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대회 출전도 아니고 단순히 A매치 한 경기를 치르고 왔을 뿐이었다. 인지도 높은 박주영(AS모나코), 기성용(셀틱), 손흥민(함부르크SV), 이청용(볼턴 원더러스) 등 해외파들이 함께 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축구대표팀 인기는 대단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 인천 국제공항을 통해 터키에서 돌아왔다.
대표팀은 지난 10일 새벽(한국시간) 터키 트라브존에서 터키 축구대표팀과 평가전을 치러 0-0으로 비겼다. 경기 내용은 지난달 아시안컵과 비교해 조금 떨어졌고 골도 터지지 않은 경기였다. 일반적인 상황으로 본다면 실망스러운 느낌이 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날 인천공항에는 대표팀을 보기 위해 2백여 명의 소녀팬들이 집결했다. 지난달 30일 아시안컵을 3위로 마무리한 후 귀국 당시 공항에 운집했던 1천 명의 인파보다는 덜했지만 대단한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지난 5일 터키전을 위해 대표팀이 출국할 때도 이 정도의 소녀팬들이 찾았다.
선수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한 경쟁은 치열했다. 소녀팬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선물꾸러미가 들려있었다. 월드컵을 제외하면 원정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대표팀에 소녀팬들이 최근처럼 많이 몰렸던 적은 거의 없었다. 마치 1998 프랑스월드컵 이후 K리그에 찾아왔던 르네상스가 다시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공항에 친지를 마중나왔던 윤성민(43) 씨는 몰려든 인파에 "대체 누가 오기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것이냐"라고 취재진에게 물은 뒤 축구대표팀이라는 답을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박지성, 이영표도 없는데 대단하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인천에서 학교 친구들 3명과 함께 왔다는 A양(18)은 "오늘부터 봄방학이다. 종업식을 하자마자 공항으로 왔다. 홍철(성남 일화)을 만나기 위해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홍철을 지난해 11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봤다는 A양은 "K리그 서포터도 아니고 일반 팬이다. 축구는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봤는데 홍철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라며 조용히 말했다.
A양의 표현대로 국내파 젊은 선수들이 소녀들을 사로잡고 있다. 윤빛가람(경남FC), 홍정호(제주 유나이티드), 이용래(수원 삼성) 등 실력과 외모를 갖추고 팬서비스에도 능한 이들이 축구팬들의 주축으로 급부상했다.
운집한 소녀팬들을 지켜보던 대한축구협회 김진국 전무는 "젊은 선수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이들이 트위터, 개인 홈페이지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교류하는 등 소통도 잘 할 줄 안다. 축구 열기가 높아진다는 점은 좋은 현상이다"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선수들이 입국장으로 들어서자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서 자신의 '오빠'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조광래 감독은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K리그가 살아나야 국가대표도 발전한다"라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수만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조 감독에게도 수연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다가와 쪽지를 붙인 초콜릿을 선물했다. 쪽지에는 조광래의 팬이라며 아시안컵을 통해 축구를 보는 재미를 알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수연 양은 "윤빛가람의 팬인데 앞으로 우리 오빠 좀 뛰게 해주세요"라는 재치있는 청탁(?)도 잊지 않았다. 초콜릿을 받아든 조 감독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축구사랑'이라는 문구를 넣은 사인을 해줬다.
젊어진, 그래서 젊은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축구 대표팀의 유쾌하고 신선한 귀국 현장이었다.
조이뉴스24 인천공항=이성필기자 elephant14@joy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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