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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소설] 겨울남행 <6> - 정찬주


조이뉴스24가 단편소설을 연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브런치가 있는 카페에서 깊이와 재미를 더한 소설을 즐기며 하루를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언제나 맑고 선명한 언어로 인간의 내면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정찬주 작가가 이번에는 집요하고도 진득한 문장으로 지나간 시대의 아픔을 말해 줍니다. 소설에 담긴 비극은 분명 과거에 속한 것이지만 새로운 모습과 형태로, 아니 더욱 강고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기에 바로 오늘의 이야기 우리의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편집자]

차라리 두렵기조차 한 무덤과의 해후였다. 무덤 속의 뼈들이 '너는 누구냐'며 나직한 소리로 묻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바람이 능선을 타고 불어왔다. 목덜미에 눈가루를 휙 끼얹으며 계곡 아래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이윽고 형규와 여자는 산을 내려와 발등에 얹힌 눈을 털어냈다. 형규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는 불을 붙여 연기를 깊숙이 들이마셨다. 신작로에 접어들어 형규는 입을 열었다.

"묘지가 추워 보이는군요."

"……"

"이장한 흔적들이 그대로 있으니 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장을 권한다고 그래요. 돈을 듬뿍 주면서요."

"이 겨울에 말입니까?"

"꼭 그런 건 아니지만요."

왜 그럴까…… 형규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다시 방금 갔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수많은 무덤들이 '이젠 여기서만큼은 모든 생각들을 비워 버리라'고 타이르고 있었다. 형규는 문득 그런 느낌을 받았다. 침묵만이 눈처럼 분명했다.

하늘이 낮아지려 했다. 잿빛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형규와 여자는 덜덜거리며 달려오는 청음사행 시외버스를 거의 동시에 보았다. 문득, 형규는 먼 곳으로 비껴가는 바람소리 같은 어떤 곡조를 연상했다. 또렷이 짚이지는 않았지만 아리랑처럼 느리고 한스런 곡조였다.

그 소리는 차창 밖의 달리는 호젓한 풍경을 따라서 끊어질 듯 이어질 듯 황량한 벌판 가운데서 울려오기도 하고, 곧 무너질 것 같은 초가마을에서 멈추기도 했다. 그리고 헐벗은 미루나무의 빈 까치집에서, 낮은 개울의 징검다리 부근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눈이 오려나 봐요."

여자의 목소리에도 그런 울림이 느껴졌다.

"선생님, 왜 무덤들이 추워 보일까요."

"글쎄요."

여자는 아까의 무덤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틀림없었다. 여자의 목소리에도 빈 까치집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의 울림이 묻어 있었다.

"그 무덤들이 왜 생겼을까요? 한꺼번에."

"적어도 살아 있는 우리들보다 더 순수했던 사람들이 아닐까요?"

"어떤 면에서겠죠."

"그들이 어리석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적어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그들이 더 정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버스는 개울가를 달렸다. 쪽빛 개울물이었다.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허공에 팔랑거리는 눈송이들이 보였다.

"이야기 하나 해 드릴까요."

"네."

"고등학교 1학년, 그러니까 어지간히 바보였을 때였죠."

"어머, 바보라뇨? 순수하셨겠죠."

"…… 우리 담임 선생님은 체육이 담당이었죠. 대학 때 레슬링 국가대표까지 지냈다고 늘 우리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어요. 정말 그래서 그런지 몸집이 모두들 겁을 낼 정도로 우람했지요. 빛나는 전력을 말해 주듯이 그의 귓바퀴는 심하게 뭉개져 있었어요."

그는 무슨 일에든 일등을 부르짖었다. 학급 성적은 물론 학생들의 출결상황이나 운동경기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을 독려하는 방법도 유별났다. 월말고사의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로부터 학급비란 명목으로 돈을 거두어 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운동선수로 선발된 학생들에게 간식을 시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잘 따라 주었어요. 하지만 그 별난 방법을 끝까지 따를 수는 없었지요. 먼저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어요. 운동경기에 지고나면 한 달 간씩이나 교실 물걸레질을 시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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