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권혜림 기자] 배우 조은지의 연기엔 특별한 에너지가 있다. 칼날을 품은 눈빛을 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액션에서도, 로맨틱 코미디 속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캐릭터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작품, 어느 장면에서든 조은지의 얼굴은 말과 행동, 그 이면에 있는 뭔가를 궁금하게 만드는 힘을 뿜어낸다. 영화 '빵꾸'의 순영도 그렇다. 시골 촌부의 모습을 하고 파리 날리는 카센터를 지키던 순영은 일련의 사건들로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된다. 그리고 조은지는 이같은 인물의 입체적 변모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올해 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 '빵꾸'(감독 하윤재)의 배우 조은지를 만났다.
'빵꾸'는 시골 국도변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부부, 재구(박용우 분)와 순영(조은지 분)의 이야기다. 손님이 영 뜸하던 가게에는 어느날 트럭들이 떨어뜨린 금속 조각 탓에 타이어가 펑크난 차들이 들어온다. 가난하고 팍팍한 삶에 염증을 느끼던 재구는 금속 조각을 만들어 도로에 뿌려 지나가는 차량들의 타이어를 고의로 펑크낼 계획을 세운다.
펑크난 차들이 연이어 카센터를 찾으며 부부의 살림도 크게 나아진다. 가난한 남편을 만난 이유로 넉넉한 친정집으로부터 핀잔을 듣곤 하던 순영은 재구가 먼저 시작한 이 비밀스런 작전에 이내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하지만 경제적 풍요를 함께 누리던 부부의 속내는 점차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한다. 가난 속에서 선량하게 살아가던 순영이지만, 이 위험천만한 작전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어느덧 순영은 그 세속적 욕망을 양심의 우위에 올려두며 폭주한다.
순영 역을 맡은 조은지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된 '빵꾸'를 관객들과 함께 관람하고 관객과의 대화(GV)에도 참석했다. 저예산에도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탄생한 '빵꾸'를 관객에 처음 선보이게 된 소감을 묻자 조은지는 "첫 상영에 관객들이 너무 꽉 차 있었다"며 "관객이 매 장면에 집중하고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을 관객도 가져갔을지 궁금하더라"고 밝게 답했다.
극 중 순영은 재구의 작전으로 카센터에 점차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많은 돈을 벌게 되자, 차들의 타이어를 펑크내는 일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선다. 자신의 행동이 예상 못한 사건을 초래하자 고민과 각성을 겪는 재구와 달리, 순영은 천천히 욕망에 눈을 뜨며 남편과는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이에 대해 조은지는 "욕망에 치닫는 인물이지만, 그에 공감한다 생각하고 연기해야 했다"며 "시나리오와 결말을 보고 순영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 기본적으로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실상 이런 일이 제게 실제로 주어지면 어떨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결론적으로 제 선택이 순영에 가까울지, 재구에 가까울지를 고민한다면 저는 재구 쪽에 가까울 것 같아요. 몸보다는 마음이 편한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에요. 순영의 모습을 연기할 땐 전형적인 부분들을 깨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어차피 익숙한 그림을 상상하게 될텐데, 감독은 그런 부분을 달리 표현하려 많이 노력하신 것 같아요. 친절하게 뭔가를 보여주기보다는 인서트로 설명하는 식이죠."
영화의 막바지, 순영과 재구가 벌이는 육탄전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다. 흩뿌려진 돈 사이에 때리고 맞고 뒹구는 두 사람의 모습은 '개싸움'이라는 지문 아래 두 배우가 함께 완성한 장면이었다.
"기본적인 동선 가이드만 주어졌고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연기한 장면이었어요. '개싸움'이라는 지문에 따라 마음껏 연기하라고 하셨죠. 제가 때리는 것에 능숙하지 않아 박용우 오빠가 많은 고생을 했어요. 처음에 제가 잘 때리질 못해서, 몇 번 때리다가 그냥 돈을 줍는 행동을 하기도 했어요. 막상 슛 들어가니 때리는 게 잘 안되더라고요. 두 번째 테이크부터는 '막 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따랐는데 용우 오빠는 '은지야, 네 손이 굉장히 맵구나'고 하더라고요.(웃음) 맞는 역이 훨씬 편해요. 아마 많은 배우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박용우와는 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 이후 약 13년 만에 재회했다. 조은지는 "최대한 인물의 감정을 가지고 현장에 갔는데, 박용우는 워낙 배려심이 많고 잘 이끌어주는 배우"라며 "많은 도움을 받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영화 속 강렬한 캐릭터들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면, 조은지를 실제로 마주한 뒤엔 조금 놀랄 지도 모른다. 쉴틈없이 대사를 뱉어내던 작품 속 인물들과 달리, 조은지는 말수가 많지도, 목소리가 크지도 않은 사람이다. 그는 "내가 연기한 인물들이 분명 내 안에 있고, 그런 모습들은 친한 친구들에게 많이 보여진다"면서도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낯도 많이 가리고 눈치도 본다. 소심한 편이기도 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조은지는 지난 2017년 연출작인 단편 영화 '2박3일'을 선보인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는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 호명된 조은지는 무대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려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대 여성 지은(정수지 분)의 파란만장한 2박3일 간의 이별기를 그린 이 영화는 배우 뿐 아니라 감독으로서 조은지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출을 경험한 뒤, 배우로 참여한 작품에서도 감독의 입장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지 물었다.
"아직은 경험이 많지 않아 감독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한 경험이 연기에 굉장히 많은 도움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것을 배웠죠. 미쟝센단편영화제 시상식에서는 정말 수상을 상상도 못했어요. 그 전에 이미 배우 정수지가 연기상을 받아 울컥했는데, 너무 훌륭한 감독들 사이에서 갑자기 제 이름이 호명됐으니까요. 심지어 눈물을 참으려 노력했는데도 그 정도였어요.(웃음)"
언젠가 감독으로 관객과 재회할 조은지의 미래가 기대되는 동시에, 그의 본격적인 코미디 연기를 다시 보고 싶다는 것도 팬들의 바람일 법했다. 이에 대해 조은지는 "코미디 연기를 정말 하고 싶다"며 "블랙코미디의 끝을 볼 만한 캐릭터로, 나를 다 버리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고 밝게 말했다. 이어 "잭 블랙의 '나쵸 리브레' 같은, 그런 영화를 꼭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알렸다.
한편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3일까지 부산시 일대에서 진행된다.
조이뉴스24 /부산=권혜림기자 li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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