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기자] 수호신은 가장 중요할 때 빛났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를 철통같이 틀어막으며 팀에 꼭 필요한 승리를 안겼다.
지난달 31일 삼성-SK의 한국시리즈 5차전은 오승환(삼성)이 왜 오승환인지를 보여준 경기였다. 살 떨리는 1점차 승부. 8회초 2사 뒤 등판해 무사히 경기를 매조지했다. 9회초 선두 최정에게 중월 3루타를 허용했을 때는 그도 살짝 긴장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끝판대장' 오승환의 진가는 이 때부터 발휘됐다. 이호준을 유격수 얕은 땅볼로 처리해 급한 불을 껐다. 박정권을 볼넷으로 내보내 몰린 1사 1,3루. 오승환의 '성능'은 최대치로 올라갔다. 최고 153㎞짜리 광속구가 잇따라 스트라이크존에 꽂혔다.
페이크번트 슬래시를 두 차례 실패한 김강민이 맥없이 삼진으로 물러난 뒤 마지막 타자 박진만마저 꼼짝 못하고 루킹삼진으로 고개를 숙였다. 칠테면 쳐보라는 과감한 패스트볼 정면승부의 승리였다. 두 팔을 치켜든 삼성 선수들은 일제히 오승환이 있는 마운드로 뛰어나갔다.
오승환은 한국 마무리 투수의 산 역사다. 2005년 프로 무대에 말을 내딛은 뒤 항상 최고의 자리를 지켜왔다. 팔꿈치 수술의 후유증에서 벗어난 지난해에는 54경기에서 47세이브와 WHIP 0.67이라는 믿기 힘든 성적을 올리며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7월1일에는 김용수가 보유하고 있던 프로야구 통산 최다 세이브 기록(227개)을 갈아치웠다. 올해 37세이브를 추가한 그는 통산 세이브가 249개로 늘어났다.
쉽지 않았던 5차전 구원에 성공하면서 오승환은 포스트시즌 통산 10세이브로, 구대성과 함께 역대 최다세이브 공동 1위에 올랐다. 명실공히 '가을의 전설'로 올라선 순간이다.
오승환은 신인 시절인 2005년 당시부터 타 구단엔 '공포의 대상'이었다. 표정에 미동도 없이 기계처럼 타자들을 잡아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돌부처'라고 불렀다. 프로 무대 첫 해부터 한국 최고의 마무리로 자리를 굳힌 그는 그 해 한국시리즈서 삼성의 우승을 굳건히 지켜냈다. 이듬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선 대표팀 부동의 마무리로 '4강 진출'의 주역이 됐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2012년 가을. 오승환은 다시 한 번 삼성을 챔피언의 길목으로 인도하고 있다. 삼성이 1일 잠실에서 열리는 6차전을 이기면 오승환은 프로 입단 후 4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게 된다.
오승환은 시리즈 내내 "모든 면에서 우리는 SK보다 낫다. 공격과 투수력 등 각종 수치에서 시즌 1위에 오른 팀이 바로 삼성"이라며 "긴장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우승은 우리의 차지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이런 그를 두고 류중일 감독은 "오승환은 삼진 능력이 있는 투수다. 사실 5차전 9회 당시 최소 동점까지는 각오했지만 오승환이 있기에 믿을 수 있었다"고 돈독한 신뢰감을 나타냈다.
웬만한 상황에선 흔들리지 않는 대담함, 어떤 위기 상황이라도 반드시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 가장 확실한 '뒷문 잠금장치'를 보유한 삼성은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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