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성필 기자] 축구지도자들에게 물어보면 내일을 보장받지 못하는 단판 승부에서 경기 전략은 둘 중 하나라고 한다. 섬세하게 상대를 제어하며 승리를 하거나 거칠게 다뤄서 기를 눌러버린 뒤 주도권을 쥐고 경기를 가져오는 것이다.
4일 오전(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16강 잉글랜드-콜롬비아전은 전자와 후자가 뒤섞인 전쟁이었다.
경기 전부터 콜롬비아 팬들의 응원 열기로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은 후끈했다. 지하철 7호선 스파르타크역에서 쏟아지는 인파 대다수는 콜롬비아 팬들이었다. 콜롬비아의 전설 카를로스 발데라마의 화려한 머리 모양을 하고 나선 팬부터 대형 국기를 들고 흔드는 팬까지 다양했다.
상대적으로 훌리건으로 악명 높은 잉글랜드 팬들은 점잖은 축에 속했다. 남쪽 관중석 하단에 잉글랜드 국기가 뒤덮였지만, 콜롬비아 팬들의 함성에 묻혔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소개되면 엄청난 야유가 쏟아졌다. 4만4천190명의 관중 중 족히 1만명 정도 되는 노란 물결의 콜롬비아 팬들이 양쪽 골대 1, 2층 관중석을 메웠다.
이들의 응원은 조별리그에서 경험한 멕시코 못지않았다. 특정 구역에서 소리를 지르며 선창하면 모든 구역의 팬들이 따라 하는 방식이었다. 오히려 잉글랜드는 트럼펫을 불며 특유의 정적인 응원을 보여줬지만 열세였다.
전반부터 콜롬비아는 잉글랜드의 신경을 건드렸다. 잉글랜드가 프리킥을 얻으면 일부러 키커 앞으로 가서 흔들기에 나섰다. 41분 키에런 트리피어의 프리킥에서는 벽에 스프레이로 선을 긋는 마크 가이거 주심과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윌마르 바리오스가 경고를 수집했다.
후반에는 거의 육박전이었다. 경기장 분위기도 당연히 요동쳤다. 콜롬비아는 어떻게든 만회골을 넣으려 잉글랜드를 거칠게 압박했다. 그런데 콜롬비아의 터프함이 역으로 잉글랜드에 도움이 됐다. 13분 케인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코너킥에서 카를로스 산체스가 케인을 붙잡고 쓰러트렸다. 씨름의 밀어치기와 비슷했다. 하필 가이거 주심 앞이었고 지체없이 페널티킥이 선언됐다. 케인은 냉정하게 골망을 흔들었다.
골이 필요한 콜롬비아는 잉글랜드와 몸싸움을 마다치 않았다. 이 과정에서 19분 팔카오가 경고를 받았다. 뒤이어 카를로스 바카도 교체 투입 2분 만에 경고를 받았다. 존 스톤스를 강하게 밀어 넘어뜨렸다.
참고 뛰던 잉글랜드도 결국 24분 제시 린가드가 상대를 밀치며 경고를 수집했다. 서서히 경기는 꼬여갔고 콜롬비아 관중들의 광적인 응원이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경기 주도권도 콜롬비아가 쥐었고 36분 콰드라도의 오른발 슈팅이 나오는 등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잉글랜드는 조금만 참으면 됐고 전광판에는 추가시간 5분 문구가 표출됐다. 하지만, 순간의 방심이 화를 불렀다. 겨우 신경전에서 벗어났는데 미드필드에서 우리베의 강한 슈팅이 나왔다. 조던 픽포드 골키퍼가 놀라서 펀칭했고 코너킥이 이어졌다.
관중석에서는 콜롬비아 관중들의 의자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소음이 상당했고 힘을 낸 콜롬비아는 콰드라도가 오른쪽에서 올린 코너킥을 예리 미나가 헤더 슈팅해 골망을 갈랐다. 순간 경기장은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의 홈구장처럼 변했다. "콜롬비아~콜롬비아~" 응원은 덤이었다.
연장전 기세도 콜롬비아가 좋았다. 콜롬비아는 들소처럼 뛰었고 잉글랜드는 여전히 섬세함을 유지했다. 연장 전반을 지나 후반이 되자 콜롬비아는 또 거친 태클을 보여주는 등 잉글랜드를 압박했다. 잉글랜드는 해법을 찾지 못했고 경고 6장을 받은 콜롬비아의 의도대로 1-1 무승부, 승부차기로 향했다.
하지만, 잉글랜드는 끝까지 차분했다. 냉정하게 승부에만 집중했고 픽포드 골키퍼가 카를로스 바카의 킥을 펀칭하는 등 침착하게 막아 4-3으로 승리하며 2006 독일 월드컵 이후 12년 만에 8강에 올랐다. 콜롬비아 원정에서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경기다.
조이뉴스24 모스크바(러시아)=이성필 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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