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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풍경 <7>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동생은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런데 동생은 자기 사상대로 세상을 개조해보겠다는 혁명가의 기질로 뭉쳐진 녀석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부끄러움을 유난히 잘 타고, 지극히 개인적인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있는 녀석이었다. 녀석은 어린 시절의 비굴함과 부끄러움을 아직도 지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놈이었다. 그런데도 녀석은 그때의 일기장을 없애버리지 못하고 서랍 속에서 꺼내어 읽곤 한 것 같았다. 1980년 5월 20일과 21일의 일기에는 붉은 볼펜으로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80년 5월 20일

맞춘 하복을 찾으러 고등학교를 진학 못한 인덕이와 같이 금남로 거리로 나갔다. 그런데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말았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들이 리어카 행상을 마구 때리고 있었다. 질질 끌고 가기까지 했다.

리어카에는 먹음직스런 빨간 딸기가 가득 실려 있었다. 리어카 행상은 딸기처럼 붉은 피를 철철 흘리며 끌려가고 있었고, 사람들은 웅성거릴 뿐 누구도 군인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나도 그랬다. 리어카 행상이 뭐라고 외치는 구호를 듣기만 했다.

그때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리어카 쪽으로 뻗었다. 입안에 침이 고이며 딸기가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순간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나의 손을 꽉 쥐었다. '이러지 말라'고 하면서. 나는 부끄러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신(神)의 손이 있다면 바로 그 손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의 차갑고도 따뜻한 손,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80년 5월 21일

어제 일이 궁금해 오후가 되어서 또 거리로 나갔다. 그러나 재수없게도 군인들에게 쫓기고 말았다. 나도 사람들과 함께 전남여고 쪽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도망친 곳이 하필이면 막다른 골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용케 다른 곳으로 빠져나갔는데 나와 어른 두 명과 여고생 한 명이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다.

먼저 어른 두 명이 총소리와 함께 붉은 벽돌담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내 키보다 더 높은 담을 넘었다. 그러나 여학생은 뛰어넘어오지 못했다. 그렇다고 담 위로 올라가 그 여학생의 손을 잡아줄 수도 없었다. 군인들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잠시 후 여고생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비명 소리도 두세 번 나더니 뚝 끊어지고 말았다.

시민들이 군인의 적인가, 군인들이 시민의 적인가. 한 어른의 얼굴에 피가 솟아났다. 담을 뛰어넘을 때 총알이 얼굴을 스쳐간 것이다. 나의 얼굴에는 그 어른의 살점이 한 점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동생을 생각하면서 나는 가끔 녀석과 나의 숨겨진 모습을 비교하곤 하였다. 어쩌면 시위를 하면서 몸을 사리지 않고 내던지는 동생보다도 내가 더 무서운 놈인지 몰랐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무골호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표현은 적절치 못했다. 나의 발톱은 공격적이지 못하고 드러나지 않을 뿐이었다. 나는 내 가슴속에 숨어 있는 광기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남몰래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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