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김문기의 아이씨테크]


[다시 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8부. 3G 시대 개막

우리나라가 정보통신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첫발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 한국데이터통신(LGU+), 한국이동통신서비스(SKT)가 설립된 지 꼬박 40여년이 흘렀습니다. 그간 이동통신 역시 비약적으로 성장해 슬로우 무버에서 패스트 팔로우로, 다시 글로벌 퍼스트 무버로 도약했습니다. 5G 시대 정보통신 주도권 싸움은 더 격렬해졌고, 다시 도전에 나서야할 절체절명의 시기를 맞이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부족하지만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이동통신 연대기를 다시 시작합니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담긴 독자의 제보도 받습니다 [편집자주]
삼성전자가 26일 중국 베이징 켐핀스키 호텔에서 열린 'TD-SCDMA 서미트'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TD-SCDMA 전용 단말기로 공개적으로 실시간 통화시연을 하는데 성공했다. [사진=삼성전자]

[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IMT-2000 서비스 시기를 연기할 수 있다.”

2001년 1월 3일. 신년간담회장에 등장한 이상철 한국통신 사장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IMT-2000은 2002년 5월 월드컵에 맞춰 상용화에 나설 계획이었다. 이보다 더 늦은 시기에 서비스가 도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 근거로 비동기식 국산장비 개발이 늦어 서둘러 상용화한다면 노키아와 에릭슨 등 외국 장비업체에게 국내 시장을 잠식이 우려됐다. 서비스 도입 시점에 해당되는 단말과 서비스가 제때 보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따랐다.

일각에서는 CDMA의 발전된 형태인 CDMA2000-1x 상용화가 가능해 급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에 개발시간이 필요했던 삼성전자도 장단을 맞췄다.

이같은 주장을 SK텔레콤은 즉각 반박했다. 표문수 SK텔레콤 사장은 1월 8일 취임간담회를 통해 IMT-2000 상용화 연기는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오히려 국내 장비업체의 개발을 재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동기식 개발을 서둘러 추진했던 LG정보통신도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교통정리에 나서야 했던 정부는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 시기를 민간 자율에 맡겼다. 그러다보니 정책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사업자 선정 심사에서 2002년 5월 상용화 가능성이 핵심이었는데, 사업권을 따내자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우선, SK텔레콤은 3월 5일 서울 서린동 SK그룹 사옥에서 ‘SK IMT’ 창립총회를 갖고 공식 출범했다. SK IMT-2000사업추진단을 이끌었던 강용수 상무를 대표로 선임했다. 초기자본금 3천억원, 직원 50명으로 출발한 SK IMT는 SK텔레콤을 최대 주주로 포철과 신세기통신, 파워콤 등 676개사가 함께 했다.

한국통신은 같은달 16일 서울 우면동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대강당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KT아이컴’을 공식 출범시켰다. 설립자본금 5천천억원으로 시작해 단시간내 총 250명의 직원을 선발하기로 했다. 조영주 KT IMT법인설립추진위원장이 초대 대표를 맡았다.

이후 5월 2일 신라호텔에서 한국통신프리텔은 한통엠닷컴(한솔PCS)과 합병하면서 새로운 사명인 ‘KTF’로 거듭났다.

◆ CDMA2000 1x 부상

업계 바람과 달리 전반적인 IMT-2000로의 항해는 전세계적으로 순탄치 않았다. 네트워크 장비와 단말 개발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에 따라 동기식 진영에서는 기존 CDMA(IS-95A/B)에서 한단계 진화한 IS-95C를, 비동기식은 유럽의 GSM을 발전시킨 GPRS에 주목했다. 이를 두고 통신업계에서는 2.5G라 불렀다.

우리나라는 동기식 CDMA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IS-95C에 집중했다. IS-95C의 또 다른 기술명은 ‘CDMA2000 1x’다. 사실 이 기술은 국제전기통신연합(ITU)가 3세대(IMT-2000)로 규정한 5개 기술표준에 해당된다. 기존보다 무려 2~10배 가량 빠른 최고 144kbps 속도를 낼 수 있어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낼만큼의 데이터를 소화할 수 있다.

즉, 3세대라 불러도 무방하나 그 속도나 기술발전상 IMT-2000의 문턱에 있다고 해 편의상 2.5G라 불렀고 정식 IMT-2000에서는 제외했다. 국내서도 이기술을 ‘IMT-2000과 유사한 기술’이라고 표현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3G다 -

CDMA2000 1x는 SK텔레콤이 2000년 9월 1일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10월 1일 서울과 인천 지역에서 상용화했다. 10월 2일에는 SK텔레콤과 신세기통신이 서울 관악구 봉천동 보라매 사옥에서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PDA를 통한 동영상 시연과 데이터 속도 시연을 마련하기도 했다. 한국통신프리텔도 10월 2일 시범 서비스를 시작해 같은달말 상용화했다. LG텔레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상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의 상용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네트워크 망을 갖췄으나 단말이 전무했다. 가입자가 없으니 빈수레만 요란했다. 실제 단말이 보급되기 시작한 때는 12월부터다. 삼성전자가 CDMA2000 1x를 지원하는 ‘SCH-X100’을, LG전자는 싸이언 ‘사이버-iX1’ 판매에 나섰다. 모두 퀄컴 MSM5000 칩을 내장한 단말이다.

CDMA2000 1x이 활성화된 때는 2001년 5월부터다. SK텔레콤과 KTF(전 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이 전국 주요도시를 기점으로 서비스 반경을 넓혔다. 6월에는 SK텔레콤이 전국 23개시에서 단말기를 통한 멀티미디어 상용 서비스를 개시했다.

특히,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 합병조건인 점유율 50% 달성이 끝나는 6월 이후 통신3사의 경쟁을 통해 CDMA2000 1x가 보다 활성화됐다.

CDMA2000 1x 도입으로 데이터 속도가 144Kbps로 늘자 단말과 서비스 측면에서 보다 진일보했다. 우선 단말기 컬러 디스플레이 시대를 맞이했다. 더 이상 흑백 화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없어졌다. 또한 영상통화 시대가 열렸다. 간단한 콘텐츠 정도는 열어볼 수 있게 되면서 만화나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 메시지도 애니메이션이 도입되는 등 다채로워졌다. 실제 긴 호흡의 영화나 드라마까지는 아니었으나 뮤직비디오나 뉴스 등을 열어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노래방 기능도 더해졌다.

CDMA 노하우를 갖추고 CDMA2000 1x까지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이룬 우리나라는 중국의 CDMA 구축 계획에 따라 수출길도 열렸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중국 장비 공급에 나서는 한편,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업자들은 방한한 중국 관계자들을 만나 망구축부터 운영/까지 전반을 전수해줬다. 자연스럽게 국격 역시 높아졌다. 차이나텔레콤과 차이나모바일, 차이나유니콤 등이 삼성전자, LG전자뿐만 아니라 국내 CDMA 장비사들과 연달아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5월말에는 삼성전자로부터 영상전용 휴대폰도 출시됐다. SK텔레콤을 통해 출시된 SCH-X200은 동영상 소프트웨어를 탑재해 주문형영상(VOD)을 원할하게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 CDMA2000 1x EV-DO 진화

비동기식 IMT-2000인 WCDMA 지연이 계속되자 이통사들은 CDMA2000 1x에 더욱 집중했다. 이미 전국망 구축까지 진행됐기에 그에 따른 망 고도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차기 기술표준은 ‘CDMA2000 1x EV-DO’다. 전자가 3G의 문턱에 왔다면 EV-DO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정식 3G 기술표준으로 평가받았다.

CDMA2000 1x EV-DO는 퀄컴이 독자 개발한 HDR(High Data Rate)을 말한다. EV-DO(Evolution-Data only)란 말 그대로 데이터만을 취급하는 기술을 말한다. 최대 속도 2.4Mbps를 낼 수 있다. 바야흐로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킬로 시대에서 메가 시대로의 진입이다.

이통사들은 월드컵 시기에 맞춰 상용화할 예정인 WCDMA 대신 EV-DO를 선택했다. KTF와 SK텔레콤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SK텔레콤은 3월 장비업체들을 대상으로 예비제안요청서(RFI)를 요청하는 한편, KTF는 한발 더 빨리 정식으로 제안요청서(RFP)를 내기도 했다.

KTF는 이 분야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기술 역량이나 전개 속도는 KTF가 한발 더 앞섰다. SK텔레콤도 가만있을 수 없었다. 2002년 5월 이전 상용화를 발표하는 KTF보다 앞서야 한다는 목표로 배수진을 쳤다. 그도 그럴것이 EV-DO는 ITU로부터 당당히 3세대 기술표준으로 인정받은 바 있기에 IMT-2000의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KTF는 11월 7일 누구보다 빨리 EV-DO 상용 시스템에 대한 시험평가를 실시했다. 경기도 일산 KTF 시험센터와 인근 8개 기지국사를 통해 다양한 장비들을 테스트했다. 이를 통해 2002년 1월 최종 장비사를 채택하겠다는 전략이다.

SK텔레콤도 맞섰다. 11월 17일부터 서울과 과천, 안양 일부지역을 대상으로 EV-DO 시범서비스를 전개했다. KTF는 SK텔레콤의 도발에 정면 대응했다. 40여개 시험기지국 수준이 시범서비스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 사업자 모두 2월말 수도권 지역을 우선으로 네트워크 구성을 마치고 3월부터 정식 서비스에 돌입할 것이라 선언했다.

2002년이 도래하자 두 진영의 경쟁은 극에 달했다. SK텔레콤은 우선적으로 인천 지역을 앞세워 CDMA2000 1x EV-DO 상용화에 나섰다. 물론 KTF는 시범서비스 수준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세계 최초 상용화라는 타이틀을 따내기 위함이었으나 돌이켜보면 급했다. 당시 제대로된 단말이 있을리 만무했다. PDA와 PCMCIA형 단말기를 적용한 노트북PC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통상적인 단말인 휴대폰이 아니었다. 요금 서비스는 패킷당 2.5원으로 책정됐다. 망과 요금은 있으나 보편화된 단말이 없었던 셈이다.

무늬만 세계 최초였기는 하나 기록은 남았다. 일본 KDDI나 미국 스프린트보다는 약 1년을 앞선 성과였다.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경쟁양상에 따른 지적이 있을 수는 있었으나 전세계적으로는 우리나라의 CDMA 역량을 과시할 수 있었다. 또한 동기, 비동기를 넘은 IMT-2000을 상용화한 국가로 남게 됐다.

급했기에 벌어진 헤프닝도 있었다. SK텔레콤은 5월 2일 EV-DO 시연회를 개최했다. 문제는 이 시연회에서 시스템 먹통으로 인해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서버 문제로 네트워크에는 이상이 없다고 해명하기는 했으나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KTF도 동일한 사고가 있었다. 2001년 11월 EV-DO 시범서비스 시연회에서 비슷한 오작동 사례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서버 오류가 있다는 해명이 있었다. 이같은 헤프닝은 사업자뿐만 아니라 장비사의 비난으로 확산되기도 했다. 시연 성공 유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날선 공방을 벌였다.

EV-DO가 본격화된 때는 약속된 일정인 2002년 5월부터다. 5월 10일 KTF가 정식으로 EV-DO 상용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경쟁이 심화됐다. SK텔레콤 역시 전국 26개 도시에서 EV-DO를 상용화했고 전국망을 완성하는 중이었다. 또한 6월 10일 삼성전자가 지원단말인 SCH-E100을 출시하면서 가입자가 점차 늘어갔다.

그 사이 5월 31일 드디어 2002 한일월드컵이 개막했다. 88서울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이동통신의 시작을 알렸다면 이 때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위엄을 60억 인구를 대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SK텔레콤은 당시 응원단이나 마찬가지인 붉은악마를 후원해 ‘Be the Reds’ 슬로건을 앞세웠다. KTF는 명칭을 살려 ‘Korea Team Fighting)’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SK텔레콤과 KTF, LG텔레콤은 총 2천240여대의 임대 단말기를 마련하는 한편, 국내외 VIP와 취재기자들을 위한 IT기술 시연장을 설치해 운영했다. 호텔 등의 숙박시설은 초고속인터넷이 지원됐다. 주요 해외 언론들도 우리나라의 EV-DO 기술력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했다. 통신망을 따라 포토메일이 오고가는 한편 중계방송 역량도 과시했다.

영국 CNN과 파이낸셜타임즈,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워싱턴 포스트, 홍콩 파 이스턴 이코노믹, 일본 요미우리 신문, 독일 ZDF 등 앞다퉈 CDMA 종주국으로 한국을 추켜 세웠다.

SK텔레콤과 KTF는 지속적으로 CDMA2000 1x EV-DO 망구축 확산에 나섰다. KTF는 전용 멀티미디어 서비스 브랜드 ‘핌(Fimm)’을 론칭했고, SK텔레콤은 11월 25일 삼성전자 SCH-V300이 출시되면서 비슷한 브랜드인 ‘준(June)’을 출범시켰다.

한편, LG텔레콤은 비동기 IMT-2000 사업권을 따낸 후 EV-DO를 건너뛰고 보다 완성된 기술인 EV-DV로 점프하겠다고 선언했다. EV-DV(Evolution-Data and Voice)는 데이터만 전송하는 EV-DO와는 달리 음성과 데이터 모두를 패킷 방식으로 서비스할 수 있는 기술이다.

[표] CDMA 기술 진화 현황 [사진=김문기 기자]

◆ 뒤엉킨 IMT-2000 해석…교통정리 못한 정부

이같은 이동통신 전개 내용 중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SK텔레콤과 KTF가 IMT-2000을 상용화했다는 말이 그렇다.

정부는 IMT-2000 사업자 공모를 추진해 SK텔레콤과 KTF에게 비동기식 IMT-2000 사업권을 부여했다. 비동기식 IMT-2000 사업권은 LG텔레콤으로 최종 확정됐다.

그런데 SK텔레콤은 동기식 IMT-2000 세계 최초 상용화 기업이 됐고, KTF는 완성된 동기식 IMT-2000 사업자로 기록됐다. LG텔레콤은 그 과정에서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를 후일로 미뤘다.

분명 정부가 동기식과 비동기식 기술표준 경합으로 인해 고심 끝에 동기와 비동기 1곳, 동기 또는 비동기 1곳으로 총 3개 사업자를 선정하고 그에 따라 2개 사업자만 비동기로 결정되고 동기식은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쳐 극적으로 선정됐는데, 결과적으로는 기술표준 상용화가 뒤엉킨 꼴이 됐다.

게다가 비동기식 IMT-2000 상용화는 연기됐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술용어들이 난무하면서 고객 혼란이 가중됐다. 한층 더 뜨겁게 타오른 이통사의 마케팅 경쟁은 이같은 어려움을 부채질했다. 그러다보니 정부의 잘못된 예측과 실패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민간 자율에 맡기며 뒷짐진 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졌다. 게다가 비동기 사업자의 동기 전환에 대한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논란을 키우기까지 했다.

이같은 상황은 기술표준 동향과 시장의 이해관계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면서 발생한다. 이동통신 기술표준을 정립하는 ITU의 경우 3세대 이동통신 기술을 ‘IMT-2000’으로 명명했다. 3G를 실현하기 위한 기술표준은 복수로 설정됐다.

당시 ITU에 기술표준 제안은 유럽식 3GPP와 미국식 3GPP2가 대표적이다. 이 표준화기구들에는 각국의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이동통신사, 장비사들이 포함돼 있다. 각각의 이익에 맞춰 표준을 옹립하거나 등한시한다. 즉, 제안된 기술표준 후보는 ITU가 일정에 맞춰 이를 확정하는 절차를 거친다.

‘CDMA2000 1x’로 알려진 IS-95C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3G 문턱에 위치했다고 해서 2.5G로 불렸다. 다만, 이 기술은 2000년 5월 ITU가 CDMA2000 1x로 명칭을 확정하면서 3G 기술표준으로 인정했다. 즉, ITU 기준으로 이 기술은 3G로 구분된다.

진화단계인 ‘CDMA2000 1x EV-DO’에 대해 ITU는 2000년 11월 동기식 IMT-2000으로 인정했다. 이 역시 3G 기술표준에 포함된 것. 간단하게 말하면 ‘그 때는 아닌데, 지금은 맞다’ 상황이다. 시점 상으로 차이가 발생하기는 하나 개발 단계에서 또는 망 구축 상황에서는 IMT-2000으로 인정받지 않은 기술표준이 이후 상용화 직전 또는 상용화 후 IMT-2000으로 확정된 셈이다.

이같은 동향을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케팅 용어와 혼용하면서 고객 혼란이 가중된 것. 또한 정부가 이에 대해 별다른 해명이나 교통정리를 하지 않아 발생했다.

▶ 다시쓰는 이동통신 연대기 목차

1편. 삐삐·카폰 이동통신을 깨우다

① '삐삐' 무선호출기(上)…청약 가입했던 시절

② '삐삐' 무선호출기(中)…‘삐삐인생' 그래도 좋다

③ '삐삐' 무선호출기(下)…’012 vs 015’ 경합과 몰락

④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上)…"나, 이런 사람이야!"

⑤ ‘카폰’ 자동차다이얼전화(下)…’쌍안테나' 역사 속으로

2편. 1세대 통신(1G)

⑥ 삼통사 비긴즈

⑦ 삼통사 경쟁의 서막

⑧ 이동전화 첫 상용화, ‘호돌이’의 추억

➈ 이동통신 100만 가입자 시대 열렸다

⑩ 100년 통신독점 깨지다…'한국통신 vs 데이콤’

3편. 제2이동통신사 大戰

⑪ 제2이통사 大戰 발발…시련의 연속 체신부

⑫ 제2이통사 경쟁율 6:1…겨울부터 뜨거웠다

⑭ ‘선경·포철·코오롱’ 각축전…제2이통사 확정

⑮ 제2이통사 7일만에 ‘불발’…정치, 경제를 압도했다

⑯ 2차 제2이통사 선정 발표…판 흔든 정부·춤추는 기업

⑰ 최종현 선경회장 뚝심 통했다…’제1이통사’ 민간 탄생

⑱ 신세기통신 출범…1·2 이통사 민간 ‘경합’

4편.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⑲ ‘라붐’ 속 한 장면…2G CDMA 첫 항해 시작

⑳ 2G CDMA "가보자 vs 안된다"…해결사 등판

㉑ CDMA 예비시험 통과했지만…상용시험 무거운 ‘첫걸음’

㉒ 한국통신·데이콤 ‘TDMA’ vs 한국이통·신세기 ‘CDMA’

㉓ 한국이동통신 도박 통했다…PCS 표준 CDMA 확정

㉔ ‘디지털·스피드 011’ 탄생…세계 최초 CDMA 쾌거

㉕ ‘파워 디지털 017’ 탄생…신세기통신 CDMA 상용화

5편. 이동통신 춘추전국시대 개막

㉖ 제3 이동통신사 찾아라…新 PCS 선정 개막

㉗ ‘LG텔레콤 vs 에버넷’…‘한솔PCS vs 글로텔 vs 그린텔’

㉘ PCS 사업자 확정…‘한국통신·LG·한솔’

㉙ ‘016’ 한국통신프리텔·‘018’ 한솔PCS·‘019’ LG텔레콤

㉚ ‘PCS 경합’…64세 어르신도 번지점프 했다

㉛ 이동통신 5사 ‘각자도생’…춘추전국시대 개막

6편. 이동통신 혼돈의 세기말

㉜ 3G IMT-2000 향한 첫 항해 시작

㉝ 이동통신 1천만 돌파했으나 ‘풍요속 빈곤’…新 브랜드 ‘SKY’ 탄생

㉞ 스무살의 011 TTL·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묻지마 다쳐

㉟ ‘SK텔레콤+신세기통신’ 인수합병…사상 첫 점유율 낮추기

㊱ '한국통신프리텔+한솔PCS' 인수합병…춘추전국→삼국정립

7편. 3세대 이동통신(IMT-2000)

㊲ ‘SK·한통·LG·하나로’ IMT-2000 도전…춤추는 정부

㊳ 하나로통신 007 작전…’정부·재벌’ 허 찔렸다

㊴ SK텔레콤·한국통신 IMT-2000 입성…LG·하나로 ‘탈락'

㊵ LG텔레콤 vs 하나로통신…동기식 IMT-2000 주인 찾았다

8편. 3G 시대 개막

㊶ IMT-2000 표류…CDMA2000 비상

㊷ 연기 또 연기…3G WCDMA 초라한 등장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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