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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이태원 참사 수습에 세심한 배려를...


[그래픽=조은수 기자]
[그래픽=조은수 기자]

1987년 5월 28일 새벽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작은 시골 마을 잭슨빌(Jacksonville)에 위치한 콜로니얼 호텔 2층 295호. 당시 엄마 송 모씨는 미군 남성과 이혼한 뒤 한 살배기 딸과 두 살배기 아들을 집 안에 두고 직장에 다니며 어렵게 양육하고 있었다.

그날도 송 씨는 일을 마치고 새벽녘에 들어갔는데 두 살배기 아들이 서랍장 밑에 깔린 채 숨져있었고 곧바로 경찰과 구조대원에 도움을 요청했다.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송 씨가 울부짖으며 "제 잘못이에요"(It’s my fault)라고 외친 것이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같은 소식이 한인 사회에 알려지면서 송 씨의 구명운동에 펼쳐졌다. 한국인의 정서상 "제 잘못입니다"(my fault)라는 말은 자백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자책이라는 점 등을 널리 알렸고 1년 뒤에 사면을 받아 풀려날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서울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압사 사고로 인해 현재까지 사망자가 156명으로 집계됐다. 희생자 대부분은 20대이고 10대도 10명이 넘는다. 창자가 끊어지는 단장지애(斷腸之哀)의 고통을 겪는 희생자 부모의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다. 참척(慘慽)의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있을 희생자 가족들을 생각하면 글귀 하나하나마저 조심스럽다.

이태원 참사를 연기적(緣起的)으로 이해하려는 한국인의 불교식 사고 영향이다.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관계해 성립되기 때문에 독립·자존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원인을 단 하나에 돌리지 않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치다.

이태원 참사에 우주의 전 요소들이 간여하고 있다는 화엄(華嚴) 철학이 투영됐다. 이를 표현대로 하면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다. 하나(一)는 곧 전체(多)에 이루고 있고 전체는 하나 속에 침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총체성 속에서 각 개인은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일정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두 살배기 아들이 서랍장 밑에 깔린 채 숨진 것도 엄마의 책임이 스며들고 이태원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그 책임은 결국 본인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적 정서에서 사랑하는 아들, 딸을 지키지 못한 부모의 자책감인 셈이다. 이는 서양인들이 인과율적(causalistic)으로 생각하는 것과 극히 대조적인 현상이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도 참담하기는 마찬가지다. 얼마전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희생자들에게 제사상을 올린 한 상인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던졌다. 이들 상인들 역시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시름의 잔주름 또한 늘어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업종 특성상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다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닐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애도 기간에 누구한테 하소연하겠는가.

우려하는 대목은 소비침체 장기화이다. 실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에 애도 분위기가 확산하며 문화와 레저, 관광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소비 둔화가 두드러졌다. 2014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9%에서 사고 발생 달이 포함된 2분기엔 0.5%로 추락했다. 민간 소비부문에서 1분기 0.5%에서 2분기 마이너스 0.2%으로 뚝 떨어진 것이 크게 작용했다.

현재도 그 당시와 견줘 크게 좋아진 것은 없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복합 위기에 녹록하지 않은 환경까지 겹쳐있다. 지난 9월 26일부터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숨통이 어느 정도 트일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바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물론 지금은 희생자들과 유가족을 애도하면서 모든 가용 가능한 자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하루 빨리 일상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양창균 기자(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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