뿐만 아니었다. 아내의 유산(流産)을 놓고서도 다툼을 벌였다. 두 번째 아기가 지워졌을 때였다. 나는 의사의 진단대로 신경이 너무 예민한 아내의 성격 탓에 아이가 지워지는 것이라고 털어놓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아내의 심리 중에는 인간을 거부하고있는 그런 것이 파편처럼 의식의 어딘가에 박혀 있는지도 몰랐다.
정말로 그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내가 굳이 나와의 재결합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나를 싫어하고 있기 보다는 인간 자체에 대한 환멸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언젠가 아내는 적다 만 가계부에 이런 낙서를 한 적도 있었다.
사람이 싫다. 야수의 탈을 쓴 사람이 싫다.
낙서를 발견한 순간, 나는 가슴이 서늘했다. 아내가 누군가를 저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아내가 부담스러워진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런 부담을 덜어버리고자 성관계를 가지면서 아내를 더욱 으스러지도록 껴안아주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소한 갈등이 왔을 때, 감정을 해소하는 한 방법으로 성을 이용하곤 하였는데, 이제 는 효과가 없었다. 서로의 사랑이 빠져버린 성관계란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공허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훈련이 끝나고 연병장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을 때 아내가 직접 받았다. 그러나 아내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는지 되레 내게 부음을 알려주려 하였다.
"잘 있어? 사실대로 얘기할 테니까 놀라지 마."
"어디서 아버지 소식 들었어요?"
"아니, 그럼 알고 있었다는 얘기 아니야."
"좀 전에 시외전화를 받았어요."
나는 누군가로부터 들었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연고자라는 사실증명이 서류상으로 필요하다는 얘기를 떠올리며 일부러 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동사무소엘 들렀다가 3시까지 K섬 가는 시외버스터미널로 나와."
"……"
"내 말 듣고 있어?"
"네."
3시까지라면 나도 서둘러야 했다. 우선 나는 연락을 해도 오지 않을 것이 뻔한 시골의 어머니에게 시외전화를 걸었다. 아내와 어서 헤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어머니이지만 형식적이나마 아직까지는 아내의 시어머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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