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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3>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강헌은 민박집의 공중전화를 이용하여 주지스님과 통화를 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므로 이곳에 왔다는 인사는 해야 도리일 것 같아서였다. 그러자 주지인 자광滋曠스님은 강헌에게 당장 절로 올라오라고 큰소리를 쳤다.

"고기 먹고 싶어서 민박을 하는가요? 절에 왔으면 절에서 먹고 머물러야지요. 강 사장, 어서 절로 오라와요."

이 깊은 산 속 절에서 반겨주는 사람이 있구나,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아버지인 법성선사를 의식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광스님의 목소리는 진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강헌은 어디서 머물러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미 숙박비도 며칠 분을 선불한 상태인 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김룡사에서 신세를 지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자광스님의 호의도 저버릴 수 없는 일이다. 산책길에서라든지 가끔 만나게 될 텐데 그때마다 얼마나 어색하겠는가. 오히려 민박을 하는 것이 머리가 무거울지도 모른다.

빗방울은 새벽부터 한두 방울씩 듣고 있었다. 홑이불 같은 비구름이 산허리를 덮고 있는 것이다. 깊은 산 속의 날씨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특징이다. 이러다가 햇볕이 쨍쨍 내리쬐며 활엽수림에 단풍의 붉은 화염이 붙기 일쑤인 것이다. 그래서 강헌은 우산을 가지고 가지 않고 김룡사로 산책을 나갔다.

일주문 처마 밑은 떨어진 낙숫물로 제법 축축했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한일자로 길게 젖어 있는 것이다. 부근 풀밭에서 전해오는 산국山菊의 향기를 코를 자극하기도 한다. 절에 오면 어머니는 여기서부터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하였었다. 한 번을 했는지 세 번을 했는지 강헌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일주문은 기억하고 있을지 모른다. 강헌은 일주문의 두 개 기둥에 달아놓은 주련柱聯을 보았다. 거기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입차문래막존지해入此門來莫存知解

무해공기대도성만無解空器大道成滿

이 문을 들어서면 분별하는 마음을 버리거라

분별없는 빈 그릇이라야 큰 해탈을 이루리라

절을 들어설 때는 순수하게 마음을 비우라는 일주문의 법문인 셈이었다. 강헌은 일주문을 들어서면서부터는 서울의 부도 일보 직전의 사업도, 사랑스런 처자 걱정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을 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영업사원으로 입사하여 회사를 인수하기까지 자신의 분신처럼 키워온 출판사였다. 그 출판사의 사장으로서 은행의 약속어음을 오늘까지 막아야 형사입건을 면할 것이지만 그럴 가망은 전혀 없었다. 이제는 회사를 살리겠다고 발버둥 쳐보아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고향 땅에 있는 김룡사 행을 선택한 것이다.

, [사진=픽셀스]
, [사진=픽셀스]

강헌은 자신의 김룡사 행을 도피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실패한 자가 자기를 돌아보는 독백의 시간이라도 갖고 싶어 하듯 그와 비슷한 심정으로 떠나온 것이다. 혈혈단신 어린 나이에 상경하여 말만 들어도 콧잔등이 찡해오는 '스위트 홈'을 이루고자 비루먹은 개처럼 온갖 궂은일도 마다않고 거리를 헤매왔던 자신이 아닌가.

그렇다고 아직도 선택의 여지를 따지는 건 염치없는 노릇이리라. 먼저 간 친구였던 사장처럼 유서를 통해서 용서를 빌고 생을 반납해버리든, 부끄럽지만 감옥에 들어가 절치부심하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이 문을 들어서서는 그런 ‘마지막’의 생각들을 낙엽처럼 버리고 또 버리자. 저잣거리의 마음을 태워 재처럼 날려버리고 날려버리자. 그러면 선사들처럼 큰 해탈을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머니의 흔적을 만날 수는 있을지 모르니까. 강헌은 일주문 지붕에서 무겁게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는 절 안으로 들어섰다.

천왕문에 이르는 길옆으로 전나무들이 열병閱兵을 하고 있다. 전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도 전나무 자생지임이 틀림없다. 비에 젖은 전나무지만 소나무와 달리 죽죽 하늘로 치솟은 모습에서 기상이 느껴진다. 전나무 숲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어깨가 펴지고 위로가 좀 되는 것이다.

속가의 말로 치면 화장실인 해 우소海憂所, 즉 '근심을 푸는 곳'을 지나 천왕문 앞 우물가에 섰을 때, 어제 보았던 젊은 스님이 목례를 해왔다. 그는 긴 대빗자루로 천왕문 돌계단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다가 밑에까지 내려와 쾌활하게 말했다.

"처사님, 어제 고마웠습니다."

"이곳에서 수행하시는 스님이었군요."

"주지스님 상좝니다. 법명은 운곡雲谷이구요."

"주지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저 위, 상선원上禪院에 계십니다."

대빗자루를 잡고 있는 운곡의 두 손이 남성답게 아주 크다. 얼굴도 손만큼이나 크고 잘생긴 모습인데 세심한 구석도 있어 보인다. 떨어진 낙엽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승복의 소맷자락을 걷더니 표주박을 이용해 낙엽을 담고 있지 않은가.

"주지스님을 뵈려고요?"

"아니오, 천천히 뵙겠습니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오누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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