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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1>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한 젊은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해탈입니까."

그러자 얼굴에 주름살이 접힌 노스님이 말했다.

"누가 너를 묶어놓았느냐."

잠시 후, 그 젊은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곳이 정토淨土입니까."

이에 노스님의 대답은 같았다.

"누가 너를 더럽혔는가."

또, 잠시 후 그 스님은 다시 묻고 있었다.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역시 노스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누가 너에게 생사生死를 주었느냐."

그제야 그 젊은 스님은 더 이상 노스님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묶는 것도 자신이요, 더럽히는 것도 자신이요, 생사에 얽매이게 하는 것도 자신이라는 깨달음을 하나 얻었기 때문이었다.

-석두石頭선사와 한 스님의 문답 중에서

 

서울에서 출발하여 줄곧 5시간 동안이나 핸들을 잡고 있는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면서 조금 낡긴 했지만 고급 중형인 승용차의 속도를 시속 50㎞ 이하로 줄인다. 점촌을 지나 안동으로 가는 국도에서 소로로 접어들자, 길은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외길로 변했고, 십여 년 전쯤 어머니의 49재 때 경황없이 왔던 길이라 방향감각이 되살아나지 않는 것이다.

낙엽은 소로에까지 떨어져 길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찬 계곡물에도 점점이 낙엽이 떠 흐른다.

깊어가는 가을이다. 이따금 지나치는 농가에는 손이 모자라는지 아직도 감들이 장식등처럼 주렁주렁 불을 켜고 있다. 보이는 사람들이라고는 아이들 아니면 노인들이다. 젊은이들은 다 도회지로 떠나버린 듯하다. 어떤 집은 아예 폐가가 되어 눈길을 끈다. 문은 뜯겨져 있다. 샐비어처럼 붉게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가 마당에 한 그루, 집 뒤에는 산죽들이 청청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고 청소만 하고 나면 살림을 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래, 이런 곳을 두고 젊은이들은 왜 철새처럼 떠나버렸지, 귀밑머리뿐만 아니라 콧구멍의 털마저 희어진 사내는 씁쓸하게 웃는다. 그를 아는 사람은 김룡사金龍寺 주지스님 말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주지스님도 어머니의 장례일로 두어 번 만났을 뿐, 절친한 사이는 아니다. 그만큼 사내는 바빴었다. 고향 친구와 사람들을 챙길 만한 여유가 단 한순간도 없었다. 어느 때는 노모老母가 먼 친척의 간병을 받으며 고향에서 홀로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불효막심하게도 잊어버렸을 정도였던 것이다.

사내는 어디선가 어머니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여 가슴이 설렌다. 자세히 들어보니 계곡물 소리가 아니라 김룡사 쪽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초하루나 보름날이 되면 꼭 어린 강헌姜憲의 손을 잡고 불공드리러 갔던 김룡사 쪽에서…… 헌아, 너도 40년 전에 고향을 떠난 사람 아니냐. 그러니 이곳을 떠난 젊은이들을 탓하지 마라. 그들도 언젠가는 지금 너처럼 때가 되면 찾아올 테니까. 고향은 탯줄을 묻은 곳이니까.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이니까.

지금 사내는 풍화되어버린 기억을 재생하며 김룡사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전 점촌의 버스터미널 쪽에서, 산북면 방향의 소로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던 주유소에서 "김룡사 가려면 어느 쪽으로 가야 합니까?"하고 두 번 길을 물었을 뿐이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오누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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