) 제도도 실시한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인사제도 혁신을 통해 임직원들이 업무에 더욱 자율적으로 몰입할 수 있고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미래지향적 조직문화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향후에도 100년 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임직원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인사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 방문한 이재용 부회장 [사진=삼성전자]

이처럼 삼성전자가 인사제도를 대대적으로 개편한 것은 올 초 성과급 논란과 함께 고과평가에 대한 불만이 MZ세대 직원들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IT 업계에서 시작된 임금 인상 러시 속에 공정한 보상 요구 움직임이 재계 전반으로 확대되며 젊은 인재들이 현 인사제도에 대해 불만을 품고 이탈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번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전자 임직원 중 사실상 주 40시간도 겨우 채울 정도로 업무를 하지 않으면서도 연봉이 인상되거나 성과급을 받을 때 무임승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내부에선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개편안에 맞춰 고과평가가 이뤄지면 개인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무임승차하던 이들도 많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연봉 협상 등에서 목소리를 높이던 노조 측면에서도 앞으로 한 목소리를 내기는 점차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될 것을 대비해 그동안 임직원 온라인 대토론회 및 계층별 의견청취 등을 통해 인사제도 혁신방향을 마련해 왔다. 또 노사협의회와 노동조합, 각 조직의 조직문화 담당자 1천여 명을 대상으로 미리 내용을 설명하고 청취해 세부 운영 방안을 수립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또 재계에선 삼성전자의 여러 움직임들이 일종의 업무 표준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안이 다른 그룹으로 확산될 지를 두고 주목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기업 실적이 나빠도 임금을 깎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여서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며 "삼성전자 외에도 각 기업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연공성이 강한 임금 체계 대신 철저한 성과주의를 바탕으로 이를 개편하고, 인사 제도 역시 이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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