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의기자] 시즌 첫 멀티히트를 기록하도고 다음날 벤치에만 앉아 있었다. '국민타자' 이승엽(35, 오릭스)이 또 다시 지독한 플래툰 시스템의 덫에 빠져들었다.
이승엽은 6일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한신과 인터리그 원정경기의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한신의 선발 투수로 좌완 시모야나기 쓰요시가 등판했기 때문이다.
모처럼 타격감이 살아나고 있는 상황에서 벤치의 이런 결정이 아쉬웠다. 이승엽은 바로 전날인 5일 한신전에서 5타수 2안타 2타점 1득점으로 좋은 타격감을 뽐냈다. 특히 올 시즌 처음으로 멀티히트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부진 탈출의 계기를 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끝내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승엽은 올 시즌 1할6푼3리의 극도로 저조한 타율을 기록 중이다. 홈런도 1개밖에 없고 타점은 8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소속팀 오릭스에게 이런 '용병' 이승엽의 성적은 5일 경기에서의 멀티히트와 멀티타점으로도 씻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실망스러운 수준인 것이 사실이다.
오릭스는 기대했던 외국인 타자 이승엽에게 타격감을 살릴 기회를 주는 것보다 철저히 팀 승리를 위한 플래툰 시스템을 가동했다. 이날 경기에서 6-1 승리를 거둔 오릭스는 6연승을 내달렸고, 이승엽의 결장은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승엽에게 플래툰 시스템이란 낯선 단어가 아니다. 일본 진출과 함께 이승엽의 뒤를 따라붙던 말이다. 플래툰 시스템이란 경기 상황에 따라 선수를 번갈아 기용하는 것을 뜻한다. 좌투수가 나올 경우 우타자를, 우투수일 경우 좌타자를 선발로 내세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승엽은 일본 진출 후 첫 시즌이었던 2004년 지바 롯데 시절부터 플래툰 시스템의 그늘에 있었다. 2군을 들락거리던 2004년에 이어 1군에 자리를 잡은 2005년에는 플래툰 시스템 속에서도 30홈런을 때려내며 그 해 지바 롯데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지바 롯데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2006년 일본 최고 명문구단인 요미우리로 옮긴 이승엽은 한동안 플래툰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2006년 41홈런 108타점 타율 3할2푼3리로 대활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약이 잦아들기 시작한 2008년부터 이승엽은 다시 플래툰 시스템의 지배 아래로 들어갔다.
오릭스 유니폼을 입게된 올 시즌, 이승엽은 붙박이 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다. 오릭스는 이승엽에게 선발 1루수 겸 6번타자의 임무를 꾸준히 부여하며 중심타선의 뒤를 받치는 역할을 기대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타격 부진으로 이승엽은 다시 상대팀 선발투수가 누구인지를 신경써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 있다. 1루수 경쟁자인 헤스먼(2할1푼3리) 역시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팀이 최근 6연승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오릭스는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떨치고 인터리그 들며 상승세로 돌아서 리그 4위까지 순위가 올랐다.
역설적으로 이승엽의 좌완투수 상대 타율(2할2푼2리)은 우완투수 상대 타율(1할4푼9리)보다 높다. 플래툰 시스템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승엽 스스로 화끈한 방망이로 증명하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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