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의 패션 잉글리쉬]'기생충' 속 패션에 숨은 상징

영화의 제목들을 보면 스토리가 예상되는 게 있는 반면, 제목에서 언급 된 것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조디 포스터(Jodie Foster) 주연의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 1991)'에는 '양'이 등장 하지 않으며, 브래드 피트(Brad Pitt) 주연의 '가을의 전설(Legends Of The Fall, 1994)' 또한 가을과 관련된 메시지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양들의 침묵'은 연쇄 살인 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형사 역인 조디 포스터가 꿈을 꾸고 "꿈속에서 보인 양들이 울고 있었지만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대사를 하며 살해되는 희생자들을 '양'에 비유한 것이다. 한 가문이 몰락(fall)하는 이야기를 다룬 '가을의 전설'은 'fall'을 '가을'로 오역한 실수가 오히려 의문점을 자아낸 영화다.

영화 '기생충(parasite)'은 포스터가 보여 주듯 빈부(貧富)의 격차를 주요 주제로 다룬 영화로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흥행 역 주행을 하며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소품들, 대사, 짜파구리, 제시카 송 등 하나 하나가 전세계적으로 큰 화제거리다.

부잣집에 기생하는 가난한 한 가족을 그리며 그에 맞는 상반되는 소품들 중, 단연 등장 인물의 복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모, 형제 모두가 실업 상태에서 가장 먼저 과외 선생님으로 취업을 하게 되는 인물인 '기우'는 여동생인 '기정'을, 기정은 아빠인 '기택'을, 기택은 부인인 '충숙'을 연이어 부잣집에 취업시키며 그들의 옷차림에도 큰 변화를 보여 준다.

반지하에 사는 기우의 가족들은 눈으로만 봐도 냄새가 날 것 같은 낡은 옷차림과 헝클어진 헤어 스타일로 대사를 주고 받다가도, 취업을 한 집에서는 양복, 원피스 등 정장 차림으로 신분 상승을 보여 주는 상반된 옷차림으로 등장한다.

면접을 보는 기우, 기사로 운전을 하는 기택, 미술과외를 하는 기정, 가정부로 일하는 충숙 등 깔끔한 수트(suit)와 원피스 차림이 그들의 양면성을 보여 준다. 또한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놓쳤을 법한 장면 중 하나는 지하실 남자 또한 지하실 벽에 양복 자켓을 걸어 놓은 장면이 있었다.

빈(貧)은 아래(하류층)를 의미하며 기우가 숨은 침대 밑, 가족들이 숨은 거실 테이블 밑, 부잣집의 벙커 같은 지하실, 기우 가족이 사는 반 지하, 또한 이상한 냄새를 비교하며 지하철을 언급한다.

수트라고도 불리는 정장은 불어인 'suite'라는 단어에서 유래 되었으며 그 의미는 'following(따르는)'이다. 자켓(jacket), 바지(trousers)면 투피스(two-piece), 여기에 조끼(waistcoat)까지 갖추면 '트리 피스(three-piece)'가 되듯 한 가지만 입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옷들이 따라(following) 줘야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단어는 기정 역의 박소담과 연교 역의 조여정이 자주 입었던 원피스(one-piece)인데 영어에서는 '원피스(one-piece)'는 하나로 이어진 여자 수영복을 의미하므로 '드레스(dress)'라고 해야 한다.

영화 후반부에 파티를 위해 지인들을 초대하는 대사 중 '드레스 코드(dress code)'는 초대 받은 행사에 입어야 할 복장의 종류를 말한다. 조여정의 대화 중 "드레스 코드는 없으니 추리닝 입고 와"라는 대사가 있다. 여기서 추리닝은 'training(훈련, 연습)'의 발음을 비속어적으로 하게 된 것이며 영어 자막은 이 단어를 'sweat shirt(땀이 나는 셔츠)'로 번역하였다.

수트의 본뜻이 'following'이듯, 부에 맞는 다른 모든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follow) 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생각하며 영화 '기생충'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들의 패션을 관심 있게 보며 영화를 다시 감상해 보면 좋을 듯 하다.

◇조수진 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영어 교육학 석사 출신으로 현재 중국 청도대원학교 국제부 영어 교사와 '조수진의 토익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