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기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서사 드라마가 요즘 안방극장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MBC 창사47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에덴의 동쪽'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돌이켜 보면 참으로 굴곡도 많고 파란도 많았던 한국의 현대사를 속속들이 추억할 수 있게 한다.
초반 탄광촌을 배경으로 원한을 갖고 복수를 노리며 살아온 두 일가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 드라마는 동 시대를 살아온 우리네 젊은이들과 그 부모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극과 현대극의 홍수 속에 오랜만에 찾아온 시대극
그늘진 시대를 배경으로 층층이 쌓인 갈등구조를 풀어내는 이 드라마는 사극과 현대극에 밀려 최근 들어 제작이 뜸했던 시대극의 부활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한 근대사에 이어 현대로 넘어와서는 사회적으로 큰 의미 있는 사건들이 발생한 특정 연대를 다룬 시대극이 영화나 드라마로 꾸준히 제작돼 왔다.
그러나 주인공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아니고서야 40, 50년의 오랜 기간의 역사를 담은 드라마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에덴의 동쪽'을 시청률 경쟁에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드라마 방영 초반 연출자인 김진만 PD는 "타 방송과의 시청률 경쟁보다는 모두의 가슴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격변기 한국 현대사를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당시의 생활상을 잘 알지 못하는 10대와 20대, 드라마를 통해 극적인 감동을 함께 할 30대와 40대, 당시의 울분과 분노를 되살려 공감할 수 있는 50대와 60대 장년층까지를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함께 드러냈다.
죄악으로 얼룩진 한 인간의 업보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두 가문의 잔혹한 운명을 다루는 '에덴의 동쪽'은 그 시도 자체로 이미 많은 의미를 남기고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드라마가 초반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던 데에는 이미숙과 조민기 등 중견연기자들의 호연과 아역배우들의 눈물연기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바로 시청자들을 타임머신에 태우고 40여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보냈다는 것.
◆가진 자의 횡포와 없는 자의 억울함, 결론은 '휴머니즘'
실제로 어려웠던 그 옛날, 가진 자의 횡포와 없는 자의 억울함을 드라마 속에서 다시 접한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회상에 젖어야 했다.
이 드라마는 휴머니즘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다. 이 드라마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 즉 휴머니즘은 가족 간의 사랑과 헌신 위에 둥지를 튼다는 것. 그로 인해 '에덴의 동쪽'은 한국의 어머니상과 형제간의 우애, 남녀 간의 진정한 사랑의 의미, 인간에게 있어 성공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한류스타 송승헌을 비롯해 연정훈 한지혜 이다해 박해진 이연희 등 청춘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에덴의 동쪽'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비극의 표상이자 정치적 이슈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과거 시대의 단면들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만 특정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인물간의 다양한 갈등구조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그려내고 있다.
그로 인해 '에덴의 동쪽'을 통해서는 과거 인기 드라마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지난 8월 첫 방송이 나간 후 인터넷상에 가장 많이 올라온 시청자의견 가운데 하나는 '에덴의 동쪽'이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와 '모래시계'를 뒤섞어 놓은 듯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다양한 갈등구조, '어디서 본 듯한 이야기?'
지난 1995년 방영돼 인기를 모았던 '젊은이의 양지'는 탄광촌을 배경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따뜻하고 훈훈한 인간애와 사랑을 바탕으로 배신 속에 배어나오는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담아냈다.
또 '귀가시계'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모래시계'는 시대의 아픔을 쓸어내리는 작품으로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에덴의 동쪽'은 초반 탄광촌을 배경으로 시작해 두 남자의 사랑, 복수 등 결코 헤어날 수 없는 엇갈린 운명을 그려낸다. 특히 송승헌이 연기하는 주인공 동철이 비극적인 운명과 불의에 맞서는 방법으로 어둠의 길을 택한다는 설정이 '모래시계'의 주인공 태수(최민수 분)와 닮아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에덴의 동쪽'을 통해 연상되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송승헌 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가을동화'가 있다. 같은 병원에서 동시에 태어난 두 남자의 엇갈린 운명과 복수를 그리는 '에덴의 동쪽'과 갓난아이가 병원에서 뒤바뀐 출생의 비밀을 모티프로 한 이 드라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을 부여한다.
이밖에도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기 전까지 동철-동욱(연정훈 분) 형제의 넘치는 우애는 드라마 '첫사랑'에서 찬혁(최수종 분)-찬우(배용준 분) 형제의 모습과도 연결되며, 훗날 카지노 대부의 오른팔로 성장하는 동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내용은 드라마 '올인'을 연상케 한다.
굴곡진 현대사를 훑으며 이처럼 방대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에덴의 동쪽'이 '휴머니즘의 회복'이라는 기획의도를 끝까지 잃지 않고 근래 들어 흔치 않은 드라마라는 평가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이뉴스24 김명은기자 drama@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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