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비와 당신의 이야기' 속에 담긴 천우희는 참 맑고 따뜻하다. 늘 밝은 미소와 진중한 태도를 잃지 않는 천우희를 고스란히 만날 수 있는, 반가운 기회다. 스스로도 새로운 모습에 계속 도전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친 만큼, 천우희의 '천의 얼굴'을 기대하게 된다.
지난 28일 개봉된 '비와 당신의 이야기'(감독 조진모)는 우연히 전달된 편지 한 통으로 서로의 삶에 위로가 되어준 영호(강하늘 분)와 소희(천우희 분), '비 오는 12월 31일에 만나자'는 가능성이 낮은 약속을 한 그들이 써 내려가는 아날로그 감성 무비다.
천우희는 팍팍한 현실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소희 역을 맡아 감성 열연을 펼쳤다. 그간 '한공주', '곡성' 등에서 강렬한 연기를 보여줬던 천우희는 이번 영화에서 친근하고 평범하면서도 따뜻한 캐릭터로 또 다른 청춘의 얼굴을 그려냈다. 고단한 현실에 지지 않는 밝고 유쾌한 보통의 청춘이 천우희와 만나 뭉클한 위로와 여운을 안겨준다.
-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만나게 됐는데 소감이 어떠한가.
"개봉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영화 시장이 좋지 않았는데 제 영화가 개봉을 하다 보니까 뭔가 다르게 감격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잔잔함, 따뜻함이 좋더라. 요즘은 보기 드문 잔잔한 영화다 보니까 이런 영화도 지금 하나 정도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성 영화를 좋아했었는데 이렇게 수채화같이 여리여리하고 맑은 영화가 보고 싶기도 하고, 제가 연기하는 부분도 궁금했다."
- 시나리오 속 소희를 어떤 식으로 완성해나갔나.
"표현 방식이 많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강하늘 배우가 연기한 영호는 서사가 많이 비워져 있었지만 감정선을 표현하는 것이 많았다. 소희는 함축적인 것이 많았다. 괄호 속 행동 표현에 갇혀 있지 말자는 얘기를 했고, 감독님과 현장에서 많이 맞춰갔다. 소희라는 인물이 청춘 영화에 어울릴 수 있게 감정 표현을 최소화했다. 감독님께서 강약조절을 많이 도와주셨다."
- 소희를 연기하는데 있어서 중점적으로 생각한 것은 무엇이며, 소희와 닮은 점은 무엇인가.
"감독님께서 소희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과 이해력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 친구가 하는 행동들이 얼마나 배려심이 있는지 저는 알겠더라. 제가 가지고 있는 성향도 그런 편이긴 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타심이 많다기 보다는 남과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고 배려하는 편이다. 다른 점이라고 하면 약간의 방식 차이이기도 하는데, 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제가 먼저 찾아간다거나 하는 적극성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 편안하고 일상적인 모습이 훨씬 많아 힘을 빼고 연기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색다른 도전이었을 것 같은데, 소희라는 캐릭터를 연기한 뒤 개인적 혹은 연기적으로 변화한 부분이 있나.
"정말 힘을 빼고 연기를 많이 했다. 강렬한 연기라고 해서 힘을 주고 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서 무심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빼고 연기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색다른 도전이긴 했는데 연기를 해서 변화했다기 보다는 어느 순간 연기적으로 변화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 결이 극적이거나 굵은 연기를 했기 때문에 반대되는 일상 연기를 해야겠다 하는 것이 아니라 다방면으로 시각을 넓히고 싶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인물에 대한 탐구를 깊이 해보고 싶었다면 지금은 재미가 있어서 새로운 모습을 찾게 된다. 선택의 기준에서 여러 지점이 많이 생겼다.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가 있는 것 같다."
- 감정을 주고 받는 대상과 보며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레이션이 주를 이뤘다. 강하늘 배우의 연기를 보며 내레이션하는 건 어떠했나.
"내레이션을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약간의 잔재미일 수 있는데, 흉내를 많이 낸다. 2000년대 소희 말투를 살렸다. 각자가 연기를 하다 보니 저 혼자 현실 말투를 가져오면 이상할까봐 강단 있고 맑음을 대사 톤에 실으려고 했다. 제 음성을 들으면서 녹음을 했고, 더 섬세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다."
- 혹시 개인적으로 편지에 얽힌 특별한 경험이 있나.
"요 근래에 마미북대디북을 부모님께 선물해드렸다. 부모님이 그걸 채워서 책을 만드는데 마지막에 편지가 있다. 머쓱해하면서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 본인의 이야기, 젊은 시절에 대해 쓰다 보니까 옛 기억이 즐겁게 다가오기도 하고 아프게 다가오기도 하시는 것 같다. 마지막에 딸에게 주는 편지가 있는데, 몇 줄 안 되지만 특별하게 다가왔다. 오래 간직하고 싶고, 제가 엄마가 된다면 똑같이 자식에게 하나 정도는 이야기를 써주고 싶다."
- 10년에 가까운 시간의 흐름 속 인물의 변화에 대해 신경 쓴 부분이 있나.
"시간의 흐름을 크게 염두를 두지는 않았다. 소희가 살아온 인생 속에서 변화는 있겠지만, 몇 년 사이로 너무 성숙해진다거나 담담해진다면 인물이 달라질 것 같아서 조금은 일관되게 표현했다. 조금 더 담대해지고 성숙해짐 속 익숙함을 가지려고 했지 변화를 신경 쓴 건 아니다. 소희에게 변화가 있다면 가장 지키고 싶었던 가족의 상실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세월 속에서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그건 가지고 갔던 것 같다."
- 강하늘 배우와 함께 하는 과정에서 의외의 매력을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사회생활을 굉장히 잘하시더라. 넉살이 좋다. 왜 미담제조기인지 정확히 알겠더라.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친구다. 그 안에서도 자기가 지켜야 할 것에 대한 명확한 선이 있고 자기 중심이 정확하게 있는 친구라 매력적이었다. 일을 해나감에 있어서도 흔들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강하늘 배우가 다음에 대판 싸우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이번에는 많이 호흡할 부분이 없다 보니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긴 하다. 티키타카가 많거나 하면 계속해서 만날 수밖에 없지 않나. 긍정적인 감정도 좋고 계속 충돌하는 역이라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잘 받아주는 성격이고 연기도 잘하는 친구라서 나중에 꼭 다시 만나고 싶다."
- 결말에 대한 만족도는?
"제가 이 작품을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에필로그다. 소희가 계속 편지를 쓰게 되는 이유를 에필로그가 말해준다. 결말 역시 만족스럽다. 깜빡이를 켜는 것과 헤드라이트 불빛이 열린 결말을 얘기해주는 단서라고 생각한다. 나름 다른 영화와의 차별성이 있는 결말이라 만족한다."
- 강영석 배우와는 티격태격하고, 언니 소연 역을 맡은 이설 배우와는 눈으로 감정을 주고받는 게 인상적이었다. 두 배우와의 호흡은 어떠했나.
"강영석 배우는 이번에 처음 봤다. 강하늘 배우와 선후배 사이라 많이 친하더라. 그래서 강하늘 배우를 연결고리로 대화의 소재로 쓰면서 친해졌다. 영석 배우도 현장에서 제가 하는 연기를 받아서 꽤나 잘 표현하려고 해 고맙게 생각한다. 이설 배우는 평소 눈여겨 봤던 친구다. 너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언니로 나와서 반가웠다. 현장에서 많은 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깊은 감정을 표현해줬다. 어려운 연기일텐데 잘 해줘서 어려움없이 할 수 있었다. 고마웠다."
- 북웜과 연인이 될 가능성은 없는지, 또 그런 점에서 아쉽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그런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편집된 부분이 있는데 북웜, 소희, 소연이 중학교를 같이 다녀 친한 사이로 설정이 되어 있는데 '너와 나는 그렇게 될리가 없는 친구다. 손을 잡아도 설레지 않는다'는 표현이 있었다. 그래서 로맨스는 전혀 생각지 않았고, 아쉽지도 않다.(웃음)"
- 손편지는 직접 쓴 건가?
"제가 직접 써보려고 열심히 연습도 하고, 인터넷 강의도 들었는데 제가 많이 부족한 관계로 전문가 분이 오셔서 서주셨다.(웃음)"
- 소희가 관객들에게 어떤 위안을 주면 좋을 것 같은가.
"위로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시기적으로 잘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도 기적이고 희망일 수 있다. 사소하지만 일상적인 것들, 인연을 맺는 것도 기적이다. 이런 작은 기적은 우리 생활 안에 하나하나 다 있다. 우리가 단순하게 10분 늦었는데 눈 앞에 버스가 있는 것도, 아이 셋을 둔 어머니가 아이를 맡기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일상 속 작은 기적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지치고 힘들고 화나는 상황이지만, 그 안에서 우리에게 주는 기적과 희망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는 두 시간 동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 작품을 하면서 혹은 최근 위안받았던 경험이 있나?
"스태프에게 편지를 받았다. 그 친구가 예쁜 말을 써줬는데 그 배려를 통해 큰 위안을 받았다. 이래서 연기를 하고 호흡할 수 있구나 싶어 고맙게 생각한다."
-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도 조언을 얻거나 위로를 많이 받는 편인가.
"물론이다. 동료들,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을 나누는 그 자체로도 위로를 받는다. 남에게 제 얘기를 하거나 표현을하지 않는 편이긴 하는데 한번씩 툭 나오면 큰 울림을 줄 때가 있다."
- 혹시 기억에 남는 12월 31일이 있나.
"'앞자리가 바뀌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엄청나게 달라지거나 성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새해 목표를 세우고 이건 나아지자면서 일기는 꼭 썼던 것 같다."
- 강하늘 배우가 전작 때문에 어두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지만 이번 영화로 그것이 깨졌다고 했었다. '멜로가 체질'도 있었지만, 이렇게 밝고 따뜻한 천우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객들도 반가울 것 같은데 스스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배우조차도 어두울 거라는 선입견을 얘기할 정도로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나보다. 선입견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저는 편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저를 어떤 작품으로 처음 보고 받아들였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다를 것 같다. '곡성'이나 '한공주'는 너무나 센 캐릭터의 배우일거고 '멜로가 체질'은 유쾌할 수 있다. 첫 인상에 따라 다를 것 같아서 선입견에 대해서는 무겁게 생각지 않는다. 저를 기존에 알았던 관객들에겐 이런 모습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반가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저 조차도 그렇다. 조금은 마음 편하게 생각하실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에 도전할 생각인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하다."
- 천우희의 20대는 어떠했나.
"저도 내가 뭘 잘하는지도 모르겠고 주어진 자유를 어떻게 만끽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영호와 비슷했던 것 같다. 어떤 목표라는게 없었다. 내가 뭘 잘하는지도, 뭘 좋아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 잃을까봐 조급할텐데 저는 그런 게 없어서 그런지 조급함이나 불안함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가 현장을 느끼고 연기를 하게 되면서 흥미가 생겼고 배우에 대한 꿈을 점차 가지게 됐다. 이제 막 꿈꿨던 것들을 돌이켜 보면 이룬 것 같다."
- '놀라운 토요일'에서 굉장히 부끄러워 하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했던 소감은 어떠한가.
"예능은 필터가 안 된 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럽다. 연기는 다른 캐릭터로 분해서 하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데 예능은 제 모습이라 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현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걸을 해서 재미있기는 하지만 아직 예능은 어렵기는 하다.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저는 집순이고 뭘 안한다. 그래서 관찰 예능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앞으로 시청자,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새로운 모습은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생각해 놓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다면?
"좋은 캐릭터를 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많다. 나쁜 역할을 해본 적은 없다. 다 나름대로 연민이 있던 캐릭터를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는 진짜 빌런을 해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정통 멜로, 혹은 아예 판타지도 해보고 싶다.(웃음)"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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