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지영 기자]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발전한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 등을 통해 정상에 오른 박찬욱 감독은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을 통해 이를 입증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 분)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 분)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로맨스 스릴러다. 올해 열린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미쟝셴, 색채, 연출력 등을 입증해왔던 그는 이번 '헤어질 결심'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미묘한 연출과 절제를 적절히 섞으면서도 과감한 컷 편집, 모험적인 앵글 구도는 수많은 시네필들을 열광하게 했다. 더불어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표현을 주로 사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 극 중 서래와 해준은 직접적인 표현 대신 짙은 감정을 눈빛과 분위기로 주고받으며 관객을 더욱 몰입케 한다.
-로맨스 장르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정서경 작가가 '우리는 사랑 영화는 못 만든다'라고 했다. 자기도 못 쓰고 우리는 안 된다고. 그런 걸 못 만드는 종족이라고 단언해 보란 듯이 만들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서경 작가를 어르고 달래가며 로맨스 이야기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본인도 다 써놓고 실감을 못 했던 것 같다.
-이전의 연출작보다 이번 '헤어질 결심'에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한 것 같다
과묵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대사의 양이 적다는 게 아니다. 이 영화의 대사가 다른 영화에 비해 대사가 적은 것은 맞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다. 감정 표현하는 데서는 적고 그런 부분에서는 과묵한 영화다. 요즘 많은 이들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 시대니 이런 얘기도 젊은 사람들에게 통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속으로만 간직하는 감정, 얼마나 교묘하게 애타게 보여줄 수 있는지, 극 중 인물들은 감춘다고 감추는데 우리가 보기에는 적당히 보이는 영화를 하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n차 관람하게 만든다. 이번 '헤어질 결심'도 그렇고.
두, 세 번 보면 더 재밌어지는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한 번 보면 마는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한 번 보고도 충분히 다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다만 집중은 필요하다. 집중만 한다면 이해하는 데 문제없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두, 세 번 볼 때마다 새로운 것이 발견되는 재미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기왕이면 똑같은 돈 써서 보는 사람으로서도 그렇지 않나.
-모처럼 '잔혹하고 폭력적이지 않은' 멜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이런 류의 영화를 연출할 계획인지, 이번 영화에 대한 만족도는?
제가 만들어놓은 각본, 여러 기획 중에 아주 폭력적인 것도 있고 이것보다 덜 폭력적인 것도 있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으로 아예 진로를 바꿔탔다는 것은 아니다. 그때그때 스토리가 요구하는 표현 수위를 맞춰갈 뿐이다. 만족도는 글쎄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제 영화를 놓고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두 배우의 연기가 귀여워서 다시 보는 즐거움은 있는 것 같다. 크게 거슬리는 장면은 적고 소외되는 장면도 적은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탕웨이에 먼저 캐스팅을 제안하고 각본을 집필했다. 탕웨이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담고자 했나?
탕웨이가 출연한 '색계', '만추', '황금시대' 등을 보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몸이 곧다고 해야 하나. 탕웨이 씨를 생각하면서 서래의 대사를 썼다. 이성이 좋은 이유를 설명할 때 그게 결국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한 경우가 있지 않나. 자기가 되고 싶은 것에 관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저희가 대사를 쓸 때는 서래와 해준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그리고 탕웨이 씨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고 그런 부분에서의 자부심, 해이해지지 않기 위해 똑바로 서 있는 사람이라고 이해했다. 그런 부분에서 나오는 위엄, 기품이라는 게 있다. 서래가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내가 그렇게 나빠요?'라고 반문할 수 있는 당당함이 느껴졌다. 그런 것을 중점적으로 담고 싶었다.
-그렇다면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서래를 외국인으로 설정했던 것인가
그렇다. 작가와 다짐했던 것은 우리가 비록 탕웨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중국인으로 설정했지만, 관객으로선 중국인이라는 점이 중요해서 그렇게 썼고 맞는 배우를 찾은 것처럼 받아지도록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서래의 중요한 부분에 파고들었다.
-서래의 집 벽지, 서래가 보는 책의 표지, 극 말미 바다 등 영화 곳곳에서 파도가 등장한다. 영화에서 파도는 어떤 의미이고 상징인가
언뜻 보면 산이고 언뜻 보면 파도로 디자인됐다. 파랑으로도 보였다가 녹색으로도 보이는 원피스처럼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조차도 이렇고, 서래의 정체도 불분명한 것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이 진짜인지 알 수 없도록. 파도는 이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프가 됐고 그 운명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하는 자연 현상이다. 잔잔할 때는 전혀 무섭지 않고 그 안에 남기고 싶은 곳이지만, 나중에는 무서워지는 변화무쌍한 곳. 저에게 파도는 그런 인상이다.
-극 중 서래와 해준은 번역 어플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디지털 기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외신에서는 '디지얼로그'라고 표현했는데.
처음 정서경 작가와 각본을 쓰면서도 '스마트 기기가 너무 많이 나오네. 이거 문젠데?'라는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포기하게 되더라. 현대인의 생활에서 이런 걸 포기하면 너무 억지로 쓰게 된다. 모든 일을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데 안 쓰면 다른 수단을 억지로 써야 하니까. 현대인의 실상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른 작품에서 서류로 된 두꺼운 파일을 보거나 사용하면 보기엔 그럴듯하지만, 관객 처지에선 '아이패드로 보여주면 되는데'라고 생각하거나 '왜 저렇게 하지'라는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그런 거 하지 말자고 한 것이다. 디지털 기기를 쓴다는 것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고 기왕 쓰는 것이라면 중요하게 부각해 쓰고자 했다. 문자를 하지만, 서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서래가 나를 보는 시점인 것처럼 써보려고 했다.
-여러 작품에서 흥행을 거뒀다. 이번 작품도 흥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나
부담은 늘 있다. 그 생각만 한다. 다음 작품을 투자받을 수 있도록 흥행이 돼야 한다는 생각. 투자한 사람이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흥행은 해야 한다. 감독으로서 생계가 달린 문제니까. '흥행을 생각하는 사람이 이런 영화를 만드냐'라고 하는 사람도 있던데 저는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다. 제 능력이 닿는 한 하는 것이지 제가 갑자기 최동훈, 류승완 감독을 흉내 낸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웃음) 제가 즐겁고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해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헤어질 결심'은 여러 부분에서 전 연출작들과 다르고 보다 발전됨이 느껴진다. 스스로 보는 박찬욱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
여태까지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는 말을 들었는데 가장 듣기 좋다. 발전하고 있다는 얘기도 반갑다. 제가 나이도 있고 30년이나 영화감독 노릇을 하고 있는데 아직도 발전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즐거운 일 아니겠나. 저는 지루한 걸 못 참는 감독인 것 같다. 좋은 결과가 있었을 때 안주한다거나 했던 것을 또 하는 식은 스스로도 추구하지 않는다. 감독은 각본을 쓰고 대본을 집필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고 모든 것을 갖다 바쳐야 하는 일이다. 즐거워야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감독 박찬욱을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제가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보다 더 나아졌다는 것은 사실 잘 모르겠다. 물론 나아지면 좋겠지만, 다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저 다르기 위한 다름은 안 된다. 다르면서도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옛날의 대가들과 비교해본다.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매체의 대가들도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이봉조 작곡가가 도달했던 수준을 떠올려본다. 진짜 훌륭했던 예술가들이 기울였던 노력과 성취를 생각하면서 나 또한 그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
/김지영 기자(jy1008@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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