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어 어원인 '패러독스(paradox)'는 'para(너머의 = beyond)'와 'doxa(의견, 신념 = belief)'가 합쳐진 단어로 '역설'로 해석된다. 명절 연휴 기간에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살인자ㅇ난감'(영제: A Killer Paradox)은 스파이더맨, 슈퍼맨, 배트맨과 같은 전통적인 히어로와는 거리가 먼 K히어로를 다루는 스릴러와 블랙코미디의 경계에서 펼치지는 독특한 스토리를 특징한다. 난감한 한국어 제목 보다는 오히려 영어 제목이 스토리를 짐작하게 한다.
이 작품의 작가는 이러한 복잡한 테마를 통해, '살인자 난감' '살인 장난감' '살인자의 난감', 또는 '살인자 O 난감' 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중이적인 제목을 사용함으로써, 이야기의 다층적인 의미와 인물들의 심리적 굴곡을 탐색하도록 유도하였다.
세상 근심을 다 짊어진 듯한 장난감(손석구 분)은 쓴맛이 금방 나는 풍선껌을 달고 다니는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깊은 사연을 가진 형사로 드라마 제목과 연관성이 가장 깊다. 심드렁한 표정, 나약한 몸, 학업에 관심 없는 편의점 알바생인 이탕의 패러독스가 전반부 매회 펼쳐 진다.
1화의 장난감의 난감한 패션을 시작으로 애매모호한 이탕의 캐릭터는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하나의 재킷을 입기 시작하면서 스토리 전개는 급진전된다.
덥수룩한 수염을 한 장난감은 레이어드 룩을 즐겨입는다. 셔츠 안에 티셔츠, 재킷 안에 셔츠로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레이어드(layered) 룩을 연출하였다. 그러다가도 다소 난감한 밑단이 짧은 크롭 팬츠(cropped pants)가 눈에 띈다.
'자르다' 의미를 지닌 '크롭(crop)'은 바지뿐만 아니라 배꼽티(cropped shirt), 크롭 패딩(cropped puffer coat), 크롭재킷(cropped jacket)등 다양한 아이템에 사용된다. 1차 세계 대전의 버뮤다팬츠(Bermuda Shorts)를 시작으로 바지가 무릎까지 짧아졌다가 20세기 후반 자기표현을 중요시하는 하는 펑크(punk) 문화가 전 세계를 강타하였다. 이때 자유로움을 표현한 룩 중 하나가 크롭 팬츠였다. substantiality의 중요성이 높아지는 요즘 짧게 잘라 입는 팬츠는 현재 손상된 긴 바지를 재활용하는(upcycling) 방식으로 DIY(Do It Yourself)패션 애호가들에게 자주 사용되는 디자인 방식이 되었다.
줄거리 중반부를 지나면서 컴퓨터 해커인 살인자를 조력하는 노빈은 이탕에게 항공 재킷을 건넨다. 이탕은 "죽이고 보니 죽어 마땅한 인간들이었다"로 살인의 의외성에 의미를 두다가 "Heros"라고 쓰인 항공 재킷을 입고 본격적인 다크 히어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크롭 팬츠만큼이나 깊은 역사를 함께 한 항공 재킷(bomber jacket)은 1927년 미국 육군 항공대에 의해 처음으로 도입되었다. 그 당시는 무거운 가죽으로 제작되었다가 1950년대 처음으로 현재의 가벼운 나일론(nylon) 버전이 등장하였다. 그 당시 항공재킷은 추락 시 구조대의 눈에 잘 보이도록 제작된 오렌지 색 안감이 특징이었다. 단순히 제트기 조정사가 입는 것에 그치지 않고 1960-70년대 영국의 스킨헤드 운동(Skinhead Movement)을 이끈 젊은 노동자들은 실용적이면서 사회적 소속감을 표현하는 패션의 수단으로 항공 재킷의 유행을 이끌었다. 짧은 머리, 폴로셔츠(Polp Shirt), 카고 팬츠(Cargo Pants), 청바지(Blue Jeans), 항공 재킷 등이 스킨헤드 운동을 대표하는 아이템이었다.
웹툰 원작에는 등장하지만 드라마에 빠진 대사가 있다. "어른이 되서 내는 용기는 만용이다" 만용은 '무모하고 거만한 용기' '경솔하고 대담한 행동'을 의미한다. 이탕과 그를 쫓는 형사, 다른 살인자 송촌, 살인을 조력하는 노빈 이 주요 4인방은 사적 제재의 주제의식에 취해 만용을 보여 주는지 아님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신념을 뛰어넘는 패러독스를 보여주는지는 드라마의 해석은 제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K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웹툰 원작이 드라마의 판을 짜고, K 컨텐트가 경계를 뛰어넘어(beyond) 트랜드의 판을 바꾸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살인자 ㅇ난감'의 속도감 있는 줄거리의 전개, 감각적인 편집과 음악, 배우들의 연기, 캐릭터에 맞는 패션의 세심함을 눈여겨보면 드라마를 한층 더 깊게 즐길 수 있다.
◇ 조수진 소장은 베스트셀러 '패션 X English'의 저자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영어교육 전문가 중 한 명이다. 특히 패션과 영어를 접목한 새로운 시도로 영어 교육계에 적지 않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펜실베니아 대학교(UPENN) 교육학 석사 출신으로 '조수진영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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