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人] 이기우의 해방일지 "날 울린 대본, 시청자 DM 울컥"


'나의 해방일지' 조태훈 역…"싱글대디 역 위해 '돌싱글즈' 봤다"

[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삼남매 모친의) 장례식장 인공관절 묘사에서 대본을 닫았어요. 아버지의 기억들이 겹쳐지면서 울음이 터졌죠."

이기우가 수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했던 것처럼, '나의 해방일지'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예쁘게 포장된 삶이 아닌, 날것의 일상과 투박한 인물들이 가슴을 탁 친다. 이기우는 공감했고, 위로 받았으며, 또 자신감을 얻었다.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태훈 역을 맡은 이기우는 서울 청담동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마치는 소회와 함께 캐릭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했다. 그는 "이번 작품은 유독 빨리 끝나는 것 같다"라며 "종영의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고 했다.

이기우가 '나의 해방일지' 종영 인터뷰를 진행,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네버다이엔터테인먼트]

◆ "싱글대디 역 위해 '돌싱글즈' 보기도…점점 태훈화 됐다"

'나의 해방일지'는 견딜 수 없이 촌스러운 삼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 소생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기우는 '나의 해방일지'는 대본을 받아든 그 순간부터 인생작의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곧 데뷔한지 20년이 되는데, ('나의 해방일지'는) 처음 볼 때부터 다른 느낌의 대본이었다. 너무 다양한 냄새가 나는 드라마라, 시간 나는 줄 모르고 빨리 대본을 보고, 여러번 읽었다"라고 말했다.

이기우는 염미정(김지원)의 직장 동료이자 싱글대디인 조태훈 역을 맡았다. 이혼한 뒤 누나들과 함께 초등학생 딸을 키우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말수도 없고, 표정도 무기력한 태훈을, 그는 치열하게 고민했다.

"태훈도 구씨처럼 말이 없어요. 오히려 말이 많은 것보다 말이 없는 연기를 하는게 더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몇 안되는 대사 중에서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을 내뱉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많은 것을 준비하기보단, 태훈스럽게 무기력하게, 힘빠진 것처럼 하려고 했어요. 물리적으로 많지 않았던 대사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내기 위한 공부를 많이 했고, 큰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아직 미혼인 이기우가 딸이 있는 '싱글대디'를 연기하기 위해 예능프로그램 '돌싱글즈'를 봤다고도 고백했다.

"이혼남에 싱글대디는 제가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라, 이혼한 분들을 매칭하는 프로그램을 봤어요. 실제로 제 절친 중에 싱글대디가 있는데 만나서 이야기도 듣고요. 그 친구가 예전에 없던 색깔들이 씌여진 것이 있어요. 태훈하고 닿아있는 부분인데, 평소보다 표정을 아끼게 되는 부분이요.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상대방한테 특별히 호의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웃음을 지을 수도 있지만 미소 없이 건조하게 지나가는 태훈의 모습을 신경 썼어요. 드센 누나들 사이에서 살아가고, 아빠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책임감도 있어 태훈은 더 표현을 안하게 된 것 같아요."

이기우는 자신의 MBTI가 'ENFJ'라며 사교적이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반면 태훈은 내향적인 성격이 강한 'I'형 인물이다. "감독님이 제 성격을 걷어내는 걸 주문해서 처음엔 좀 힘들었다"라고 털어놓은 이기우는, 어느 순간 촬영장에서 말도 없어지고 '태훈화'가 됐다고.

"저는 감정 표현에 솔직하고 즉각적인 표현을 하는 편이었는데, 태훈은 진중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탑재한 것 같아요. 태훈의 분위기를 오래 가져가고 싶어요. 이제 나이도 마흔 둘이 됐고. 나이에 비해서 생각하는 것이 어리다고 생각했는데 태훈이 많이 잡아주고 이끌어준 것 같아요."

◆ "태훈에 답답함 느낀 적 있다, 느린 사랑방식 나와 닮아"

태훈은 기정(이엘 분)과의 연애로 조금씩 변화한다. "연애가 거창하다 싶으면 한 번 만나보는 건 어떠냐"는 직진 고백을,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라는 말로 물러선다. "올 겨울에는 아무나 사랑하거나 머리를 밀겠다"는 그녀의 말에 "머리 밀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그 아무나"라고 용기를 내고, 결혼하자는 프러포즈에 "그럽시다"라고 멋없이 대답한다. 초반까지는 '연애 진도'를 빼지 못하는 그에게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면, 이후에는 설렘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저도 중반부까지 말수도 적고 내성적인 태훈에게 답답함을 느꼈던 적이 있어요. 딸아이한테 다정할 수 있는데, 건조하고 재미없는 아빠일 필요가 있을까. 기정이 결혼하자는 말에 '그럽시다'라고 했을 때도 로맨틱함을 더해도 좋지 않았을까. 그런데 방송을 봤을 때 '그럽시다'라는 네글자가, 제가 생각한 느낌보다 센 느낌이었어요. 글자수가 많고 말이 많다고 임팩트가 있는게 아니더라구요. 제가 태훈의 옷을 억지로 입은 부분도 있는데, 그렇게 했어야 태훈의 캐릭터에 방해가 되지 않아요."

"싱글대디와 이혼남인 나에게, 스스로 프레임이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 것 같아요. 기정에게 제대로 한턱 쏘고 싶다며 그 자리에 뛰어갔을 때, 태훈에게 쉬라고 했던 사람이 기정이 처음이었잖아요. 그게 태훈에게 엄청난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물음표를 던지는게 아니라 느낌표를 던지는 사람. 그때 기정에게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다가갔던 것 같아요."

성격은 정반대라도, 태훈의 그런 사랑방식은 이기우와도 닮아있는 부분이다. 이기우는 "이성에 대해서는 조금 더 오래 걸리고, 스스로 표현하는 과정도 더디고 절제하는 편이다"라며 "태훈에게 기정이 다가왔을 때, 저와 환경은 다르지만 즉각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거나 내 의사를 즉각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닮았다"고 했다.

◆ "삼남매 母 인공관절, 돌아가신 父 겹쳐져…나도 용기 내볼걸"

이기우에게 '나의 해방일지'는 고맙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드라마의 화제성과 인기 때문이 아닌,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됐고 위로가 됐다. 산포 삼남매의 엄마 곽혜숙(이경성 분)의 장례식장에서 인공관절이 드러난 유해를 보며, 수 년 전 하늘나라로 떠난 아버지를 떠올린 장면이 그랬다.

"14회 대본에서 인공관절 묘사에서 바로 닫았어요. 대본이 갑자기 저를 울렸죠. 창희(이민기 분)가 관절을 갖고 와서 묻는 신이 있었는데, 저희 가족은 안 가지고 왔어요.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때 용기 내볼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고 받은 DM 중에, '코로나 시국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못했다. 화장한 것만 덜렁 받았는데, 임플란트가 있더라'고 했어요. 그 DM을 보고 울었어요. '나의 해방일지'는 우리와 깊이 닿아있는 드라마라 너무 사랑스러워요."

이기우가 '나의 해방일지' 종영 인터뷰를 진행,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네버다이엔터테인먼트]

드라마가 주는 '공감'의 힘은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들을 통해서도 실감했다.

"이번 드라마 하면 저도 새로운 경험을 했어요. 아이 낳고 직장 생활하는 친구들한테 오랜만에 연락이 왔어요. 직장 생활을 해보지 못한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애 둘, 셋을 키우는 친구들은 자기 표정이 가끔 보이는 것 같아서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힘내라고. 이전에 금수저, 실장님으로 나올 때는 '원래 이기우를 잘 아니까 감정 이입이 잘 안됐고 하던데(웃음). 그들이 입고 있는 비슷한 옷을 입고 나오니까 태훈으로 보인 것 같아요. 배우로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어요."

자신을 옭아매는 무언가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해방클럽' 멤버들의 잔잔하고 조용한 케미는 시청자들에 또다른 힐링을 선사했다. 태훈은 "약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기"에서 해방되는 걸 원했다. 배우 이기우가 해방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남을 의식하면서 많이 살아왔는데, 덜어내려고 했어요. 화려한 동네에서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게 됐고, 그래서 캠핑에도 빠지게 됐죠. 드라마 끝나고 미국에 한 달 정도 갔는데, 캠핑하고 바람 쐬고 하면서 만났던 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받았어요. 최근에 해방구를 찾은 느낌이 있어요. 돈이나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멍을 찾았어요. 잘 살게 되는 삶이 뭔지, 가치 서열도 많이 바뀌었어요. 답답하고 억눌려있는 것들로부터 해방 되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돈이 많고 슈퍼카를 끌고 다닌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잖아요.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만족스러워요."

◆ 데뷔 20년차, '금수저 실장님'으로부터 해방…"자신감 얻었다"

이기우는 2003년 영화 '클래식'으로 데뷔해 20년차 배우가 됐고, 마흔을 넘어섰다. 예전엔 "내가 아직도 이 위치에 있구나. 분발 해야겠다"고 자신을 채찍질 하던 그는, 이제서야 "이 일을 꾸준히 해온 것 자체가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평소 '금수저' '실장님' 역을 주로 도맡아했던 그는 "감독님이 쓰기에 좋은 도구는 아니다. 너무 길다. 저보다 적합한, 도구들이 널려있다"면서도 캐릭터에 대한 갈증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기우라는 배우를 새롭게 요리해준 '18어게인', 그리고 '나의 해방일지' 덕에, 자신감을 얻었다.

"군대를 30살 넘어서 갔어요. 그러고 나서는 역할이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어요. 10년 넘게 이 일을 해와서, 일반 회사도 갈 수 없는데. 다른 역할에 대한 니즈는 키워왔는데, 계속 재벌 2세, 실장 역할이 계속 들어왔어요.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18어게인'은 그동안 안해왔던 역할이라 뒤통수를 세개 때리고 싶었어요. 그 때 실시간 댓글이 장난 아니었는데, '

클린봇'이 떴어요. 전 그게 좋았어요. 나와 다른 역할을 했을 때 이런 묘미가 있어요."

이기우에게 '나의 해방일지'는 그래서 소중한 이정표다. 이기우는 "이 드라마만큼 현장에서 감독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몇 번 없다. 김석윤 감독님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이 촬영 몇회차가 남았는지 다 알고 계실 정도였다. 인간으로서 대접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이 자신감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됐다"라며 "작품 외적으로 인간 이기우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영향을 받은 현장이었다"고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전했다.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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