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유지희 기자] 대학시절 컴퓨터 공학도였던 이장훈 감독은 스물 아홉, 다소 늦은 나이에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자신도 영화감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막연한 흥미를 안고 시작한 영화는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40대가 돼서야 첫 장편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일찍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감독 이장훈, 제작 무비락)는 배우 소지섭과 손예진 주연으로 화제가 됐다. 개봉 후에는 감성멜로라고 호평 받으며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지난 2014년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오랜 시간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한 이장훈 감독의 노력이 담겼다. 최근 '지금 만나러 갑니다' 개봉 후 이장훈 감독을 만나 영화를 만들어간 과정을 구체적으로 들어봤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수아(손예진 분)가 장마가 시작되는 어느 여름 날, 기억을 잃은 채 남편 우진(소지섭 분)과 아들 지호(김지환 분) 앞에 나타나는 이야기.
영화는 일본 동명소설이 원작. 이장훈 감독이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만들게 된 계기는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계속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글의 부족함을 많이 느꼈어요. 글을 잘 쓰고 싶어 소설책을 많이 봤는데 지하철에서 '지금 만나러 갑니다' 원작을 읽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작사 대표님이 영화로 만들고 싶은 원작이 있냐고 물었을 때 이 소설책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이렇게 큰 작품을 영화로 만들 수 있을까' '리메이크 된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지겠어?'라고 생각했죠. 설마 했는데 제가 하게 됐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게 꿈 같았어요. 하늘이 준 기회였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영화로도 리메이크됐다. 일본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일본 관객뿐 아니라 우리나라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 이장훈 감독은 원작의 뼈대는 가져오되 일본판보다 코미디를 더 강화했다. 코믹 요소는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을 유발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극의 분위기를 완화시키고 관객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기본적으로 결말이 정해져 있죠. 결말을 맞이하기 전, 주인공들의 행복한 시간이 유쾌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고민 끝에 웃음 포인트를 넣었고 관객이 주인공들과 함께 기뻐하고 웃을 수 있길 바랐어요. 이렇게 된다면 나중엔 같이 슬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뿐만 아니라 제가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그린 인물들의 이미지는 일본영화 속 그림과 달랐어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유쾌함, 그걸 살리고 싶었고 이를 캐릭터의 매력으로 가져왔죠. 다행히 많은 관객 분들이 포인트마다 웃어주셔서 너무 좋았어요."
영화는 로맨스판타지 장르로,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묘하게 줄타기 한다. 이장훈 감독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판타지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기반으로 하지만 캐릭터와 이들이 처한 몇몇 상황에서는 현실감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극 중 수아와 우진의 첫사랑, 수아와 아들 지호와의 모습 등이 그 예다.
"판타지이지만 관객 분들이 등장 인물들에게 이입하면서, 이들과 같은 감정선을 따라가길 원했어요. 원작이나 일본영화에선 우진과 수아의 과거가 정보전달 정도로만 그려졌다면 우리 영화에서는 관객이 함께 설레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었죠. 그래도 현실과 똑같이 보여주지 않으려 했어요. 과거 우진과 수아가 만나는 레스토랑 장면에서 배경음악으로 90년대 가요를 쓰지 않은 것처럼 당시 그 시점을 정확하게 표현하진 않았죠."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배우 소지섭과 손예진의 첫 스크린 호흡으로 일찍부터 주목 받았다. 신인 감독의 첫 영화에 톱스타 배우들이 출연하는 건 흔치 않은 일.
"지섭 씨와 예진 씨가 이 작품을 선택해줬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내가 과연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사실 겁이 났죠. 촬영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프리 단계에서부터 예진 씨를 만나면서 걱정이 많이 줄었고 현장에서도 너무 소통이 잘 돼 놀랐어요. 순간 순간 이야기를 나눌 때도 서로가 잘 받아줬고 한번도 충돌하거나 얼굴 붉힌 적이 없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운이 좋았죠. 스태프 모두 모난 사람이 없다고 서로 얘기하기도 했어요. 괜히 포장하는 게 아니에요.(웃음)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고 좋았어요."
전작 드라마 '여름향기' 영화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많은 멜로 작품을 흥행시킨 손예진은 '지금 만나러 갑니다'에서 또 한번 멜로퀸임을 입증했다. 이장훈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일단 먼저 예진 씨를 잡는 게 목표였다. 수아의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했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또한 "예진 씨는 멜로 작품을 많이, 잘 해왔기에 내가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장훈 감독은 소지섭이 연기한 우진의 캐릭터에서 일본영화 속 모습을 지우고 싶었다고 했다. 지병은 있지만 이것 때문에 지능이 다소 떨어진 것처럼 묘사된 느낌이 싫었다고. 그는 "우진을 정상생활이 불편한 정도로만 그리고 싶었다"며 소지섭의 캐스팅 과정과 작업 소감을 구체적으로 전했다.
"지섭 씨가 원래 가지고 있던 이미지를 떠올렸을 때, 영화 속 터널 앞에서 울면서 누군가를 바라보는 우진의 눈빛과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았어요. 그런데 막상 함께 작업하면서 지섭 씨의 매력을 많이 발견했어요. 터널 신뿐 아니라 착하고 순수한 모습, 때론 어설픈 것까지 모두 가지고 있었죠. 사실 시나리오 단계에선 '우진이 너무 착하게만 그려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있었는데 지섭 씨가 연기할 걸 보고 '착한 사람인데도 저런 매력이 있구나'라고 느꼈죠. 그렇게 지섭 씨와 예진 씨가 우진과 수아를 완벽하게 그리는 걸 보고 '이제 됐다' 싶더라고요.(웃음)"
이장훈 감독은 극 중 감정톤을 과하게 표현하지 않으려 소지섭·손예진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슬픔과 눈물을 자극하지만 신파스럽지 않다. 특히 터널 신 속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은 상대적으로 건조하게 표현된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할지 정말 끝까지 고민했어요. 원작이나 일본영화에선 지호와 수아의 장면이 너무 슬퍼 우진과 수아의 터널 신은 크게 와닿지 않더라고요. 이들에 대한 감정을 더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 방법이 오히려 과하게 표현하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죠.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감정이 다 설명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어요. 다만 두 사람이 그 상황에서 나누는 대사,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행복했어"는 꼭 있어야 했죠."
이장훈 감독은 그 장면에서 큰 부담감을 느꼈다고 했다. 촬영이 시작하면서 끝날 때까지 이장훈 감독뿐 아니라 소지섭 또한 '점점 그날이 다가오는구나'라는 느낌을 갖고 있었다고. 그는 "우진이 수아를 보며, 웃는 듯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게 너무 좋았다"며 완성된 장면에 거듭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지난 14일 개봉, 극장가에서 상영 중이다.
조이뉴스24 유지희기자 hee0011@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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