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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작가의 러브레터]닭살 커플로 산다는 것


-여보~ 잠깐 나와봐. 달빛이 너무 환해. 달구경 가자.

막내동생이 예의 그 달착지근한 목소리로 제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형제들이 부모님 댁에서 같이 주말을 보내고 있는 참이었다.

-알았어. 여보. 금방 나갈게.

듣기 좋은 굵은 저음인 제부의 목소리 역시 다정하기 그지없다. 결혼 13년차의 부부가 어떻게 저렇게 한결같이 다정할 수 있을까? 동생이 서른네 살, 제부가 마흔한 살이던 여름에 만나 한 해를 넘기지 말자고 크리스마스 전전날 서둘러 결혼한 엄청 늦은 노총각 노처녀 커플이었다.

동생은 대학 때부터 10여년 죽자 사자 따라다니는 동창생도 있었고, 중매를 통해 만난 사람과 결혼까지 고려해 본 적이 한두 번 있었지만 필이 팍 꽂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결혼을 계속 미루고만 있었다. 제부는 동생을 만나기 전까지는 혼자 사는 것이 좋다는 확신에 찬 독신주의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해 여름,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서 여행 중에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반해 버렸고 둘 다 적지 않은 나이였기 때문에 양가가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가운데 속성으로 결혼에 골인한 것이다.

예쁜 딸 하나를 낳고 두 사람은, 우리 딸내미 표현을 빌리면 ‘햄을 뽂으며’ 살고 있다. ‘햄볶는다’는 젊은 애들이 행복하다와 깨볶는다를 합성해서 만든 말이라나? 그런데 그 햄볶는 나날이 13년 동안 여일하게 계속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 아닌가?

두 사람은 늘 한 쌍의 신랑각시 인형처럼 붙어 다닌다. 싫증도 안나나? 눈에 콩깍지가 씌는 사랑의 유효기간은 길어야 2년이라는데 그들을 보면 이 학설을 부정하게 된다. 그들의 딸, 나의 조카딸이 여섯 살 적인가, 내가 녀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희 엄마 아빠는 부부싸움 안하니? 진짜로 한 번도 안 싸워?

조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부부싸움이 뭐야? 엄마 아빠가 왜 싸워?

그 말을 듣고 있던 우리 가족들은 다들 손을 번쩍 들면서 ‘졌다!’를 외쳤다. 도대체 그 비결이 뭘까?

신혼여행을 갔다 온 동생이 나한테 말했다.

-언니, 나 첫날밤에 진짜 감동 먹었어. 그 사람이 나더러 이리 와서 자기 앞에 앉아보라고 하더니 갑자기 큰 절을 하는거야. 내가 깜짝 놀라서 같이 절을 하면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글쎄 이러는 거야. "나처럼 보잘 것 없는 사람하고 결혼해줘서 너무 고맙다. 그래서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평생 동안 당신을 부처님처럼 모시고 살겠다는 의미로 당신에게 절하는거다. 나는 물질적으로는 당신을 만족스럽고 편안하게 해주지 못하겠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 당신 사랑하는 마음, 오늘 이 순간처럼 변하지 않고 평생 가지고 가겠다." 그러는거야. 언니...나 진짜 저 사람한테 잘 할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리고 그들은 딸을 낳고 13년을 사는 오늘까지 그 초심을 잊지 않고 서로 위해 주며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다섯 남매의 막내로 온 집안 식구의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동생이 형제 많은 집 맏며느리로 뒤늦게 시집 가서 온갖 대소사와 제사까지 치러내며 사는 것을 보면 친정식구들로서는 안쓰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제부가 동생에게 대하는 것을 보면 늘 한결 같기에 우리는 또 안심이 되는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동생네 얘기를 하면서 참 부럽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그건 사실 쉬운거야. 근데 왜 사람들이 그렇게 못사는지 알아? 자기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사람이 누군지, 누구에게 가장 잘해야 하는지 잊어버렸기 때문이야. 나도 그걸 잊고 살다가 결혼에 실패했고 실패하고 나서 깨달았어. 자기 인생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 자기의 행복과 불행을 좌우하는 사람이 바로 자기 남편, 자기 아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어버려. 남편이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다 줘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아내가 뼈 빠지게 집안일 하고 아이들 키우는 것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도무지 고맙다는 생각을 안 하는거야. 오히려 조금만 소홀히 하는 것 같거나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큰 소리로 나무라고 함부로 말하기 예사지. 자기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떠받들어야 하는데 그걸 잊고 사는거야. 그걸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은 소위 금슬 좋은 부부로 남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당신 동생처럼 행복하게 사는거지.

맞는 말이었다. 그건 비단 부부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시부모들은 흔히 수십 년을 모시고 사는 맏며느리의 희생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어쩌다 한 번씩 와서 "아버님, 어머님" 하면서 비위 맞추고 선물 사다 드리고 용돈 드리는 둘째 며느리, 셋째 며느리는 기특하고 대견해 한다. 현명한 시부모들은 그렇지 않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늘 우리 맏며느리가 최고라고 하고 둘째나 셋째에게 형님이 우선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집안은 고부간의 갈등이나 동서간의 알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화목하게 산다.

자기 인생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인지, 누가 자기의 행복을 좌우하는 사람인지 알면 닭살커플로 살 수 있다.

/문영심(피플475(http://wwww.people4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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