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차분한데 강헌은 마음이 불안해진다. 어머니 몰래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속이 쿵쿵거린다. 그래서 여자를 꼭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춘다. 오랜만의 키스다. 키스를 하는 동안 불안감이 여자로 인해 서서히 비누처럼 녹아버린다. 강헌이 하나를 달라 하면 여자는 둘을 내주는 편안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자의 태도는 강헌을 더욱 불같이 달군다. 김룡사 경내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입으로 여자의 혀를 받은 강헌은 참지 못하고 자신의 손을 여자의 웃옷 점퍼 속에 넣는다. 그러자 탐스런 젖무덤이 손에 가득 잡힌다. 그것을 몇 번 만지작거리자 불안감이 싹 가셔버린다. 대신 여자는 못 참겠다는 듯 관능적인 신음을 내뱉는다.
이윽고 강헌은 여자의 점퍼 속에서 손을 빼고 말한다.
"언제까지 김룡사에 머물 겁니까?"
"저야 뭐, 기다려주는 남편도 없고……."
"그럼 다른 가족은?"
"아들 하나 있지만 돈밖에 모르는 남편이 데리고 가버렸어요. 이혼한 지 벌써 5년째예요."
아들 얘기를 하면서 여자의 목소리는 서리처럼 차가워진다. 그러면서 어느새 가까워진 남자인 듯 강헌에게 푸념 섞인 얘기들도 들려준다.
"아들도 남편 편이에요. 그러니 정이 뚝 떨어져 버리더라구요. . 자식 보고 싶어 만나러 가면 웃기지도 않아요. 한 5분쯤 지나면 '엄마, 됐어? 이제 나 들어갈게. 공부할 게 많아요' 하는 거예요. 그게 자식이에요? 남편이란 작자는 돈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살고…… 사진은 대학 때 전공한 거고 해서 이혼한 후부터 다시 만지기 시작했어요."
이 여자도 상처가 많은 사람이구나. 사진도 사진이지만 잠자리가 허공에서 날다가 힘이 떨어져 스님 팔에 앉는 것처럼 이 여자도 역시 김룡사에 머물며 쉬고 있는 것이구나. 세상 살면서 누군들 상처가 없으랴. 대학 시절 자신의 전공을 살려 뒤늦게 사진을 시작했다는, 말하자면 자신의 인생길을 수정하여 다시 걷고 있는 여자이다.
초로의 강헌은 다시 여자의 입을 찾는다. 그리고 한 손으로는 여자의 젖무덤을 더듬는다. 꺼져가던 정념情念의 모닥불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이번에는 여자가 강헌의 목덜미를 힘껏 끌어안더니 강헌의 혀를 요구한다. 강헌은 여자의 그런 요구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자신의 혀를 내준다. 그러자 말랑말랑하던 유두가 작은 지우개처럼 뻣뻣해진다.
지금은 육체의 쾌락밖에 다른 생각이란 없다. 두 사람이 허락한 쾌락의 시간이다. 도덕 같은 것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삶의 상처가 많은 남녀가 서로를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응진전 쪽에서 동광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응진전과 탑의 거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여자가 얼른 일어나 카메라가 놓인 쪽으로 도망치는 듯 가는 것이었다.
"여기 계신 줄도 모르고 방에서 기다렸습니다."
올라오면서 동광이 소리치고 있었다. 어찌 보면 김룡사와 친해지지 못한 채 겉돌고 있는 스님이다. 다른 스님들처럼 이 시간에는 잠을 자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소쩍새처럼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구름같이 바람같이 다른 곳으로 흘러만 갈 것 같다.
지난밤에 동광 역시도 오늘 내일 떠날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광의 의치가 달빛에 푸른빛을 띤다.
"인사나 드리려구요."
"아니, 이 밤중에 떠나려구요."
"내일 첫 버스를 탈겁니다."
"지리산에서 연락이 왔습니까?"
"전화는 아직 안 왔지만 제가 견딜 수 없어서요. 도반 스님의 토굴을 찾아갈 겁니다."
이틀 동안 잠깐 만난 스님이지만 그의 말끝이 허허롭다. 이럴 때는 술이 제격이다. 마음속의 말을 대신해주는 게 술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강헌은 술이란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스님에게 술집을 가리켜주어 팔 하나가 잘린 자광스님의 어머니가 생각나서였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게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잠든 김룡사의 스님들에게 객으로서 송구스러운 일인 것이다.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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