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배우 김재범이 '슈룹'으로 다시 한번 데뷔 19년차 연기 내공을 폭발시켰다. 숨겨왔던 정체를 드러내며 후반 긴장감을 극대화시키고 묵직한 존재감을 뽐냈다. "오래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바람처럼, 앞으로 보여줄 김재범의 연기 행보에 기대가 더해지는 순간이다.
tvN 토일드라마 '슈룹'(연출 김형식, 극본 박바라)은 사고뭉치 왕자들을 위해 치열한 왕실 교육 전쟁에 뛰어드는 중전 화령(김혜수 분)의 파란만장 궁중 분투기를 담은 드라마로, 지난 4일 시청률 16.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플랫폼 기준)를 얻으며 종영됐다.
김재범은 극에서 동궁 담당 어의인 권의관 역을 맡아 열연했다. 극 초반엔 의관으로서 화령의 명을 받아 세자(배인혁 분)의 치료에 나섰다. 심한 고초를 겪고 모습을 감추기 전까지만 해도 화령의 조력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후반 드러난 권의관의 진짜 정체는 태인세자의 아우인 영원대군, 이익현으로, 세자를 독살한 장본인이자 의성군(강찬희 분)의 친부였다. 김재범은 후반 휘몰아치는 반전 전개 속 탄탄한 연기력으로 이익현의 비극적인 서사에 설득력을 입히며 완벽한 '신스틸러'라는 호평을 얻어냈다.
워낙 긴 시간 애정을 가지고 촬영했기 때문에 더욱 종영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김재범은 지난 7일 진행된 조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서 "서운한 감정이 있다. 또 촬영장에 가야 할 것만 같다"라고 헛헛한 마음을 털어놨다.
'슈룹'의 시작은 김혜수의 추천이었다. 영화 '인질'을 본 김혜수가 권의관 역으로 김재범을 추천했다는 것. 이에 김형식 감독과 미팅을 하게 됐다는 김재범은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첫 리딩 때 전 배우들에게 편지를 써주셨다. 아직 감사하다는 말씀도 못 드렸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라며 "저의 웃는 모습을 본 순간 마음 속에 결정을 내렸다고 하시더라. 저의 선하고 예의바른 모습, 인간적인 모습에 끌리신 것이 아닌가 제 마음대로 해석하고 있다"라고 말하곤 웃음 지었다.
이어 "감독님이 미팅에서 '이 역할이 뒤에 뭐가 있다'라고 하셨다. 제가 이 역할을 하기로 선택하면 그 때 말씀을 해주신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선한 인상이라 '알겠다'라고 하곤 회사와 상의 후 결정을 했다"라며 "그리고 그 다음 날 감독님을 또 만나서 이 인물에 대한 서사를 들었다. 더욱 더 감독님 인상이 좋아보이더라. 권의관의 서사가 보통이 아니라 기쁘게 결정을 하고 참여를 하게 됐다"라고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권의관은 반전이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보니 김재범 캐스팅 전까지 제작진의 고민이 꽤 컸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배우들보다 늦게 합류를 하게 된 김재범은 출연 결정하고 바로 전체 대본 리딩에 참여를 했다고. 그는 "연습할 시간이 없이 가서 리딩부터 하고 인물을 연구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부담보다는 기쁜 마음이 컸다. 그는 "이런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굉장히 기뻤다. 배우 입장에서는 해보고 싶은 역할이라 기뻤고, 권의관의 서사가 언제쯤 풀릴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라며 "대본을 받을 때마다 설레는 마음이었다. 대본 보면서 '아직도?', 다음 편에서 '어? 이럴 수 있나? 지금 11부인데' 이런 마음이 있었다. 마치 로또를 사놓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행복하게 기다렸다"라고 '슈룹' 권의관을 연기할 수 있어서 기쁘고 좋았던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주변 반응에 대해서도 전했다. 그는 "저를 모르는 분들은 전혀 저를 알아보는 분들이 없어서 굉장히 편안하다. 그런데 지인들도 못 알아보더라. '낯이 익네' 정도였고, 한참 지난 후에야 '혹시 너냐?'라고 하더라. 대충 본 것 같다. 초반엔 '봤다' 정도 말하더니 나중엔 '너 누구냐', '아빠냐'라고 묻더라. 하지만 '아니다'라고 거짓말을 했다. 스태프, 배우들도 내용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저는 얘기하지 말라고 하셔서 시키는대로 했다"라고 고백했다.
이런 김재범이 중점을 둔 부분은 진실성이다. 이 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를 가장 깊게 생각했다고 한다. 아들 의성군과의 마지막 장면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는 김재범은 "제 입장에서는 '내가 너의 아비'라고 말을 할까 생각해 봤다. 아들 입장에서는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 싶더라"라며 "하지만 이익현은 '나는 실패했지만 너는 꼭 살아남아라. 네가 내 아들이니 적통, 진짜 왕의 핏줄'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이것이 아들이 살아갈 큰 힘이 됐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들도 함정에 빠져서 죽인거라 누군가에게 듣게 되지 않을까 싶다. 대비마마(김해숙 분)가 볼을 쓰다듬으며 얘기를 했을 수 있으니까 차라리 자신이 얘기를 해서 살아갈 힘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라고 자신이 이해한 바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눈물을 참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익현은 어렸을 때 내성적이고 감성적이며 착한 아이였다고 생각한다. 효자다. 그런 아이가 그런 일들을 겪다 보니 차갑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보면 계산적으로 변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기쁨, 슬픔 등의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다. 이익현의 입장에서 슬픈 장면이 많아서 울음을 참기가 쉽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그렇기에 거의 웃지 않던 이익현이 의성군과의 대화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웃던 장면이 더욱 애틋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장면을 "권의관 입장에선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들이 나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핏줄이니까 예뻐한 것 같다. 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라고 덧붙였다.
황귀인(옥자현 분)의 "한 번도 여자로 생각한 적이 없나"라는 질문에 답을 할 때도 김재범에겐 슬픔과 미안함의 감정이 가득했다. 그는 "처음엔 이용하려고 접근했지만 나중엔 미안함이 컸을 거다. 감독님께 '황귀인은 왜 권의관에게 마음을 열었나'라고 여쭤본 적이 있는데 감독님께서 '굉장히 자존심이 세지만 외로운 인물이다. 왕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런 사람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오고 따뜻하게 대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황귀인에게 더 그렇게 하려 노력했다. 연기일지언정 대사는 없지만 따뜻하게, 괜찮다는 마음으로 바라보려 했다. 그래서 황귀인의 물음에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이어 "눈물이 떨어지기도 했는데, 이익현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없는 인물이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은 인물이라 생각했다"라며 "사랑 보단 못해도 감정이 있을거라 생각하니 그 질문이 참 슬프더라. 눈물이 나고 미안한 마음이 제일 큰 것 같다"라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재범은 종영 후 강찬희, 옥자연과 함께 웃으며 찍은 흑백 가족사진 세 장을 자신의 SNS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칼에 찔린 후 제 뒤통수를 찍을 때 너무 많이 울었다. '내가 너의 아비다' 할 때 너무 많이 울어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라며 "사진을 보니 '조선시대에 고생을 굉장히 많이 한 사람'처럼 생겼더라. 특히 그 두 사람과 같이 있으니까 마치 합성처럼 보여서 올리는 걸 많이 망설였는데 소중한 가족사진이니까 공개를 했다. 사실 더 많이 찍었는데 나머지는 자신이 없더라.(웃음) 셋 다 웃고 있는 것이 보기 좋았다"라고 가족사진을 공개한 이유를 유쾌하게 밝혔다.
어머니(서이숙 분)에게 인사를 하면서 진짜 정체가 드러나던 장면 역시 김재범에겐 "눈물이 많이 났던" 장면으로 기억된다. 그는 "20년 만에 보는 어머니다. 헤어진 그 자리에서 그대로 다시 만난다. 이익현의 어린 시절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보면서 갔다. 어릴 때 봤던 어머니를 계속 봤는데, 연기할 때 어머니를 딱 보니 눈물 참기 쉽지 않더라"라며 "하지만 이익현에게는 눈물이 허락되지 않기에 제 뒤통수를 찍을 때만 눈물을 흘리고, 앞 모습을 찍을 때는 꾹 참고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가슴이 아프더라"라고 눈물을 꾹 참으며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런 김재범이 가장 힘들었던 건 '발가락 고통'이었다. 이번 '슈룹'으로 사극에 첫 도전한 김재범은 "의관이라 초반에는 계속 무릎을 꿇고 있었다. 무릎 꿇고 대화하고 침 놓고 약 주고"라며 "아무 생각없이 발가락을 세우고 있었더니 너무 아프더라. 발가락이 다 나가서 몇 달이 지났는데도 돌아오질 않는다. 만약 무릎을 꿇을 일이 있다면 발가락을 세우지 않길 바란다"라고 거듭 발가락의 아픔을 호소했다.
또 처음 붙여본 수염 분장으로 밥 먹는 것이 힘들기도 했다고 밝힌 김재범은 "고문 받았을 때 발가락, 손가락 사이 사이까지 피를 엄청 뿌렸다. 뜨거운 물에 30분 몸을 담그고 있었다"라고 피 분장 에피소드를 공개하기도 했다.
촬영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것도 힘든 점 중 하나였다. 그는 "마지막 촬영을 얼마 안 남겨두고 코로나에 걸렸다. 중요한 신만 남았었다. 격리가 끝나고 황원형(김의성 분)을 죽이는 장면을 찍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고 컨디션이 안 좋고 컷하면 기침을 했다. 저 때문에 스케줄 조율을 다시 해서 죄송한 마음이 컸다"라며 "그런 정신적인 압박과 컨디션 난조가 오히려 제 역할에는 큰 도움이 됐다. 이익현은 벼랑 끝에 있는 상황이라 지쳐있고 혼란스럽고 컨디션도 안 좋았을 거다. 그런 상태가 만들어지니 더 절실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물론 연기하는 입장에선 걱정이 됐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 했다"라고 긍정 에너지를 드러냈다.
김재범은 지난해 개봉된 영화 '인질'에서 희대의 빌런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내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이 덕분에 김재범은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신인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서 MC였던 김혜수와 후보자로 참석한 이성민을 봤던 기억을 떠올린 그는 "팬의 입장, 시청자, 방청객처럼 현장에서 기뻐하고 박수치고 하는 것이 좋았다"라며 "그런데 무대가 멀더라. TV에서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지만(웃음) 현장에서 행복했다"라고 소회를 전했다.
'슈룹' 이익현의 최후가 담긴 15회를 어머니와 같이 봤다는 그는 "어머니가 좋아하셨다. 어르신들은 KBS, MBC, SBS 지상파만 하시지 않나. 처음에 tvN이라고 했을 때 어머니도 장모님도 '지상파에 나와야하는데 tvN이 뭐냐'고 하셨다"라며 "공연은 아무리 해도 어르신들이 잘 모르셔서 자랑거리가 없으셨는데 '슈룹'은 자랑거리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질' 때는 '잘했고 좋았는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보진 못할 것 같다'고 하셨다.(웃음) 어머니는 좋아하셨지만 악역이다 보니 자랑을 하진 못하셨다. 하지만 '슈룹'은 여기저기 말씀을 하셨고, 방송 끝나고 '너무 고생했다'고 해주셨다. 친척분들에게도 전화가 왔다. 뿌듯하면서도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가족들의 자랑이 될 수 있어서 뿌듯했던 마음을 고백했다.
200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으로 데뷔해 수많은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김재범은 올해 19년차 배우가 됐다. 그럼에도 그는 "드라마, 영화 매체에서는 신인 배우"라고 말하며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고 보여줄 게 많은 신인이다. 뭐든지 즐겁게,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남다른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지금은 공연 보다는 매체 비중을 더 두려고 한다. 공연을 하더라도, 이전에 했던 공연 위주로 할 것 같다. 초연이나 창작은 쏟아야 하는 시간이 많아서 병행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공연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앞으로 당분간은 매체 쪽으로 더 많이 계획을 세우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연기를 오래 하고 싶다. '아트'에서 이순재, 노주현, 백일섭 선생님들을 보면서 '저 때까지 연기 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 친구와 같이 '아트'를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 저를 꾸준히 알릴 계획이다"라고 배우로서 가진 다부진 목표를 전했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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