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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무문사(無門寺)에 가서 <1>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두 번째 작품 「자화장」에 이어 「무문사에 가서」를 선보입니다. 작품의 배경은 무문사라는 이름의 절집이지만 불교적 상상력에 매달린 작품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인연(因緣), 사람과 자연의 인과(因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세계 한복판을 걸어가는 우리네 삶이 곧 수행의 길이며 인생의 여로에는 인간의 힘이 어쩌지 못하는 섭리가 가로놓여 있음을 숨이 막힐 듯 아름다운 문장 속에 새겨 놓은 명작입니다. [편집자]

무문사는 퇴락한 고찰(古刹)이었다. 법당 기둥들은 나이만큼이나 주름살져 있고, 옹이가 박혀 있던 부분들은 먼저 썩어 없어져 새집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승려들이 기거하는 요사채도 낡아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깨진 기왓장 사이로 들풀들이 몇 뼘씩이나 자라나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바람이 쉬엄쉬엄 추녀 끝을 스쳐가곤 했다. 풍경에 매달린 고기들이 허공을 물어대자, 딸랑딸랑 맑은 소리가 울려 왔다. 그리고 법당 지붕 위에 쌓여 있던 낙엽들이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그늘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 한 마리가 그제 야 요사채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비로자나불 앞에 삼배한 다음, 요사채로 갔다. 원주승은 요사채 머리맡으로 흐르는 도랑물에 장삼을 빨고 있었다. 원주승은 단번에 나를 알아보았다. 품으로 안겨드는 고양이에게 “화엄아, 저리 가. 저리 가라니께.”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또 오셨구만요. 서울에서 오셨지요?"

"네, 스님."

"기다리세요. 혜운스님이 읍내 나갔구만요."

원주승은 지난번 일로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산문(山門)에서부터 출입을 막았었다. 승들이 참선 수도에 들어간 하안거(夏安居) 결제기간이므로 그 누구도 출입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승들만 기거하는 사찰이어서 더욱 엄격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헛걸음만 하고 말았었다.

보리수 이파리들이 졸졸 흐르는 도랑물 위로 떨어졌다. 원주승은 연신 먹물빛 장삼을 헹구었다. 흐르는 물에서도 향냄새가 풍겨 왔다. 장삼에 배어 있던 향냄새가 맑은 물에 얹혀 흘러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까?"

"곧 올지도 모르겠구만요. 읍내 포교당 법회는 오전이면 다 끝나니께."

풍경소리가 다시 들려오고 있었다. 젊은 승들이 없는 빈 절을 바람이 지켜주고 있었다.

"절이 조용하군요."

"요새는 안거가 지나면 다들 포교당으로 가니께요."

원주승이 허리를 펴면서 말했다.

"선원(禪院)이라서 더 조용할 거구만요. 지금도 몇몇 스님은 선방에 있지요."

"네."

"우리 선방에는 삼년 동안 묵언수행을 하고 있는 스님이 둘이나 있지요. 우리 절 자랑이구만요. 절은 비록 볼품은 없지만 그 스님들을 통해서 선방의 서릿발 같은 법도가 지켜지고 있으니께요."

나는 마음이 좀 편안해짐을 느꼈다. 원주승의 호의적인 대접 때문만은 아니었다.

원주승은 어디서 왔느냐, 점심공양은 했느냐, 혜운스님을 잘 아느냐 등등의 친절을 보여 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속기(俗氣)가 지워져버린 중성의 음성이었다.

"서해안 바닷가가 고향이라면 혜운스님 속가 쪽이구만요."

"그렇습니다."

"저기, 마루에 앉아 기다리시지요."

"아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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