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극도, 연기도 다 하다 만 느낌이다. 무엇 하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답답하게 제 자리만 맴돈다. 과연 2023년에 촬영된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촌스럽고 게으른 연출과 매력 부재의 캐릭터, 딱 예상한 만큼의 연기까지, 한숨만 푹푹 나온다. 송중기 이름값이 아깝다.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My Name is Loh Kiwan/감독 김희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 분)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각색된 작품으로, 단편 영화 '수학여행'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 국제단편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김희진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작가로 처음 참여했던 김희진 감독은 제작사의 제안을 받고 연출까지 하게 됐다. 송중기는 탈북자 로기완 역을, 최성은은 사격선수 출신의 마리 역을 맡아 멜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와엘 세르숩, 조한철, 김성령, 이일화, 이상희, 서현우 등이 출연해 연기 합을 이뤘다.
로기완은 "살아야 한다"는 엄마(김성령 분)의 유언을 가슴에 담고, 자신의 이름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인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홀로 벨기에에 도착한다. 가진 거라곤 삼촌(서현우 분)에게 건네받은 엄마의 목숨값. 하지만 이를 사용할 수 없었던 로기완은 말도 통하지 않는 유럽의 낯선 땅에서 차가운 멸시와 폭행을 당하면서 절박한 하루하루를 버틴다. 그러던 중 벨기에 국적을 가진 한국인 사격선수 출신의 마리와 악연으로 얽힌다. 로기완은 점차 마리와 가까워지고,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엄마의 죽음 이후 방황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던 마리는 살고 싶은 로기완을 통해 점차 변화를 겪게 된다. 엄마라는 공통된 아픔과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되어준다.
극은 로기완이 벨기에로 오게 된 과정과 그 이후 겪은 참담한 삶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하고 낯선 벨기에라는 나라.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이방인으로 내쫓기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로기완의 모습은 눈물나게 안타깝고 서글프다. 쓰레기통을 뒤져 나온 상한 음식을 먹고 배탈이 나고, 화장실 바닥에 누워 잠을 청한다. 누군가가 강에 버린 자신의 신발을 건져내려다 도리어 강에 빠져 살이 찢어지는 추위에 덜덜 떨다 실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살기 위해' 버티고 또 버틴다. 송중기는 이런 로기완을 정말 '처절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안타까움은 이 인물이 처한 물리적인 상황에 대한 것일 뿐이지, 극에 대한 공감 혹은 재미와 같은 선상에 있는 감정이 아니다. 오히려 다소 뻔한 구조에 힘 하나 없이 축축 늘어지는 서사, 매력 없는 캐릭터로 인해 극에 빠져들기 어렵다. 빛 하나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떻게든 빛을 찾아가려 발버둥 치는 인물의 고뇌나 감정선이 그리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 극 후반 상황이 급히 마무리되고, 내레이션으로만 설명되는 로기완의 삶의 변화 역시 너무 평이해 식상함까지 느끼게 된다. 안전하긴 하지만 특별하지도, 후련하지도 않은 결말이다.
마리의 서사와 캐릭터는 가장 아쉬운 지점이다. 분명 어머니와 얽힌 사연은 마리 입장에선 충분히 비극적이고 큰 아픔, 죄책감으로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삐뚤어진 마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극한으로 내몰다가 어느 순간 갈등을 봉합해 버리니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캐릭터의 서사가 빈약하니 공감할 수도 설득될 수도 없다. 사격 연습을 하고 각고의 노력으로 불어를 잘 소화해내며 캐릭터와 혼연일체 된 최성은의 연기가 아깝기만 하다.
멜로도 기대 이하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희망이 되어준다는 설정이지만, 가장 중요한 멜로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연기를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서사 자체가 빈약하고 캐릭터가 설득력을 잃으니 어느 부분에서 설렘과 감동을 느껴야 하는 것인지 도리어 물어보고 싶어진다.
송중기는 지난해 개봉된 영화 '화란'에 이어 또 한 번 '밀크남'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새 얼굴을 보여주기 위한 도전에 나섰다. 더벅머리, 때칠을 하고 북한 사투리를 쓰는 송중기를 보는 신선함은 있다. 하지만 그의 도전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엔, 그가 가진 '원톱 배우' 이름값이 너무 크고 무겁다. 송중기는 얼마만큼 만족하는지 알 수 없지만.
자극적인 내용의 장르물이 난무하는 시대, 진짜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사랑과 삶의 가치를 논하는 휴먼 멜로 영화의 탄생은 참으로 반가운 부분이다. "인생의 대부분은 고통으로 채워져 있지만 그럼에도 가끔 살 만한 구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김희진 감독의 연출 의도 역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재미, 감동 그 어느 것도 잡지 못하고 아쉬운 결말만 남은 '로기완'이다.
3월 1일 공개. 러닝타임 131분. 청소년 관람불가.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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