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신년 인터뷰]김판곤①홍콩의 히딩크, '판곤 매직' 꿈꾼다


2009년 홍콩 감독 부임…'다이 포 홍콩' 외치며 체질 개선 성공

귀화 선수 중심 대표팀 구성…여론 반발 누르고 자신감 고취

2016년 중국에 두 번 비기며 돌풍…성공적인 홍콩 정착

"약오른 중국, 홍콩선수들 외국인 취급 …풀어야 할 숙제"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2016년을 보내는 12월 말, 홍콩 최대 번화가 중 한 곳인 침사추이(尖沙咀) 거리는 관광객이 몰려 대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그곳에서 홍콩을 대표하는 이방인 중 한 명으로 우뚝 선 김판곤 (48) 홍콩축구대표팀 감독은 한 상가에서 틀어 놓은 방송의 제약 광고에 등장해 광둥어로 이렇게 외친다.

"행운은 스스로 만드는 것!"

광고에 등장했다는 것 자체가 김 감독의 위상을 대변한다. 이 광고는 홍콩에서 좌절하고 떠나는 외부인들을 격려하기 위한 의미가 녹아 있다. 김 감독과 다른 2명이 돌아가며 촬영했다고 한다. 국제도시에서 광고까지 등장했다는 그 자체가 김 감독의 노력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홍콩의 히딩크'로 거듭난 '판곤 매직'

2000년 처음 테스트 선수 신분으로 홍콩과 인연을 맺은 뒤 두 번의 재방문, 그의 위상은 홍콩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놀라운 발전 스토리다.

지난해 12월 말 침사추이의 한 식당에서 '조이뉴스24' 기자와 만난 김 감독의 외모에는 변화가 있었다. 그가 국내 팬들에게 가장 최근 노출됐던 적은 지난해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이었다. 옆으로 빗어 넘긴 전형적인 머리 스타일에 물결처럼 파마를 했다. 그는 "국내 팬들은 내 옛날 기억만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주변에서 머리에 힘 좀 주라고 해서 웨이브를 주는 파마를 했는데 잘 어울리지는 모르겠다"며 웃어넘겼다.

고물가인 홍콩에서 월세 4백만원을 내며 거주한다. 개인 차량 없이 우리로 치면 20인승 마을버스로 출·퇴근한다는 김 감독과의 사소한 정담은 자연스럽게 축구 이야기로 넘어가면서 인터뷰가 됐다.

2016년은 김 감독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 해였다. 홍콩은 3차 예선 C조에서 중국, 카타르 등과 묶여 4승 2무 2패(승점 14점), 3위의 성적을 냈다. 최종예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인구 대국이자 홍콩을 지배하는 중국에 두 번이나 0-0으로 비기며 홍콩인들의 자긍심을 높였다.

김 감독은 "우리에게 행운이 따른 두 경기였다. 중국은 골대를 일곱 번이나 맞히고도 골을 넣지 못했다. 중국에 비기니 팬들이 정말 좋아하더라. 홍콩 사람들은 중국을 죽기보다 싫어하기 때문인지 다른 경기와 비교해 반응 자체가 달랐다"라고 말했다. 이 덕분에 김 감독에게 '판곤 매직'이라는 별칭이 한국은 물론 홍콩에서도 공식화 됐다.

중국은 홍콩을 얕보고 홈경기를 홍콩에서 배로 1시간 30분 거리인 선전에 배정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김 감독은 "베이징이나 상하이에만 배정했어도 아마 홍콩이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기후가 홍콩과 비슷하고 이동 거리도 적은 선전이라는 소식을 듣고 정말 '하느님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선수들도 컨디션 유지에 문제가 없었고 결국 담대하게 싸워 비겼다"라고 회상했다.

최종예선 티켓은 중국과 카타르가 가져갔지만 김 감독을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김 감독은 '홍콩의 히딩크'나 마찬가지다. 사우스차이나 감독으로 시작해 홍콩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까지 지휘하고 기술위원장까지 맡았다. 한마디로 홍콩 축구 전반을 관리하는 최고경영자나 마찬가지다.

◆중국에 두 번 비기며 홍콩인들 매료시켜

홍콩 축구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승점 자판기 국가다. 정체성도 확실하지 않고 스포츠 강국도 아니다. 그저 이벤트성 대회가 많이 열리는 허브 역할을 하는 정도다. 이를 간파한 김 감독은 체질 개선에 집중했다. 2009년 홍콩 대표팀 감독에 오른 뒤 '다이 포 홍콩(Die for Hongkong)'이라고 외쳤다. 홍콩을 위해 죽겠다는 선언에 홍콩 사람들은 김 감독을 주목했다. 연대감이 약한데 외부인이 홍콩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신선했기 때문이다.

전력 강화를 위해 홍콩 리그에서 7년을 버티며 귀화한 외국인 선수들을 중심으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당연히 진성 홍콩인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김 감독은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다행히 2009년 2010 동아시아 축구연맹(EAFF) 동아시안컵 예선에서 북한, 대만, 괌을 밀어내고 본선에 진출했다. 같은 해 23세 이하(U-23) 대표팀으로 나선 동아시안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 감독을 잊지 못한 홍콩축구협회는 2011년 말 다시 그를 호출했다. 당시 김 감독은 경남FC에서 코치 생활을 하고 있었다. 2007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국내에서 정식 감독 생활을 하지 못했지만 실력 자체만 믿었다.

홍콩축구협회는 유소년 강화를 위해 유스팀을 맡겼고 2012년 10월 성인 대표팀으로 올렸다. 차근차근 팀 발전을 준비한 김 감독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16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에 0-3으로 패하며 8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전반전을 무실점으로 끝내는 등 끈질긴 근성을 홍콩에 이식했다.

러시아월드컵 3차 예선에서 만만치 않은 중국, 카타르와 싸웠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었다. 김 감독은 "홍콩이 중국, 카타르를 상대로 골을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만, 해보자는 마음은 있었는데 카타르와의 홈 경기에서는 두 골이나 넣었다. 그 이후 선수들이 자신감이 더 생겼다. 할 수 있다는 마음 말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중국전 2무승부는 여러 가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국내 선수 신분으로 뛰던 홍콩 출신 선수들이 졸지에 외국인 신분으로 달라졌다. 화가 난 중국축구협회의 꼼수였던 셈이다. 김 감독은 "우리 대표팀에 중국 슈퍼리그와 갑급리그(2부리그)에서 뛰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이 다시 국내 선수로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라고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에 2~3골 차이로 패하더라도…

홍콩 축구 문화를 바꾸기는 쉽지 않았다. 그나마 홍콩축구협회가 홍콩 내 스포츠 단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하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아마추어 스포츠 단체 수준이다. 여러모로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김 감독은 "프로팀의 협조를 얻기도 쉽지 않았고 축구협회의 태도도 그랬다. FIFA A매치 데이가 정해지면 딱 그것만 하고 오라는 것이다. 그 외에는 어떤 것도 하지 말라더라. 그래서 축구협회를 설득했다. 정말 발전을 하려면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감독의 꿈은 원대하고 풍성하다. 사실 홍콩 대표팀은 지난 11월 슈틸리케호와 만날 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우즈베키스탄과의 최종예선을 앞두고 평가전 상대 구하기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홍콩도 제안이 있었지만, 아직 한국을 상대하기에는 수준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우즈벡을 대비하기에도 맞지 않았다.

그는 "지금 한국과 만나면 다섯 골은 내주지 않을까 싶다. 아무리 한국이 부침이 있다고 해도 아시아에서는 최강국이다.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는 어려움이 있어도 충분히 가지 않을까 싶다. 홍콩도 좀 더 내성을 길러서 나중에 한국과 꼭 평가전을 치렀으면 좋겠다. 언제 만날지는 모르지만 2~3골 차이로 좁혀졌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나타냈다.

2015년 말 2018년까지 재계약에 성공한 김 감독에게 2017년은 축구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해가 된다. 왜 그럴까.

<②편에서 계속…>

조이뉴스24 홍콩=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주요뉴스



alert

댓글 쓰기 제목 [신년 인터뷰]김판곤①홍콩의 히딩크, '판곤 매직' 꿈꾼다

댓글-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로딩중

뉴스톡톡 인기 댓글을 확인해보세요.



포토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