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박진영 기자] 어떤 연기든 믿고 볼 수밖에 없는 배우 서현진이 '트렁크'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만났다. 극에 대한 호불호는 존재했지만, 서현진의 가슴 울리는 연기에 대해서는 호평이 쏟아졌다. 서현진 역시 자신이 연기한 노인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인지를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 용기를 낼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배우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잘 살아가고 싶다는 서현진의 또 다른 바람은 "나잇값 하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연출 김규태, 극본 박은영)는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로 인해 밝혀지기 시작한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 노인지(서현진)와 한정원(공유)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미스터리 멜로다.
과감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괜찮아 사랑이야'를 연출한 김규태 감독과 '화랑'을 집필한 박은영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서현진은 과거의 아픔을 안고 한정원과 기간제 결혼을 하는 노인지 역을 맡아 공유와 첫 연기 호흡을 맞췄다.
5년 전 떠나버린 약혼자에 대한 상처로 자신을 벌주며 살아가고 있던 노인지는 한정원을 만나 스스로 치유하고 성장하게 된다. 노인지와 한정원은 서로에게 구원이 되어준 것. 서현진은 믿고 보는 배우답게 노인지의 감정선을 깊이 있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마음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다음은 서현진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대본을 읽고 어떤 부분이 좋아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됐나?
"분위기가 좋았다. 읽을 때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변하는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의 이기심으로 인한 후폭풍이었고, 중간에는 사람들과의 관계성인 것 같았다. 후반에는 개인의 변화, 성장이다. 결국 혼자 살 수 없고 부딪히고 상처받고 여러 가지 일이 있어도 나아간다. 읽을 때마다 변해서 좋았다."
- 캐릭터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촬영할 때보다 인터뷰를 하면서 더 구체화가 되는 것 같은데, 결국엔 인지의 상냥함이 좋았다. 인지가 자기 자신은 잘 돌보지 못해도 남을 위해 싸운다. 나를 응원하지는 못해도 다른 사람을 응원해서 좋았다. 내가 더 많이 줄 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정원의 도움을 받아 오래된 집을 탈출한다. 그런 미성숙함도 좋았다."
- 상냥함을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
"행동으로 상냥함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힘을 실으려 하지는 않았다. 직접적으로 하나씩 하지 않아도 이 사람을 위해 대신 싸워주고 손을 잡아준다. 이런 것들에서 이미 상냥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집중해서 보지 않는 분들은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작품의 결과 맞아서 재미있게 보신 분들이 계신다면 그것을 봐주실 거라 생각한다."
- 초반 샹들리에가 떨어질 때 인지가 대신 정원을 막아준다. 그것도 상냥함에서 나온 행동인 건가?
"그 부분은 인지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정원이가 집을 나오게 해주기 전까지, 인지는 자신을 잘 위하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얘기한다. 구해줄 가치가 없는 사람도 있다, 조금만 옆으로 갔어도 큰일이라고 하지만 인지는 무심하다. 이 직업을 하는 건 자신에게 벌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행동을 계속한다."
- 이 역할을 위해 일부러 체중 감량을 한 건가? 엎드려 있는 신에서 등뼈가 그대로 보여서 깜짝 놀랐다.
"캐릭터 때문은 아니다. 카약도 하고 탱고도 하고, 강아지와 현장에 같이 다니면서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졌다. 그 신은 얻어걸렸다. 그 정도로 뼈가 보일 줄은 몰랐다. 뼈 모양은 제가 인상 깊게 본 사진이 하나 있다. 모델의 상반신 뒷모습을 찍은 건데, 뼈가 도드라져 보여서 그 이미지를 찍어서 휴대폰에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쓰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등이 파진 옷이라 보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
- 그 장면을 직접 제안한 건가?
"인지가 감정적으로 피폐해져 있고 코너에 몰린 느낌을 주었으면 하는 신이다. 여러 가지 몽타주를 보던 와중에 이건 어떨까 하고 제안했다."
- 반려견인 시더는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시더를 바라보며 짓는 미소가 찐으로 행복해 보였다.
"원래는 정원이 고양이만 키우는 설정이었고, 인지가 강아지를 키우는 설정은 없었다. 제가 시더와 항상 같이 다녀서 "같이 할래?" 하셔서 하게 됐다."
- 공유 배우와의 호흡은 어땠나?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배우였다. 뭔가 이럴 거야 하면서 생각한 건 없지만, 감정을 훨씬 더 이해하고 섬세하고 캐릭터에 많이 붙어서 연기하시는 분이다. 제가 제일 먼저 선배님의 다른 얼굴을 본 거다. 재미있었다. 덕분에 제 리액션이 많이 좋아진 것 같다. 작가님이 "서로 약간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저는 정원이로 있는 선배님이 부럽고 얄밉고 신기했다. 도움을 많이 받았다."
- 생각한 것과 달랐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특별했나?
"세세하게 감정을 쪼개서 섬세하게 연기하는 배우다. 저에게 그렇다고 하셨는데, 본인이 더 심하다. 같이 연기할 때도 느꼈지만 완성된 걸 보고 더 많이 느꼈다. 다른 배우와 연기한 것까지 다 보니까 너무 설득력 있게 잘하시더라. 감정들이 너무 좋았다."
- 기존에 했던 연기는 굉장히 완벽하게 준비를 해왔었는데, 이번에는 현장에 많은 것을 맡겼다고, 그래서 연기적으로 큰 변화를 줬다고 들었다. 그렇게 한 계기가 있었나?
"제가 할 수 있는 것에서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좋은 걸 써주실 감독님, 내가 어떻게 해도 받아줄 수 있는 좋은 상대가 있어서 할 수 있었다. 감독님, 선배님 믿고 짐을 떠넘겼다. 저 혼자 연습을 해도 상대가 어떻게 할지 사실 잘 모른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열어놓고 봤던 것 같고, 선배님 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는 열어 두고 했던 것 같다."
- 촬영할 때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장면이 있다면?
"도하와 헤어지고 정원과 만나는 버스정류장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어떤 의미로 오느냐의 고민이 있었다. 뭐로 잡느냐에 따라 울음이 많이 달라질 것 같았다. 선배님에게도, 감독님에게도 "이 감정의 정체가 뭐였을까요?"라고 물어보고 현장에서 진행했던 신이다."
- 그 감정이 뭐라고 생각했나?
"현장에서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인지는 위로가 필요했다. 이 남자를 보고 왈칵 눈물이 나는 것이 사랑의 감정일까, 어떤 감정일지 정말 많이 생각하고 변하곤 했는데, 결국은 위로가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공유 배우와의 베드신은 지금까지 서현진 배우의 연기 중 가장 과감한 연기였지 않나. 현장에서 어떻게 호흡했나?
"긴장을 생각보다 안 했네 하고 생각했다. 워낙 감독님도 선배님도 긴장 안 하게끔 잘 풀어서 해주시는 편이라 생각한 것보다 잘 넘어간 것 같다."
- 후반부에 인지와 정원이 달달하게 데이트를 하는 신을 두 배우 모두 굉장히 오글거려 했다고 들었다. 공유 배우는 자신보다 현진 배우가 더 많이 오글거려 하며 힘들어했다고, 어땠는지 물어봐달라고 하더라.
"치즈버거 먹는 장면이 두 번 나오는데 장소가 같아서 한 날 찍었다. 그전까지는 꽁냥거리는 신이 없었다. 계속 냉랭한 태도를 하다가 갑자기 꽁량거리고 무드가 말랑해지니까 간지럽게 느껴지더라. 그때 몸서리를 쳤다."
- 로코 여신이지 않나.(웃음)
"아유, 너무 오래됐다.(웃음) 전반적으로 말랑거렸으면 안 그랬을 텐데 그 신이 갑자기 들어오니까 제가 선배님보다 더 간지러워했던 것 같다. 선배님은 스무스하게 잘하시더라. 왜 멜로 장인인지 알겠더라."
- 결말도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장르가 변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청춘 멜로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청춘 멜로면 성공했다.(웃음) 보는 분들에 따라 호불호가 있겠지만, 저는 이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서 좋았다. 밝은 분위기는, 사실 장르가 바뀌었다고 느끼지는 못했다. 인지의 삶을 쭉 따라가다 보니, 너무 힘들게 5년을 버텼다. 자기를 많이 버렸는데, 이제 자기 삶을 찾게 된 지점도 좋아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 만남이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것도 첫 번째 만남은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다. 자의적이지 않았으니까 다시 만났을 때는 정말 자연스럽게 우연히 만난 평범한 연인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 한 말이다. 첫 번째 우연에서 끝난 것도 좋았다. 근데 사실 인지가 먼저 봤다. 인지 입장에서는 두 번째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괄호가 있었다. '아닌데'가 있었다. 묵음 처리됐다. 저는 이렇게 끝나는 것이 좋았다. 어땠을까 싶게 열어두는 것도 참 좋았다."
- 14층 높이의 엘리베이터에서 액션신이 무섭거나 힘들지는 않았나?
"액션 팀의 지도로 합을 맞추고 들어갔다. 협소한 공간이고 공중에 매달려 있기도 해서 현장에서 조금씩 수정하면서 했던 것이 있다. 정신이 없어서 합을 잊기도 했다. 실제 14층 높이에서 찍었는데 무서울 새가 없었다. 감정이 격해져 있어서 덕분에 잘할 수 있었다. 엄청 여러 번 찍었다. 제가 대사를 계속 까먹었다. 한마디 하고 나면 백지가 되더라. NG가 많이 났던 신 중 하나다."
- 인지의 남편이 여러 명 나왔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
"정경호 선배님과는 아침 첫 신이었다. 햇살이 들어오는 장소였고, 찍을 때 제가 약간 몽롱했다. 뒤에 또 창이 있어서 약간 판타지같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차승원 선배님은 편안히 누워 계셨다."
- '유퀴즈'에 출연했을 때 상처 있는 캐릭터에 마음이 간다고 했었다. 그런 캐릭터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본을 볼 때 캐릭터가 가진 상처부터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제 안에 없는 걸 꺼낼 수는 없어서 공감할 수 있는 상처면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게 된다. 그런 캐릭터에 마음이 가더라."
- 집 밖에 잘 안 나간다고 했는데 여가 시간은 어떻게 보내는 편인가?
"맨날 똑같다. 약간 시간표처럼 월화수목금 루틴대로 살아간다. 운동가는 날도 있고, 회사에 들르기도 하고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일주일이 거의 다 비슷하게 돌아간다. 그게 편하다. 지금은 예전처럼 지키지 못하는데, 잠자는 시간, 일어나는 시간도 다 정해진 것이 편하고 좋다. 촬영할 땐 워낙 불규칙하니까 이렇게 규칙적으로 해야 몸에 리듬도 돌아온다.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 작품 홍보 때문에 덱스의 '냉터뷰'나 '핑계고' 같은 유튜브 예능에도 출연했다. 어땠는지 궁금하다.
"진짜 안 하다가 되게 오랜만에 하게 된 건데, 사실 인지에게 영향을 받았다. 인지의 삶이 계속 고여있다가 마지막에 다시 흐르기로 한다. 그 태도가 저에게 영향을 많이 미쳤다. 또 회사 팀장님이 강력하게 예능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 안 해봤으니 해보자고 하셔서 하게 됐다. 예능뿐만 아니라 올해 이사를 하고 짐을 많이 버린다든지 변화하는 것에서 용기를 내게 됐다. 긍정적으로 힘이 생겼다."
- 공유 배우와는 제작발표회에서 케미가 참 좋게 느껴졌다. 많이 친해진 것이 느껴졌다.
"워낙 선배님이 거리낌 없이 편하게 할 수 있게 잘 해주신다. 그래서 빨리 편해진 것도 있다. 그리고 자기 삶의 가치관이나 나아가고 싶은 방향, 겪은 것들을 얘기하게 되는 대본이었다. 선배님과 서로 어떨 것 같냐는 얘기를 많이 해서 더 많이 친해졌다. 오랜만에 뵈어도 오랜만인 것 같지 않다."
- 장난도 많이 치고 놀리기도 하지 않나.
"같이 놀렸고, 주로 제가 더 많이 당한다. 억울하다.(웃음)"
- 배우로서 나아가고픈 방향이 있나?
"없는 것 같다. 그냥 좋은 대본을 계속 만나면 좋겠다. 그 대본에 얹혀서 흘러가는 배우이고 싶다. 배우가 아닌 내 삶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다. 내 나이를 잊지 않고, 너무 철없지 않게, 나잇값 하는 어른이고 싶다."
- 혹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사극과 액션을 해보고 싶다. 사실 어떤 직업군, 역할보다는 대본이 재미있는지가 첫 번째다. 좋은 대본, 공감할 수 있는 대본이면 좋겠다.“
/박진영 기자(neat2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