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성과 우멸은 월적이 누워 있는 조실방으로 들어갔다. 월적이 누워 있는 조실방은 예나 지금이나 불(佛) 자 족자가 하나 걸려 있을 뿐 몹시 소박했다. 한약냄새 대신 차향이 그윽하게 감돌았다. 곡기는 끊었지만 말라가는 입술과 목을 축이기 위해 상좌 법일이 차를 우려내 준다고 했다. 법성과 우멸은 월적에게 삼배를 했다. 법성이 말했다.
"사숙님, 법성이 왔습니다."
"잘 왔어. 며칠 간 쉬었다 가시게."
월적이 손을 내밀어 법성을 잡았다. 월적의 손가락은 야원 갈대처럼 손가락 마디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깎지 못한 긴 손톱이 법성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산철이니 여기서 살겠습니다."
"내 상좌 법일은 아직 멀었어. 수행을 잘해야 하는데 큰일이네."
"어째서 그러십니까?"
"명색이 수좌로 살아온 내게 병원에 가자고 그래. 중이 링겔을 꽂고 있어야 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지."
"상좌로서 도리지요. 누워 계신데 못 본 체 하란 말씀입니까?"
"내 나이 팔십구, 얼마나 더 산다는 말인가? 부처님도 팔십에 열반하셨는데 염치없는 일이지."
"저 같은 아둔한 중을 더 이끌어주셔야지요."
그날 오후, 법성은 우멸에게 가마솥에 물을 데우게 했다. 우멸은 법일에게 장작을 준비해달라고 부탁하고는 아궁이에 군불을 지폈다. 법일이 우멸에게 물었다.
"혹시 은사님 목욕물을 데우는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사실이었다. 실제로 법성은 우멸에게 조실방으로 세숫대야에 목욕물을 담아오게 했다. 상좌 법일이 월적의 장삼과 런닝셔츠를 벗겼다. 월적의 상체가 드러났다. 어깨뼈와 갈비뼈만 앙상한 상체는 육탈에 가까웠다. 살갗은 불거진 뼈에 바짝 달라붙어 있었다. 법성은 수건에 미지근한 목욕물을 묻혀 월적의 몸을 구석구석 닦기 시작했다. 월적이 만족스러운 듯 말했다.
"법성스님이 내 마음까지 닦아주는군."
목욕하고 싶었는데 법성이 알아서 자신의 몸을 닦아주고 있다는 칭찬이었다. 법성은 월적의 마른 과일처럼 쭈글쭈글한 엉덩이와 젓가락 같은 다리까지 닦아주고는 세숫대야를 물렸다. 그러고 나서는 걸망에서 손톱깎이를 꺼냈다. 월적의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월적의 손톱과 발톱은 시력이 좋은 우멸이 깎아주었다.
한밤중에 또 장대비가 쏟아졌다. 남풍이 거세게 불어와 마당가에 선 회화나무 잔가지들이 휘청거렸다. 회화나무 이파리들이 날벌레처럼 창문에 날아와 붙었다. 법일이 법성과 우멸이 자는 방으로 달려왔다.
"스님! 큰일 났습니다. 큰스님이 숨을 몰아쉬고 계십니다."
"알았네."
법성이 일어나 급히 조실방으로 건너갔다. 우멸은 더 자고 싶었지만 법성을 뒤따라갔다. 법일이 놀랄 만도 했다. 월적이 죽은 듯이 들숨을 멈추었다가 한참 만에 푸우푸우 하고 날숨을 내쉬었다. 법성이 월적의 손목 맥을 짚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맥이 분명하니 안심해도 될 것 같네."
"숨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방 밖에서 들었습니다."
"단전호흡 하시는 분이라 그러네."
"놀랐습니다."
"잠이 깨버렸으니 나는 여기 있겠네. 새벽예불 때까지라도 가서 자게. 우멸도 자거라."
그러나 법일은 물러가지 않았다. 우멸만 조실방을 나갔다.
"나는 사숙님 모시고 정진할 때 가행정진 기간마다 장좌불와를 했지. 그때는 앉아 있는 것이 더 편하더군. 눕는 것이 불편했어."
가행정진이란 평소보다 치열하게 정진하는, 고행에 가까운 수행을 뜻했다. 법성은 그런 시절을 회상하듯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었다. 반면에 법일은 조금 흐트러진 자세로 은사 월적을 응시했다. 조그만 들창으로 검푸른 빛이 스며들었다. 꼭두새벽임을 알리는 빛이 창문을 투과하고 있었다. 방을 나갔던 우멸이 되돌아왔다.
"혼자 누워있기가 송구스러워서 왔습니다."
"사숙님 옆에 있으니 만감이 교체하는구나."
"거룩하십니다."
"선지식이 따로 없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사무치니 고마울 뿐이야."
법일도 마음이 격동되는지 자세를 바로하고 합장했다. 어느 새 장대비가 그치고 바람도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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