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여행]<34> 치매노인을 위한 AI스피커에 꼭 필요한 것은?


어머니가 이상해지셨다. 조금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지 못하고 시장에 장을 보러 가서는 똑같은 물건을 계속 사오는 것이었다. 냉장고에 유통기한을 넘긴 두부가 쌓이는 것을 보는 순간, 그의 머리에 작은 경고등이 켜졌다.

몇 년 전 어머니의 치매를 눈치챈 순간부터, 그는 앞으로의 긴 여행을 준비했다. 도서관에서 치매에 관한 책이라면 빠지지 않고 빌려와서 읽고, 치매가족 카페에 가입해서 경험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치매가족들은 서로 억장 무너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위로하지만 그에게 더 필요한 것은 폭우를 막아줄 우산이었다.

그는 앞으로 일어날 문제들을 리스트로 작성했다. 먼저 어머니가 집을 나가 길을 잃는 것. 휴대폰의 위치추적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았다. 어머니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으니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쉽게 찾으러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무실에서 앱을 확인했을 때에는 하루 종일 집에 계셨는데 사실은 어머니는 밖에서 헤매고 계셨다. 알고 보니, 집에 핸드폰을 두고 나간 것이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로 집을 나갔을 때에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가슴이 화득거리는 하룻밤을 보낸 뒤 연락이 온 곳은 한 시간 거리의 지구대였다. 게다가 어디에 맞았는지, 부딪혔는지 어머니의 한 쪽 눈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제대로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가 고안해 낸 방법은 어머니가 핸드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도 쉽게 위치를 파악하는 방법이었다. 현재 위치를 전송해 주는 QR코드를 어머니 옷에 부착해 주었다. 어머니가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어머니의 옷에 있는 QR코드를 핸드폰으로 찍어주면 위치정보가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송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아직 인지가 가능한 어머니에게 길을 잃고 헤매게 되면 무조건 사람들에게 QR코드를 보여주라고 당부했다. 치매가 더 진행된 뒤에는 눈에 잘 뜨이게 모자에 달아주고 간단한 설명도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위치를 추적하는 경우에는 치매환자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인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있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친절하게 연락을 취해주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약물 복용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한 봉지씩 먹어야하는 치매약을 여러 봉지 한꺼번에 삼키고 까무라쳐 버렸다. 치매를 앓는 사람에게 약 복용이란 초등학생의 숙제처럼 보호자의 몫인데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어머니에게는 사람이 아닌 기계의 도움이 필요할 듯 했다. 노인용 약 분배기를 찾아봤지만 제대로 기능을 하는 제품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머니는 갈수록 보폭이 좁아지면서 아기처럼 아장아장 걷는다. 게다가 바닥의 깔개나 문턱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잦아졌다. 낙상도 대책을 세워야 할 문제 리스트에 올렸다. 낙상과 관련해 시중에 나와 있는 기술 상품들을 살펴보았다. 침대나 휠체어, 의자 등에 센서를 달아서 움직임을 감지하다가 낙상 예고를 해 주는 기술들이 연구 개발되는 중이다.

어머니는 증세가 진행되면서 더욱 부산스럽게 이곳 저곳을 헤매고 돌아다니신다. 새벽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 생긴 뒤로는 그는 밤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하게 됐다.

그가 생각해 낸 대책은 현관에 센서와 무선 스피커를 연결하는 것이다. 현관 문 위의 모션 센서가 어머니 동작을 감지하면 집안에서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크게 흘러나온다. '어머니, 어머니, 이쪽으로 와보세요. 어머니! 이게 뭐죠?!' 어머니는 나가는 것을 멈추고 소리가 나오는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사이에 나가려던 생각을 잊는다. 무조건 못 나가게 하는 것은 어머니를 억제하거나 자극하는 것이기에 주의를 돌리는 작전을 쓴 것이다.

점점 어머니는 허깨비가 되어 돌아다닌다. 소녀처럼 명랑하고 이것 저것 참견하던 호기심은 모두 사라졌다. 우두커니 앉아 있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면 영혼은 이미 떠나버린 것만 같았다. 울고 싶은 그는 어머니를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할 방법을 궁리했다. 직장을 다녀야 하는 그가 없는 낮 시간, 띵뚱 하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고. 아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우리 심심한데 같이 옛날 이야기 해 봐요." 어머니는 아들의 목소리에 반응한다. "어머니, 자 소파에 앉아보세요" 소파에 앉으면 TV가 켜지고 어머니가 이해하지 못하는 오락프로그램 대신 조용한 음악을 배경으로 어머니의 앨범 사진들이 한 장씩 화면에 나타난다. 세일러복을 입은 여고생, 물방울 원피스를 입고 수줍게 웃던 신혼 초의 모습, 남편과 어린 아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화면에 떠오른다. 어머니는 환하게 웃는다.

엔지니어 출신인 유재관 씨의 어머니는 지난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와의 치매여행을 하는 지난 몇 년간 그의 손에서 다양한 기술들이 만들어지고 시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이 수월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술은 우산이 되어주었다.

치매인을 위한 AI스피커, 배회감지기, 외부에서 원격 조절하는 가스차단기 등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노인을 위한 기술은 디지털대전환을 위한 정부의 한국판 뉴딜정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기업들도 노인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슷비슷한 기능의 제품이 중복 개발되거나 복잡한 애플리케이션 때문에 치매인과 가족들은 더 혼란스럽기만 하다.

기술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치매를 가진 사람의 마음에 꽃잎을 피워내는 것은 오랜 세월 익숙하고 다정한 가족의 목소리이다. AI스피커의 기계음은 말할 것도 없고 추억의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도 치매를 가진 사람에게는 다 귓등을 스쳐가는 소음일 뿐이다. 기술에 마음이 입혀질 때, 진정한 노인을 위한 기술(Gerontechnology)이 완성될 것이다.

◇김동선 조인케어(www.joincare.co.kr)대표/우송대학교 사회복지아동학부 초빙교수는 30대에 초고령국가 일본에서 처음 노인문제를 접한 뒤 다니던 신문사를 그만 두고 노인문제전문가로 나섰다. '야마토마치에서 만난 노인들' '마흔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노후대책7'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번역)' '노후파산시대, 장수의 공포가 온다(공저)' 등을 썼으며 연령주의, 치매케어등을 연구하고 있다. 치매에 걸려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으며 좋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 현장을 만들기 위해 '사람중심케어실천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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