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김양수 기자]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후로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는 평범한 한국 드라마와 궤를 달리한다. 드라마를 안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남녀 주인공은 마지막회에서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어찌보면, 비극적이었기에 더 오래 기억되는 것일 수도 있다. 2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인생드라마'로 꼽는 '미사폐인'들이 많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끝내 이뤄지지 못한 두 사람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닮아있다.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포스트타워에서 만난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형민 감독은 "국내 드라마 중에 슬픈 작품이 많지만 남녀 주인공이 모두 죽는 드라마는 '미사' 뿐"이라며 "이경희 작가와 '상두야 학교가자'를 마친 후 차기작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하자고 약속을 했다"고 '미사'의 첫 시작을 이야기했다.
"배우들은 울지 않고, 시청자들은 펑펑 우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어요. 두 사람의 사랑이 진짜 순수한 그 자체라 더 슬펐던 것 같아요. 20년 전 방송 당시에도 휴지를 미리 준비하는 여성 시청자들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머리에 총알이 박혀 시한부를 선고받은 호주 입양아 무혁(소지섭 분)이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은채(임수정 분)를 만나 죽음도 두렵지 않은 지독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로, 2004년 KBS에서 방영됐다.
드라마는 당시 '미사폐인'을 양산한 데 이어, 임수정의 무지개 니트와 어그부츠 등이 큰 사랑을 받으며 품절대란을 이끌었다. 드라마 OST인 박효신의 '눈의 꽃' 역시 짙은 멜로감성을 자극하는 멜로디로 사랑 받았다.
인기의 중심에는 주연배우 소지섭과 임수정이 있었다. 당시 라이징 스타였던 소지섭과 임수정은 '미사'를 통해 톱스타 대열에 올라섰다.
이 감독은 "소지섭을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본 후 '작품 잘 만나면 다음 작품에서 터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사'에서 제대로 터졌다. 소지섭의 슬픈 느낌을 여성 시청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라면서 "임수정은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연기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메이크업도 거의 안한 듯이 나왔다. 나는 운이 좋았다"고 캐스팅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 외에도 드라마에는 정경호, 서지영, 최여진, 이혜영, 전혜진, 이영하 등이 출연했다. 신인 시절의 정경호, 최여진, 전혜진의 싱그러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재미 포인트다.
"배우들의 연기에도 시대별 스타일이 있어요. 하지만 소지섭, 임수정의 연기는 현재도 통해요. 과장이 없고 자연스럽죠. 슬픈 이야기도 툭툭 전하고, 진정성을 담고 있어요. 스타일 면에서도, 소지섭과 임수정은 앞서갔던 것 같아요. 당시 두 사람의 스타일은 강남필(feel)보단 홍대필이었는데, 그게 좀 더 생명력이 있었나봐요. 당시 임수정은 컬러풀하고 미니멀한 스타일로 큰 이슈몰이를 했죠. 소지섭의 힙합 패션 역시 소지섭의 피지컬이라 가능했을 거에요."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수많은 명대사, 명장면을 탄생시켰다. 이중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무혁)는 현재도 여전히 회자되는 장면이다.
이 감독에게 드라마 속 최고의 명장면을 물었다. 그는 "은채가 무혁을 향해 '사랑해'를 반복해서 외치는 장면"을 꼽았다.
그는 "당시 임수정이 '대본에 사랑해가 17번 적혀 있다. 이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이야기 한 기억이 난다"라면서 "눈을 피해 촬영할 장소를 찾다가, 방영 당일 새벽 2시에 부랴부랴 여의도 지하철 역에서 찍었다. 이게 명장면이 될 줄은 몰랐다"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이어 "다시 봐도 임수정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울컥했다. 말없이 슬픔을 참는 소지섭의 눈빛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무혁이 친모 오들희(이혜영 분)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요청하는 장면, 무혁과 은채의 모텔 삼단콤보 키스신 등을 차례로 꼽았다.
'[감독판]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웨이브 전편 공개에 앞서 CGV에서 선공개됐다. 당시 관객들은 인터미션 15분을 제외하고 앉은자리에서 6편을 모두 봤다고. 현재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팝업 스토어를 운영하며 '예비 미사폐인'들을 만나고 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20년의 시간을 넘어, 또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편, 1994년 KBS에 입사한 이형민 감독은 '상두야 학교가자' '눈의 여왕' '나쁜 남자' '힘쎈여자 도봉순' '우리가 만난 기적' 등을 연출했다. 가장 최근작은 지난 8월 종영한 '낮과 밤이 다른 그녀'다.
이 감독은 "언젠가 다시 리마스터링의 기회가 온다면, '상두야 학교가자'나 '눈의 여왕'도 새롭게 선보이고 싶다"고 밝혀 기대감을 자아냈다.
/김양수 기자(liang@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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