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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9년 인터뷰]스타에서 명장으로, 황선홍 감독③-"국내파 공격수들 열정과 욕심이 없다"


유스시스템 구축 예찬 "선수 발굴해 지도자든 행정가든 키워내야"

[이성필기자] 한국 프로축구에서 포항 스틸러스의 유스시스템이 가장 체계적이고 좋은 자원을 배출하고 있다는 것은 축구팬이라면 잘 아는 사실이다. 포철동초(U-12), 포철중(U-15), 포철고교(U-18)로 이어지는 포항의 유스팀에 들어가려는 축구 꿈나무들의 경쟁도 대단하다.

시스템은 완벽하다. 그렇다고 인재가 완벽하게 양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아기부터 쭉 키워오는 것은 아니어서 재능있는 선수를 얼마나 잘 알아보고 스카우트 하느냐가 관건이었다. 포항도 이 점을 아쉬워해 지난 2월 '꿈나무 창조 기획단'을 신설했다.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키워 순수 포항의 피를 이식한 빼어난 선수를 배출하자는 것이었다.

포항 구단이 이같은 새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발표하던 올초 당시 황선홍 감독은 동계 전지훈련지인 터키 안탈리아의 한적한 길을 기자와 함께 걷고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황 감독은 "구단이 선수 육성을 제대로 시작한 것 같다. 점점 모기업의 지원이 줄고 구단의 자생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인 것 같다"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계약직' 황선홍 감독, 포항 유스시스템 구축에 열 올리는 이유

창조 기획단의 계획 중에는 포항의 송라클럽하우스는 프로팀과 유소년을 위한 트레이닝 멀티플렉스로 발전시키는 계획도 있었다. 이를 두고 황 감독은 "클럽하우스를 유소년 선수들 숙소로 사용하고 프로들은 모두 나가라는 것이다. 실상 그것이 맞는 정책이다. 유럽을 봐도 프로들은 출퇴근 하지 않느냐. 궁국적으로 진짜 프로로 가는 길이다"라며 대전환을 시도하는 구단의 방향이 맞다는 뜻을 내비쳤다.

황 감독이 구단의 생각에 동의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2011년 포항 감독으로 부임한 그는 "3년 뒤 1군 선수의 절반 가까이를 유스시스템 출신으로 꾸리겠다"라며 구단 정책에 함께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고무열, 이명주, 신진호, 김대호 등이 발굴됐다. 신화용, 황진성, 신광훈, 김광석 등 기존 자원까지 포함하면 유스시스템 출신들이 포항의 중심을 잡고 있는 셈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황 감독의 신분은 '계약직'이다. 성적을 내는데 온 시간을 투자해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 스스로도 "나는 내후년이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다"라며 성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프로팀 감독의 불안정한 위치를 강조했다. 그런데도 황 감독은 유소년 육성에 집착하고 있다. 왜 그럴까. 황 감독에게 다시 포항의 유스시스템에 대해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구단과 감독은 서로의 철학을 공유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지 서로 이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갈수록 좋은 자원들이 수도권 빅클럽의 유스팀으로 가고 있다. 포항에서 좋은 선수가 계속 나오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구단은 선수 발굴을 게을리해서는 안되고 또 감독은 그들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순혈주의를 확실히 구축해 구단의 정통성을 이어가면서 전통 명문의 기틀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황 감독의 생각이다. 선수가 발굴돼도 중동, 중국 등으로 유출될 수 있는 환경이기 때문에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을 만들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외부 영입 선수와도 잘 섞여서 이상적인 팀을 만들어야 한다.

"솔직히 머리가 아프다. 성적은 성적대로 내야 되지만 재능있는 선수를 살피는 것도 해야 한다. 구단이 돈이 많아 알짜 선수 두세 명을 영입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나중에 내가 나가고 다른 감독이 와도 (유스시스템을 활용하는) 포항의 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선수만 양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황 감독의 주장이다. 유스 출신의 지도자, 프런트 등 선수 이외의 인재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단다. 그래야 포항 구단을 이해하고 사무국과 선수단이 원활하게 돌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황 감독의 판단이다.

"지도자 양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포항이 어떤 선수 육성을 원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프로에서 뛴 선수가 은퇴하고 유스팀으로 내려가서 배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굳이 프로팀 감독을 외국에서 뽑아 올 필요가 없다. 또, 지도자 뿐만 아니라 사무국에서 행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일본에서 경험해보니 필요하면 선수가 행정도 했다. 구단 경영진의 생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렇게 포항만의 문화가 구축되는 것이라고 본다."

"데얀이 20골 넣으면 나는 10골만 넣으면 된다는 생각이 K리그 지배"

유스시스템 구축의 또 다른 목적은 우수 국내 선수를 발굴해 외국인 선수 못지않은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있다. 어느 포지션이든 외국인 선수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면 비용도 절감하고 궁극적으로는 국가대표급 선수로 키울 수 있다는 것이 황 감독의 구상이다.

특히 공격수 부문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황 감독은 누구나 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공격수 출신이다. 황선홍 이후 이동국(전북 현대)-박주영(아스널)으로 이어져오던 계보의 뒤를 잇는 공격수가 나오지 않는 것에 누구보다 안타까워하고 있다. 황 감독은 이를 욕심의 부재에서 찾았다.

"선수 특히 대표팀에 가고 싶은 선수라면 욕심이 있어야 한다. 사실 착한 선수도 좋지만 그라운드에서는 꼴통이 좋다. 경기 외적으로 늘 논란을 일으키는 정도만 아니면 된다. 수천 번 이상의 다짐과 연습을 하면서 투쟁력을 키워야 한다. 감독이 지적한다고 토라지고 의기소침해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K리그의 풍토가 외국인 공격수를 우대하면서 국내 선수들이 보조자 역할에 머무르고 있는 것에 대해 선수들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그런 의식 자체가 승리욕으로 승화해 외국인을 극복하겠다는 집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표팀이 최근 고민하는 공격수 기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당대 최고의 외국인 공격수인 라데와 같이 뛰어 봤지만 정말 이기고 싶었다. 도대체 왜 데얀만 골을 넣어야 되는 것인가. 그를 이겨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후배들이 좀 더 열정적이었으면 좋겠다. 포기하면 안된다. '데얀이 20골을 넣으면 나는 10골만 넣으면 된다'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이)동국이 한 명 말고는 아무도 외국인 선수를 이겨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소 실망스럽지만 골을 넣기 위해 정성을 들이면 못할 것도 없다는 것이 황 감독의 지론이다. 뛰는 곳이 K리그든 유럽이든 안주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며 은퇴할 때까지 어떻게 골을 넣을 것인지에 대해 처절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 뛸 때다. 정규리그 3경기 연속골을 넣은 뒤 한 번 정도는 쉬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후 2부리그 팀과 FA컵 경기를 하는데 득점에 실패했다. 그러고 나니 리듬이 깨지면서 골을 넣지 못하더라. 지금 포항을 보면 연속골이나 멀티골을 기록한 선수가 없다. 공격수는 기회가 오면 몰아쳐야 한다. 한 경기에 한 골 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가. 전반에 넣지 못하면 후반에 반드시 넣겠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세대가 달라지면서 그런 생각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

K리그를 포함한 한국 축구 전체에서 포항으로 다시 시선을 옮긴 황 감독은 외국인 선수 없이 보내고 있는 한 시즌을 돌아보며 국내 선수들이 코칭스태프를 믿고 똘똘 뭉친 결과가 FA컵 우승과 정규리그 우승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불만이 있어도 참고 견딘 선수들에게 너무나 고맙다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꼭 웃으며 시즌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정규리그 정상에 오르면 내년에는 아시아 정상마저 반드시 정복하겠다는 다짐을 새기고 또 새기는 황선홍 감독이다.

<끝>

조이뉴스24 포항=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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