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쩍새 울음소리가 더 가까운 곳에서 소쩍소쩍 나고 있었다. 명부전이 있는 숲 속에서 이곳 요사의 불빛을 보고 우는 것도 같다. 어쨌든 강헌은 법성선사의 권위마저 인정하지 않는 동광이 보통내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면도날 같은 선객의 기질이 느껴지는 것이다.
"법성선사가 정말 알려진 것과 다릅니까?"
"뭐, 인정할 것은 해야지요. 하지만 화합을 못하고 독불장군으로 사는 지독한 독각獨角 노장님이지요."
술을 잘 마시는 여성 사진작가가 간간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스님, 독각이 뭐예요?"
"한자대로 풀자면 뿔이 난 수행자라는 뜻입니다. 대중과 어울리지 못하는 수행자를 말하지요."
강헌은 술이 깨는 기분이었다. 법성선사의 얘기가 나오자 좀 전에는 듣고 싶지 않았지만 차츰 박하향을 쐰 듯 머리가 맑아지고 있었다.
"스님은 법성스님하고 수행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물론 금선대에서 한철 하안거夏安居를 난 적이 있지요."
"함께 사셨던 분이니 누구보다도 법성스님을 잘 아시겠습니다."
"알기는 뭘 알아요. 묵언 정진 중이셔서 선사의 법문을 한마디도 들은 적이 없는걸요."
"정말 밤에도 방바닥에 등을 대지 않고 수행을 합니까? 소문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제가 거기 간 것은 그런 걸 구경하러 간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도 참선 공부하러 간 겁니다. 몇 년 장좌불와니 묵언이니 하는 그런 번뇌 망상 떠는 일은 수좌들에게 관심 밖이에요. 다만……."
"다만, 뭡니까?"
"한 가지 확인한 것은 하나 있어요."
술병이 비어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한쪽으로 밀치더니 동광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법성선사와 아침마다 용변을 보는 시간이 비슷했는데, 자신이 흉내 낼 수 없는 것을 하나 발견했다고 서두를 꺼냈다. 꼭 법성선사가 대변을 먼저 보고 난 다음 자신이 보곤 했는데, 해우소 밑에 떨어진 변의 모양이 선사와 자신의 것에 차이가 많이 나더라는 이야기였다.
법성선사의 변은 늘 같은 양과 색깔로, 같은 자리에 화장지가 같은 방법으로 접지되어 떨어져 있곤 하는데, 동광의 것은 그런 적이 거의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고 한다. 그것 하나만 봐도 동광이 보기에는 법성선사가 그나마 다른 선사들보다는 도인이라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말은 하지만 대변이야말로 평상심平常心을 속일 수 없는 법문이 아니겠냐는 동광의 주장이었다.
"난 엉망이었어요. 스님 몰래 금선대를 내려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굶기도 하고 그랬으니까요."
대변 이야기가 계속되자 마침내는 술에 취한 여자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호호호. 스님, 묵언이라지만 법문은 들으셨네요. 대변 법문을."
"그건 점잖은 얘기고 노장님 항문 법문이지요. 묵언 중에는 입이 아니라 항문으로 법문한다 이겁니다. 하하하."
술기운으로 얼굴에 단풍이 든 동광이 일어선 뒤 여자도 따라 선다. 여자는 독주가 몸에 안 받는지 약간 비틀거린다. 비로소 강헌은 직감적으로 느낀다. 여자와 동광은 단순한 관계가 아닌 것 같다. 말은 하지 않지만 눈짓으로 주고받는 언어가 있는 것이다. 왠지 여자보다는 동광이 위험해 보인다. 그가 파계를 하여 곧 환속할 것만 같아서 그렇다. 환속한 승려들 중에는 무능력자가 되고 만 사람이 많다. 그들에게 절이 온상이었다면 세상은 거친 황야나 다름없으리라. 선한 산짐승이 길에 내려와 잡힌 경우처럼 잘못하면 먹이가 되고 마는 것이다. 위태위태하게 보이는 동광이 자조적인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빌어먹을! 내일 도량석하려면 지금이라도 눈을 붙여야겠습니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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