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기자] 신태용호가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행 티켓을 받았습니다. '강제 진출'이라는 힐난이 있지만 9회 연속으로 월드컵을 경험한다는 그 자체는 변함이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란과 중국에 부채가 생겼다"고 자조 섞인 농담도 던졌습니다. 또는, "우즈베키스탄에도 감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뭐 보는 관점이 다양하겠지만 솔직히 세 국가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 정도로 대표팀의 상황이 좋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죠.
'조이뉴스24'를 비롯해 몇몇 매체는 타슈켄트에 머무르면서 우즈베키스탄 대표팀의 훈련이 아닌 생활을 근접해서 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즈벡 축구협회는 우리 대표팀에 모든 편의를 봐주면서도 자국 대표팀의 훈련 장소는 철저히 숨겼습니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히게 마련입니다. 우즈벡은 한국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호텔에 있었죠. 국내 일부 취재진이 예약한 호텔이 우즈벡 대표팀이 홈에서 A매치를 앞두면 늘 모여 숙박을 하는 곳이라는 것을 입성 이틀째인 3일에서야 알았습니다. 축구대표팀 관계자는 "우즈벡은 늘 이 호텔에서 묵는다고 하더라. 이번에는 물어보니 '글쎄 어딘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생긴 에피소드를 독자분들께 공개할까 합니다. 기자는 한국 대표팀이 묵고 있는 한 호텔을 바라보고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두 호텔은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답니다. 타슈켄트에서는 중심가의 외곽이지만 이동에는 불편함이 전혀 없었습니다.
최근 기자는 운동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체중이 많이 불어서 두 달여를 유산소, PT 등 선수가 아닌 일반인들이 벌이는 살과 전쟁을 하는 중입니다. 우즈벡에 출장을 간다고 하니 헬스클럽의 담당 선생님은 "출장 가서도 운동하시라"며 기구를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짜주시더군요.
그래서 대표팀 훈련 취재 전인 오전 자투리 시간에 호텔 지하 헬스장에서 죽음의 투쟁을 벌였습니다. 타슈켄트 입성 이틀째인 지난 3일에도 마찬가지였고요. 계속 체중 감량 중이었는데 시차 적응을 하면서 운동을 하니 조금은 낫더군요.
러닝 머신에 올라 속도를 조절하며 30분가량을 뛰는데 영국 공영방송 'BBC'에 맞춰진 TV에서 속보가 나옵니다. 북한에서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소식이더군요.
어쨌든 러닝 머신을 멈추고 크게 숨을 몰아쉬며 다른 기구로 넘어가려던 순간 뒤에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다 끝났느냐"는 말이 들리더군요.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우즈베키스탄 축구대표팀 연습복을 입은 한 사내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황하면서도 웃으며 서로 운동에 몰두하는데 그가 기자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더군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TV를 보면서 "북한이 정말 핵실험을 한거냐"고 묻더군요. 그러더니 "북한도, 남한도, 일본도, 중국도 핵폭탄이 터지면 다 없어진다"며 격한 반응을 보입니다.
소리를 치던 그는 이내 러닝 머신에 올라 운동에 집중합니다. 한 20분 정도 뛰더니 내려서서는 "한국 대표팀은 옆에 있는 호텔에 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있느냐"고 묻는 겁니다. 그는 기자가 한국인이었기에 상대팀 한국을 물은 것이고 기자는 질문자의 신분은 대충 알 것 같으면서도 누군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에 "부자가 아니라서"라는 엉뚱한 대답을 했습니다.
운동이 끝나고 방으로 올라와 노트북을 꺼내 우즈벡 대표팀 선수들의 얼굴을 대조하니 측면 공격수 사르도르 라시도프(알 자리라)더군요. 정말 신기했습니다. 제가 묵는 호텔에 우즈벡 선수단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우즈벡 선수단은 헬스장에 자율적으로 내려와 몸을 만든다고 하더군요.
라시도프와는 경기 전날 공식 기자회견 취재 후 숙소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또 마주쳤습니다. 그는 기자를 '짐(gym)'으로 불렀고 기자도 똑같이 불렀습니다. 체육관이나 헬스장을 의미하는 짐내지엄, 또는 김나지움(gymnasium)을 줄여 부른 거죠. 서로 뭐하는 사람인지 몰랐기 때문이겠죠. 막 헬스장에서 개인 운동을 끝내고 올라가는 길이라더군요.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라시도프의 출전 여부를 놓고 우즈벡 취재진과 삼벨 바바얀 감독이 충돌했습니다. 그 정도로 라시도프에 대한 기대감은 컸습니다. 분요드코르의 유스 시스템이 키운 선수라 더 그런 모양이더군요.
경기 당일에도 운동을 하러 내려가니 몇몇 선수가 몸을 풀더군요. 그래서 긴장을 좀 했습니다. 우즈벡이 월드컵에 가겠다는 열망이 이렇게나 크다는 것을 느낀 거죠.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도 한국에 골득실에서 한 골 뒤졌으니 '이번에는 꼭'이라는 의지가 대단했습니다.
우리 선수들도 충분히 준비했겠지만 싶으면서도 같이 운동하는 사이가 되니까 느낌이 다르더군요. 그들과 함께 사용한 운동기구는 먼지가 가득했고 녹이 슬어 있었으며 삐거덕 소리도 났습니다. 족히 10년은 넘어 보이는 기구들이었지요. 종류도 별로 없는데 녹슨 운동 기구에서 본선 진출의 꿈을 키운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했습니다.
라시도프는 한국전 후반 중반에 큰 환호를 받으며 교체 투입 됐습니다. 그렇지만 한국 수비에 막혔고 우즈벡은 본선 진출 실패는 물론 플레이오프 티켓도 얻지 못했죠. 선수들은 쓸쓸히 숙소로 복귀했습니다. 라시도프와는 귀국 당일 아침에 짧은 시간 운동을 하러 가서 한 번 더 보게 됐습니다. 신분을 밝히면 미안해질까봐 마지막까지 서로의 애칭이자 이름이 된 '짐'이라 불렀습니다.
본선에 못가서 아쉽겠다고 하니 "다음 월드컵에 도전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한국을 부러워합니다. 자신이 뛸 수 없는 무대에 올랐으니 말이죠. 러시아 가서 잘하라는 겁니다. 참 친절한 친구입니다.
우즈벡 사람들은 대체로 한국을 넘기 어려운 벽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할 수 있는데'라면서도 결과가 나오자 박수를 쳐주며 존경심을 보였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남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만 책임감을 갖고 본선을 준비해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즈벡 사람들과 제 친구 '짐(라시도프)'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조이뉴스24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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