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지난 2월 축구대표팀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의 아버지 기영옥 광주FC 단장을 포르투갈 포르티망에서 만났다. 당시 기성용은 중국 슈퍼리그의 200억원 연봉 이적설에 시달린 뒤였다.
기 단장은 기성용이 스완지에 잔류하기로 한 부분에 대해 "아들 녀석의 마음을 세세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한국 축구가 아직은 중국 슈퍼리그의 돈 위세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일종의 자존심으로 보였다. 본인이 대표팀 주장까지 하고 있는데 돈만 바라보기는 어렵지 않은가"라고 했다.
아들에 대한 얘기는 대표팀 걱정으로 이어졌다. 기 단장은 한국 축구의 한 세대를 이끌었던 윤정환 세레소 오사카(일본) 감독, 남기일 광주FC 감독, 고종수 수원 삼성 코치 등 재능있는 자원들을 육성했다. 광주 산하 유스팀 금호고에는 '제2의 기성용'이라 불리는 김정민(금호고)이 성장하고 있다. 김정민은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대표팀의 막내로 합류했다.
선수 보는 눈이 남다른 기 단장은 "대표팀에 자극이 보이지 않는다. 밑에서 치고 올라와야 (기)성용이나 (구)자철이도 긴장하게 마련인 데 그런 게 없다.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의 뒤를 이어 두각을 나타내면서 대표팀에 올라오는 자원이 있어야 하는데…"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어 "(기)성용이도 어느새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졌다. 보통 대표팀은 성용이 윗대 나이가 적당히 있고 중간층 아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과연 그런가. 성용이가 2022 카타르월드컵까지 뛰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대표팀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기 단장의 걱정은 실제 슈틸리케 감독 부임 후 28일 시리아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7차전까지를 살펴보면 보통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성용의 포지션 대체자는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는다. 현실이 이러니 기성용이 결장이라도 하면 경기 전개 스타일이 답답해진다. 경고가 있는 기성용이 노란카드 1장을 더 받아 다음 경기에 나서지 못한다며 걱정해야 할 정도다.
슈틸리케 감독은 권창훈(디종FC) 등 몇몇 자원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더는 참신한 발탁을 하지 못했다. 있는 자원 내에서 돌려막기 외에는 보여준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선수들의 부상과 소속팀 주전 확보 실패 등 사정이 있었다지만 현재까지 진행과정과 결과만 놓고 보면 슈틸리케 감독은 낙제점이다.
기성용은 중국전을 0-1로 패한 뒤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어이없는 패배였기에 분해서 흘린 눈물이다. 주장이 눈물을 떨어뜰려야 할 정도로 슈틸리케호는 거친 파도 위에서 흔들렸다.
결국 책임은 사령탑에게 있다.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대표팀 경기력은 엉망이었다. 선수가 단지 패해서가 아니라 형편없는 경기력에 분해서 눈물을 흘릴 정도라면 누가 뭐래도 팀의 최고 사령탑이 감독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수 눈에서 눈물이 나오게 한 슈틸리케 감독을, 기성용은 시리아전 직후 감싸 안았다. "감독님의 탓이 아니다. 지금처럼 한다면 누가 감독으로 오더라도 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한편으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이날 기성용은 물론 구자철도 선수들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선수단 전체의 정신 무장'을 강조한 것이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단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어딘가 모르게 균열이 생긴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장지현 SBS 해설위원은 "2차 예선은 우리보다 수준이 낮은 팀들과 싸웠기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최종예선은 우리와 대등하게 붙을 자신감이 있는 팀들과의 만남이다. 그런데도 큰 변화 없이 최종예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감독의 존재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장 위원의 생각이다. 그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축구 전문가는 슈틸리케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포메이션에만 집착하고 있다. 포메이션은 숫자 아닌가. 전술을 논해야 하는데 전술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모르고 있다. 사실상 기성용 원맨 팀이 됐다. 이런 감독을 대한축구협회는 계속 안고 갈 것인지 숙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태륭 KBS 해설위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이런 상태로 운좋게 러시아월드컵을 간다고 해도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슈틸리케 감독의 한계는 이미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전을 통해 드러났다. 3월 2연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봤지만, 전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사실상 지난 3년을 버렸고 본선까지 생각하면 4년을 허송세월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새 감독이 선수단에 일대 변화를 주는 충격 요법이라도 있어야 조금이나마 상황이 나아진다"고 했다.
시리아전이 끝나고 기사 마감에 정신이 없을 때 몇몇 축구 관계자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대표팀의 경기력에 실망과 걱정을 담은 내용이었다. 이 가운데 K리그 한 구단을 이끌었던 감독은 "정말 부끄러운 경기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다. 대체 선수는 왜 보러 다니는지 모르겠다. 선수 선발도 이해가 가지 않고 (대표팀 내) 보이지 않는 내부 이견도 있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슈틸리케 감독과 그를 선임한 구성원들만 모르고 있다. 자부심 하나로 뛰는 선수가 눈물을 흘리고 괴로워 어쩔줄 몰라 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대표팀이 '와해 직전'이라며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런 혼란을 슈틸리케는 과연 수습할 수 있을까. 사기가 바닥에 떨어져 백약이 무효인 팀을 다시 벌떡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아니 최종예선을 통과할 비책과 전략, 자신감이 있기는 한 것일까.
무려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1986년 멕시코 대회 이후 한국축구는 지난 2014년 브라질 대회까지 8개 대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다. 월드컵 예선통과는 큰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무엇보다 본선 경쟁력이 중요한 팀이 이렇게 큰 혼란을 겪으면서 최종예선을 통과한들 과연 웃을 수 있을까. 이런 상태로 간신히 러시아행 티켓을 거머쥔들 무슨 의미가 있을지 정말로 걱정스럽다.
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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