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영화 '동주'가 감성을 자극한다면 '박열'은 이성을 깨운다.
영화 '박열'(감독 이준익, 제작 박열문화산업전문유한회사)은 1923년 관동대학살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일본 내각이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펼치고 있던 조선 청년 박열(이제훈 분)을 대역사건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시작된다.
'박열'과 이준익 감독의 전 작품 '동주'를 관통하는 서사는 같다. 한 개인의 삶은 당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법. 1920년대의 박열과 1940년대 시인 윤동주의 삶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기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부르짖던 때, 윤동주와 박열은 이들의 야만성을 고스란히 겪어야 했던 인물들이다.
이준익 감독은 같은 배경, 다른 인물을 그려냈다. '동주'는 윤동주의 삶을 통해 일제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 지식인의 부끄러움과 고뇌를 보여준다. 박열은 '동주' 속 윤동주와 성격 자체가 다르다. 일본 관료를 향해 거친 입담을 서슴없이 내뱉고 예심 판사와 재판관들에게 당당히 자신의 요구 사항을 말한다. 한 마디로 '불량'스럽다.
박열의 '불량스러운' 모습은 아나키스트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아나키즘은 제도화된 정치 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 및 운동을 뜻한다. 영화는 조선인이자 아나키스트로서 박열이 일제에 어떻게 맞서는지 보여주는 영화다.
박열은 조선인으로서 항일운동가이지만 동시에 아나키스트로서 휴머니즘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아나키스트는 권력을 거부하는 동시에 평등을 이념으로 개인의 주체, 즉 개인의 자유를 신봉한다. 보편적인 개인의 인권 차원에서 과거 제국주의의 야만성을 바라본다.
이러한 박열의 관점은 현재에 유의미하다. 한일 간 위안부 문제가 대표적 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양국 간 합의됐다며 재협상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 사회의 보편적 인권 관점에서 보면, 위안부 협상은 피해자 의사를 포함하지 않은 등 미진한 부분이 많다. 박열의 사상은 현재 국제 사회가 역사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과 맞닿아 있다.
이준익 감독은 "박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아나키스트로서 탈 국가적이고, 탈 민족적"이라며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온전한 삶의 가치관을 추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박열'은 반일 영화가 아니다. 부당한 권력을 향해 진실을 외치는 젊은이의 뜨거운 함성"이라고 밝혔다.
'동주'는 흑백을 배경으로 윤동주의 시들이 스크린에 떠다닌다. 윤동주 역을 맡았던 배우 강하늘이 읊는 시는 가슴에 박힌다. 반면 '박열'은 박열의 불량스러운 모습과 함께 조선인 아나키스트로서의 사상을 머리로 곱씹어볼 수 있는 영화다.
'박열'은 오는 28일 개봉한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