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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 <23>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단편 「그림자와 칼」로 아침소설의 문을 연 정찬주 작가가 네 번째 작품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를 선보입니다. 이번에는 조금 호흡이 긴 중편소설입니다. 작품에 대한 설명은 정찬주 작가가 쓴 「작가메모」로 갈음합니다. [편집자]

다음날 강헌은 뜻밖에 아침 일찍 일어났다. 짧은 잠을 보충하려고 했었는데, 동이 틀 무렵 일어나 아침 숲 속을 걷게 되고 만 것이다. 강헌은 천왕문을 나와 여여교如如橋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아직도 운달산 깊은 숲 속에서는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오고 있었다.

딱딱딱. 그 소리는 동이 트자마자 한두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됐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가 싶어 눈을 떴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주 가까운 숲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라 꿈결처럼 들려오는, 딱따구리가 생나무를 쪼아대고 있는 소리였던 것이다.

계곡 옆의 산길은 김룡사 스님들의 산책길인 모양이었다. 범종을 치는 노스님이 가느다란 지팡이를 짚고서는 이미 먼저 산 위로 올라갔고, 재무스님은 산책을 하다가 계곡 가에서 소변을 보았는지 엉거주춤한 자세로 승복을 추스르고 있었다. 또 잠시 후에는 자광스님도 산책을 나와 강헌과 마주쳤다.

"스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떠나시게요?"

"네."

"법당의 부처님 이마에서 나비를 보았습니까?"

"네. 어젯밤에 보았습니다."

"나비의 소식은 무엇이었습니까?"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차가운 날씨에 쫓겨 법당으로 날아든 노랑나비를 보고 강헌은 나비와 반대로 자신은 이제 김룡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법성스님은 친견했습니까?"

"아니오."

"노스님 편에 강 사장이 왔다고 법성스님께 전달했는데 나만 실없는 사람이 됐구려. 허허허."

자광스님이 얘기 끝에 웃자 강헌도 미소를 지었다. 아침 산책길에서는 얘기를 길게 안하는 것 같다. 허허허, 작은 소리로 웃으며 맨손체조 시늉을 하며 여여교를 건너가 버리는 것이었다.

강헌은 딱따구리의 생나무 쪼는 소리를 좇아서 계속 산길을 따라 올라갔다. 개울이 나오자 이번에는 개울 건너편 숲 속에서 소리가 나고 있다. 서리가 축축하게 내려앉은 전나무 숲에서는 찬 물방울이 떨어지곤 하였다. 그런가 하면 젖은 낙엽이 강헌의 머리 위에 떨어져 내린다. 강헌은 딱따구리에게 홀린 사람처럼 점점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 먼 숲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는데 예상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딱따구리가 딱딱딱 쪼는 생나무는 주로 노송이다. 이미 뚫어놓은 빈 구멍이 노송의 콧구멍처럼 보이고 있다. 강헌은 그 노송의 나이를 헤아려본다. 자신의 나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이 된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이마를 쪼고 있는 것도 같다. 동이 틀 무렵에는 ‘정신 차리세요. 정신 차리세요’ 하면서 자신의 지쳐있는 마음을 쪼아대는 듯했었지 않은가.

그런 깊은 울림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소리에 홀려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소리는 골짜기에 공명이 되어 다듬이질 소리처럼 맑게 울려오고 있다. 소리를 좇고 있는 강헌은 벌써 땀을 흘려댔다. 산길이 가팔라진 데다 아침의 햇살이 따가워졌으므로 그렇다.

조금 더 올라가니 딱따구리의 경쾌한 소리가 사라져버린다. 화장암華藏庵이란 암자가 갑자기 나타나 있고, 솔숲이 저만큼 멀어져 있는 것이다. 암자는 문이 잠겨 있다. 마당에는 찬 서리에 젖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을 뿐이다. 누구도 맞아주지 않으면서 혼자 성불하겠다고 수행하는 암주암주의 편린 같기도 하다. 그러나 강헌에게는 어떻든 상관없는 일이다.

산길을 너무 올라와버린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먼 숲에서 나는 소리가 김룡사 요사채까지 들렸을 리가 만무한 것이다. 강헌은 화장암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다시 계곡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강헌은 걸음을 멈추고 만다. '금선대' 방향을 표시한 조그만 이정표가 풀숲에서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음이다. 금선대는 화장암 왼편 산길 끝에 있는 모양이다. 금선대라는 조그만 암자의 추녀 끝이 조금만 숲을 헤치고 오르면 보일 듯도 한 것이다.

금선대.

작가메모 -「김룡사에서 나비를 보다」는 십여 년 전에 썼던 작품이다. 어느 해 가을날 김룡사를 다녀온 뒤 그 절의 풍경이 너무 쓸쓸해서 그런 적막한 분위기를 화폭에 담듯이 그려본 작품이다. 지나친 슬픔이나 기쁨은 목을 메이게 한다. 그런데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도 목을 메이게 한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그런 적막 속에서는 하루도 살지 못할 것 같은데 그곳에 갇힌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잘 견디고 있었다. 식사하는 여러 스님들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가 한승원 선생에게 이 작품을 딱 한 번 보여준 기억이 난다. 한 선생은 그때 '자네도 이제 소설 귀신이 됐구먼.'하고 웃으셨던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을 일기 쓰듯 썼기 때문에 완성도나 작품성 같은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정작 내가 쓰고 싶은 작품은 사사로운 경험적(불교적) 소재를 차용한다 해도 문학적 보편성을 담아내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 사숙한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나 이노우에 야스시의 「후다라쿠 항해기」 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작가로서 도달해 보고 싶은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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