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이미영 기자] "참 고마웠습니다."
'가황' 나훈아가 58년 노래 인생을 마무리 하는 마지막 무대, '분신'과도 같았던 마이크를 내려놓는 순간이 왔다. "웃으며 인사하겠다"던 나훈아는 관객을 향해 무릎을 꿇고 90도로 인사했다. 무대를 떠나는 나훈아도, 박수로 그의 인생을 응원하던 관객들도 눈물을 떨궜다.
12일 오후 나훈아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로 KSPO돔(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2024 고마웠습니다-라스트 콘서트 서울' 마지막 공연을 열었다.
나훈아는 지난해 2월 이번 전국투어가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이라며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1년 동안 투어 콘서트를 통해 전국 각지의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해왔다. 마지막 도시인 서울의 5회차 공연 마지막, 그리고 58년 노래 인생을 닫는 마지막 무대라 그 의미가 남달랐다.
공연 시간을 알리는 타이머와 함께 비장미마저 도는 공연장의 공기, 그를 배웅하기 위한 수많은 팬들이 빈좌석 없이 가득 채웠다. "11년간 마른 가슴에 꿈을 찾으러 전국을 돌아다녔다"는 지막과 함께 무대에 설치된 장막을 뚫고 등장한 나훈아는,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 흰색 의상을 입고 '고향역'을 불렀다.
그의 인사는 곧 노래였다. '체인지'와 '고향으로 가는 배' '남자의 인생' '물레방아 도는데' '18세 순이' 등을 쉼없이 이어갔다.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선글라스와 스팽글 의상, 멋스러운 스카프, 핑크빛 티셔츠 등 곡이 바뀔 때마다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퍼포먼스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스크린에는 1967년 데뷔 때부터 군입대와 1970년대과 80년대 시대를 풍미했던 젊은 나훈아,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황'의 일대기가 띄워지며 팬들을 추억에 젖게 했다.
공연 30분 만에 마이크를 잡은 그는 "고맙심더. 저는 오늘 잘할겁니다. 혹시 어제오늘 네 번의 공연을 하고 다섯번째 하는데 '저래 하고도 소리가 나올란가' 하는 분들 걱정말라. 이제 목을 풀었다. 저는 잘해야 하는 이유가 또있다. 여러분은 정말 저의 마지막 공연에 오신거다"고 첫 인사를 건넸고, 객석에서는 환호와 아쉬운 탄성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나훈아는 "공연시작 전 스태프들이 양쪽으로 줄을 서서 인사했다. '이러면 어찌 하나' 했다. 저는 절대 울지 않고 씩씩하게, 신명나게 하겠다. 더이상 아낄 것이 없다"고 약속했다. 그는 "처음으로 해보는 마지막 공연이라 기분이 어떨지 몰랐다. '이거구나' 느끼고 있고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울컥한다"고 마지막 공연을 앞둔 소회를 전했다.
반세기 넘게 대중을 위로했던, 그리고 우리가 사랑했던 나훈아의 노래가 무대를 수놓았다. '사랑'과 '영영' '홍시' '아름다운 이별' '인생은 미완성' '울어라 열풍아' '누가 울어' 등 대표 인생곡들이 흘러나왔다. "세계 가수 중에 히트곡 수가 제일 많다"고 능청스럽게 자랑을 늘어놓은 나훈아는 "'홍시'는 피아노 앞에서 5분 만에 나온 노래다. '아름다운 이별'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혼술을 하며 마지막 앨범에 꼭 들어가야 하는 노래가 나왔다"고 노래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이날만 두 번째 공연이었지만, 그는 지치지 않았다. 나훈아의 목소리는 생생했고,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로 좌중을 압도했다. 사투리가 섞인 특유의 어투와 직설적 화법으로 팬들을 쥐락펴락 했다. 관객들은 그의 마지막을 눈에 담으려 집중했고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화답했다.
마지막 노래가 가까워질 수록 "씩씩하게 노래하겠다"던 나훈아는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이웨이' 무대에서는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완벽한 앙상블을 자랑했고 깊은 목소리로 울림을 선수했다. 특히 그는 "평생을 살먼서 결혼를 한번도 안했는데 이혼을 세 번 네 번 했다고 한다"며 'oh no' 가사를 불러줬고 '마이 웨이'를 읊조리며 끝맺음 할 때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붉은색 도포 자락을 휘날리면서 무대 단상에 오른 그는 '테스형'과 '공'을 부른 뒤 거침없는 발언을 했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정치권 이슈를 언급하며 "나보고 뭐라하는 저것들 일이나 똑바로 하지. 어른이 이야기 하는데 XX하노"라며 "갈라치기 안된다"고 핏대를 세웠다. 저출산 문제와 성형 문제, 자살율 1위 등을 언급하며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소신 발언을 했다.
그의 노래는 이어졌다. 찢어진 청바지와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건장함을 과시한 그는 '청춘을 돌려다오'로 관객들의 앞날을 응원했다. 관객들이 앙코르를 뜻하는 '또 또 또'를 외치자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나온 나훈아는 '고장난 벽시계'를 부르며 돌출 무대로 나와 팬들에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큰 공연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손을 들고 인사했고 눈을 마주쳤다.
2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공연의 마지막 노래, 그리고 58년 노래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마지막 노래는 '사내'였다. 노래를 부르던 도중, 그는 관객들을 향해 감사의 작별 인사를 전했다.
나훈아는 "저는 노래 중간에 계속 울컥했고 참느라 힘들었다"면서 "평생을 살며 결정한 것이 마이크를 내려놓는게 최고의 결정이었다. 여러분이 보셨으면 알지만 제 공연은 힘이 필요하다.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공연이 아니다"고 은퇴 결심 이야기를 꺼내놨다.
그는 "6년 전에 부산에서 공연을 끝내고 나오는데 팬이 손을 흔들었다. 머리가 허옇게 한 할머니가 손을 흔드는데 '오빠'라고 하더라. 저는 그 때 제가 할배인지 알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에피소드를 이야기 했다. 그러면서 "아직은 몇 년 거뜬하게 한다. 내가 그만 두는게 서운하나"고 되물은 뒤 그래서 그만 둔다"라고 말했다.
은퇴 후의 행보도 전했다. 나훈아는 "여러분 저는 구름 위를 걸어다녔다. 저는 스타니까. 땅바닥에 안 걸어다니고 별답게 하늘에서만 살았다. 그게 참 힘들었다"라며 "이제는 땅에서 걸어다니겠다. 그동안 조마조마 하며 설마설마 하며 세상을 살았다"고 관객들의 눈을 바라봤다. 나훈아는 "앞으로는 안해본거 해보고 안 먹은거 먹겠다. 제일 먼저 해보고 싶은게 장서는 날 막걸리와 빈대떡 먹는 것이다. 구름 위에서 살다보니 한 번도 해본 적 없다"며 "여러분 고맙습니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작별' 노래를 배경으로 울음을 꾹 참으며 무대 앞으로 걸어나온 그는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훈아는 자신에 다가온 드론에 "분신 같았던" 마이크를 싣어보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노래는 관객들의 합창으로 완성됐다. 올해로 78세, 데뷔 58년차인 나훈아는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고별 공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가지만,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던 수많은 그의 노래들은 영원히 팬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이미영 기자(mycuzmy@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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