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범기자] "상상도 못했던 일입니다. 허허, 내년에 살짝 (순위를)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넥센 관계자는 껄껄 웃었다. 프런트에서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FA 계약, 그것도 거물급 야수 이택근을 다시 영입하게 되면서 수화기 너머로 기분좋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넥센은 20일 이택근과 계약기간 4년에 계약금 16억원, 연봉 7억원, 플러스옵션 6억원 등 총액 50억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특히 보장금액이 플러스옵션을 뺀 44억원으로 역대 규모를 살펴봐도 흔치 않은 액수다. 총액만으로 따지면 2004 시즌 후 현대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의 60억원에 이은 사상 두번째 규모. 특히 LG에 줘야할 보상금액(5억4천만원+보호선수 1명 혹은 7억1천만원)까지 감안하면, 넥센은 이택근을 영입하기 위해 최대 57억원까지 소비(?)할 의지가 있는 셈이다.
넥센은 2008년 창단 이후 스폰서 난항으로 가입금을 비롯해 구단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힘들어 어려운 살림살이를 꾸려나갔다. 그나마 최근 2년간은 넥센 타이어와 메인스폰서 계약을 맺었지만. 이전만 해도 이장석 대표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4년 동안 버텨오면서 조금씩 구단 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고, 올해는 수억원의 적은 적자폭으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로 인해 넥센과의 스폰서 2년 재계약을 이뤄냈다. 다른 스폰서와의 광고계약도 예상안대로 추진된다면, 창단 5년을 맞는 2012년에는 첫 흑자가 가능하다는 청사진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은 웃음을 지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넥센은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2009 시즌 후 구단 운영을 위해 장원삼, 이현승, 이택근을 트레이드했고, 2010 시즌에는 마일영, 황재균, 고원준, 올해는 송신영, 김성현까지 주축 선수들이 줄줄이 팀을 떠났다. 넥센 측은 지난 해부터 현금이 오가지 않은 순수한 트레이드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팬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결국 현재의 넥센은 선수를 팔아 연명하는 팀이라는 이미지가 굳혀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넥센의 이번 이택근 FA 영입은 분명 의미가 있는 첫 걸음이다. 넥센이 가난한 구단 이미지를 버리고 정상적인 프로 구단으로서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재정을 확보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알린 행보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장석 대표는 그동안 트레이드 시킨 선수 중 이택근의 경우를 가장 아쉬워했다. 프런트에게 수 차례 "(이)택근이는 정말 아쉽고 미안하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구단의 운영을 위해 아끼는 선수를 내줘야했던 피치못할 과거의 아픔을 되뇌이면서 이 대표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기회가 왔다. 일본 휴가시로 마무리 훈련을 떠나기 직전 김시진 감독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 대표는 "올해는 기회가 되면 FA 선수를 반드시 잡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했다. 그 동안의 설움과 안좋은 이미지를 단숨에 회복시키겠다는 의지를 정규 시즌 종료 후부터 표현해온 것이다.
그리고 FA 시장이 열리면서 매물이 나왔고, 그 대상 가운데 항상 미안함을 표현했던 이택근이 있었다. 이장석 대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타구단과의 협상이 가능한 20일로 날짜가 바뀌자마자 발빠르게 움직였다. 새벽 1시, 직접 이택근과 서울 모처 호텔 바에서 만나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고, 기어이 그의 도장을 받아냈다.
이장석 대표는 "우리 팀이 젊은 선수 위주로 재편성이 되다 보니 경험이 많고, 기존 고참 선수들과 함께 리더가 될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특히, 이택근의 경우 우리 팀을 잘 아는 선수로 팀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선수라고 판단했다"고 그의 영입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더 깊은 속마음도 분명히 존재했다. 이택근의 영입은 넥센의 재정안정화와 안정된 미래를 선언한 것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대표는 "2008년 창단 이후 네 시즌을 보냈지만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체계를 갖추어가는 중이다. 2008년 창단 당시 비전을 세우면서 4년 동안은 구단 운영의 안정적인 기틀을 다지고, 5년째부터는 우리가 수립한 비전을 가시화 시키는 것이었다. 이택근 영입 또한 이러한 구단의 향후 비전을 가시화 시키는 일환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우리는 발전을 위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8년 히어로즈로 창단한 후 우리담배와의 스폰서 계약 무산과 법정 다툼, 그 속에서 생존을 위해 내려야했던 트레이드 등 우여곡절 많은 4년을 보낸 넥센이다. 이제서야 그 기틀을 잡으면서 우뚝 설 채비를 하고 있다. 이택근의 영입은 그룹 지원을 받는 나머지 7개 구단을 향한 넥센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이장석 대표의 최종 목표는 '서울 히어로즈'다. 메인스폰서 없이 자생력만으로 구단을 운용할 수 있는 현실을 꿈꾸고 있다. 이제 조금씩 그 결과가 도출되고 있다.
조이뉴스24 권기범기자 polestar174@joy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